이씨조선(李氏朝鲜)
태종(太宗)과
도교(道教)
이씨조선(李氏朝鲜) 제 3
대왕 태종(太宗
:서기 1400년 -
서기 1418년) 이방원(李芳远:서기
1367년
- 서기 1422년)은 도교의 재초(斋醮)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태종(太宗)
4
년 2
월에 태종은 김첨(金瞻)에게 성숙초례(星宿醮礼)에 관하여 상세히 조사한 후 보고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김첨(金瞻)은
도교(道教)의
초제의례(蘸祭仪礼)에 관하여 잘 알고있었으며 그 당시 도교(道教)의 중요(重要)한 인물(人物)이었다.
그래서 태종(太宗)
8
년(서기 1408
년
)
에 태종은 김첨을 명(明) 나라에 보내어
도교(道教)의 초사지법(醮祀之法)을 잘 학습한 후 귀국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태종 때 도교는 매우 흥성하였다.
이씨조선(李氏朝鲜) 왕조(王朝)
시기(时期)
국가(国家)에서 매년 춘추(春秋)
두 차례에 걸쳐 노인성제(老人星祭)를 거행했으며 강화도(江华岛)
마리산(摩利山)에서 제천활동(祭天活动)이 실행되었다.
노인성제(老人星祭)란?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관장하는 별(星)에 대한 제사로써
고려 때 부터 장수를 담당한다는
‘노인성(老人星)’에 제사를 지냄을 의미한다. 강화도 마리산(摩利山)은 단군제천(檀君祭天)의 유일한 장소였다.
단군(檀君)은 3
명의 아들에게 마리산에 제단(祭坛)을 축성하라고 명했다.
고려시대(高丽时代)
마리산(摩利山)
산정(山顶)에 참성단(堑星坛)이라고 불리는 제단이 있었고 단군제천(檀君祭天)
의식은 도교(道教)의 성숙초제(星宿醮祭)와 비슷했다.
이씨조선(李氏朝鲜) 왕조(王朝)
시기(时期)에 마리산(摩利山)에서 참성초(堑星醮)가 거행되었으며 제단(祭坛)에 옥항상제(玉皇上帝)의 위패(位牌)를 설치해 놓고 제사를 지냈다.
이씨조선의 저명한 유학자(儒学者)
이이(李珥:서기
1536년-서기
1584년)의《마리산청사(摩利山青词)》와 고려 말기와 이씨조선 조선 초기의의 정치가인
변계량(卞季良:
서기 1369년 ~
서기 1430년)의《마리산참성초례청사(摩利山堑城醮礼青词)》는
도교(道教)
제례의식(祭礼仪式)에 속하는 도장문들이다.
고려왕조(高丽王朝)
시기의 재초(斋醮)에 사용되었던 도장문(道场文)은 재사(斋词)
또는 청사(青词)
등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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