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鲜)의
도교(道教) (2)
당(唐)
나라 제 18 대왕 문종(文宗
: 서기 826년 - 서기 840 년) 개성연간(开成年间
: 836一840)에 신라인(新罗人)
최승우(崔承佑)와 김가기(金可纪)와
자혜(慈惠)
스님은 당(唐)
나라에 유학(留学)하여 종남산(终南山)에 있는 천사(天师)
신원지(申元之)와 접견하였다.
또 종리장군(钟离将军)으로 부터 도서(道书)와 구결(口诀)
등을 전수(传授)받고 3
년 동안 신원지
천사로 부터 단성(丹成)을 수련(修炼)하였다.
김가기(金可纪)와 최승우(崔承佑)와 자혜(慈惠)
스님은 신라로 귀국하여 도교(道教)의 수련법(修炼法)을 전파하였다.
후에 김가기(金可纪)는 재차 당(唐)
나라로 들어가서 최치원(崔致远)과 이청(李清)
등으로 부터 도교의 구결(口诀)을 전수받아 신라로 귀국한 후 신라(新罗)
도교(道教)의 수련전통(修炼传统)을
개창하였다.
고려(高丽)
왕조(王朝)
시기(时期)에 도교(道教)는 국가(国家)의 보호(保护)를
받음과 동시에 도교의 형식(形式)과 내용(内容)과 기능(机能)이 완비(完备)되었다.
고려(高丽)
왕조(王朝)가 3국(三国)을 통일한 후 도교(道教)는 매우 흥성(兴盛)하였다.
고려(高丽)
시대에 음력 11
월 15
일 날 팔관회(八关会)를 거행했는데 원래 팔관회는 순수(纯粹)한 불교(佛教)의 제사활동(祭祀活动)이었는데 도교(道教)의 제천령(祭天灵)과 오악(五岳)의 내용(内容)을 첨가시켜 거행되었다. 도교의 팔관회(八关会)는 고려(高丽)의 성대(盛大)한 제사활동(祭祀活动)이 되었다.
고려(高丽)
때 거행되었던 상원등회(上元灯会)에도
도교(道教)의 색채(色彩)를 띄고있는 당악(唐乐)과 가무희(歌舞戏)가 가입되어 있다.
고려(高丽)
인종(仁宗)
9년(서기 1131년)8월에 내시(内侍)
이중부(李仲孚)를 서경(西京
: 현재 평양(平壤))에 보내어 임원궁(林原宫)
안에 팔성당(八圣堂)을 건립케 하고 팔선화상(八仙画像)을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고려(高丽)
시대의 팔선신앙(八仙信仰)과
산악신앙(山岳信仰)의 융합(融合)은 도교(道教)와 불교(佛教)의 일체(一体)를 의미하고 있다.
고려시대(高丽时代)에 도교(道教)는 국가(国家)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역대 고려의 국왕(历代国王)들은 국가적(国家的)인 차원에서 재초제(齋醮祭)를 거행했는데、예를들면 상제오제양(上帝五帝禳)과 노인성제(老人星祭)와 본명성숙초(本命星宿醮)와 성변기양초제(星变祈禳醮祭)와 백신초(百神醮)와 삼계신초(三界神醮)와 오온신초(五瘟神醮)와 담성제천(毯城祭天)과 별공재초(别贡斋醮)와 마리산참성초(摩利山堑城醮)
등이 있었다.
재초(斋醮)의 목적(目的)은 주로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를 물리치고、풍설(风雪)과 황충(蝗虫)과 온역(瘟疫)
등으로 인한 재액(灾厄)을 피면하는데 있었으며 국태안민(国泰民安)을 기원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고려사(高丽史)》에 보면 :"显宗九年(1018年)七月乙亥,在球庭举行大醮,是高丽按道教科仪举行的禳灾祈福的祭礼活动。德宗和靖宗时期,多次举行祷雨醮。文宗即位元年(1046年)六月己亥,在宫中举行本命醮,在位三十七年间,每年举行年中祭祀,还举行祷雨醮和太一九宫醮。"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현종 9
년 7
월에 운동장에서 대초제를 거행했는데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도교의 재초제였다.
고려(高丽)
왕조(王朝)의 역대(历代)
국왕(国王)들 중에서 中,예종(睿宗)은 도록(道箓)을 친수하였고 의종(毅宗)은 초제성신(醮祭星神)을 가장 좋아하였다.
도록(道箓)
이란?
입도자(入道者)들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도교의 부록(符箓)을
일컫는다.
고려(高丽)
왕조(王朝) 의 역대(历代) 국왕(国王)들 중에서 예종(睿宗)과 의종(毅宗)은 재초(斋醮)를 가장 숭상하였다.
《고려사(高丽史)》에 보면 “睿宗共举行二十七次斋醮,毅宗共举行二十六次斋醮。”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려 제 16
대왕 예종(睿宗,
재위 :
1105년 ~
1122년)은 모두 27
차례 재초제(齋醮祭)를
거행했으며 고려 제 18
대왕 의종(毅宗,
재위:
1146년~1170년)은 모두 26
차례 재초제(齋醮祭)를
거행했다.”
는 뜻이다.
예종(睿宗
: 1105一1122
)은 독실한 도교(道教)
신자였으며 경성(京城)에 복원궁(福源宫)을 건립하였고 10여 명의 도사(道士)들을 복원궁에 상주시켰다.
복원궁(福源宫)에서 도경(道经)을 강해하였으며 구도자(求道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복원궁(福源宫)은 고려(高丽)
시대에 가장 저명한 도교궁관(道教宫观)이었다.
중국(中国)의 사적(史籍)
《송사(宋史)·고려전(高丽传)》과《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丽图经)》에 고려의 복원궁에 관한 기록이 있다.
예종(睿宗)
2년(서기 1107
년)10월에 복원궁 안에있는 옥촉정(玉烛亭)에 원시천종상(元始天尊像)을 설치하였고 매월 월초제(月蘸祭)를 거행하였으며,나라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祈祷)하였다.
예종(睿宗)은 친히 복원궁에 가서 수시로 재초제(齋醮祭)를거행하였다.
중국의 북송(北宋)
제 8
대왕 휘종(徽宗
: 1100-1125년)은 고려의 예종(睿宗
: 재위 :
1105년 ~
1122년)이 독실한 도교(道教)
신자라는 말을 듣고나서 도사(道사) 2
명을 고려에 파견하여 홍도(弘道)케 하였다.
예종(睿宗)은 불교(佛教)를 도교(道教)로
대체(代替 )하고
도교(道教)를
국가종교(国家宗教)로 승격(升格
)시켰다.
고려 예종(睿宗)의 도교(道教
숭상은 중국(中国)
북송(北宋)의
도군황제(道君皇帝)
휘종(徽宗)의 영향(影响)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고려의 예종(睿宗)은
이중약(李仲若)을 북송(北宋)에 파견하여 북송(北宋)의
저명한 법사(法师)
황대충(黄大忠)과 주여영(周与灵)으로 부터 传授道要,得도교(道教)의 진전오묘지리(真传奥妙之理)를 전수(传授)받아 고려로 귀국하였다.
고려(高丽)
의종(毅宗
: 1147一1170)재위시(在位时)
대규모(大规模)로 여러차례 재초제(斋醮祭)를 거행하였다.
특히 의종(毅宗)
3
년 6
월에 선경전(宣庆殿)에서 삼계신초제(三界神醮祭)를 거행했는데 이는 황충(蝗虫:메뚜기)의 재앙을 면하게 해주고 모든 재앙을 면케 해달라는 제사였다. 또 의종(毅宗)은 재초제(斋蘸祭)를 거행할 때 마다 자기 자신(自身)의 장수(长寿)와 복리(福利)를 기구하였다.
의종의 재초제는 성신(星神)을 대상으로 거행되었다.
고려 공민왕(恭憨王)
19년(서기 1370년)4월에 명(明)
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조천궁(朝天宫)
서사호(徐师昊)
도사(道士)를 고려(高丽)에 파송하여 고려(高丽)
내의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재초제를 거행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고려 공민왕은 왕성(王城)의 회빈문(会宾门)
밖에 있는 양릉(阳陵)에 서사호(徐师昊)
도사(道士)를 기념(纪念)하는
석비(石碑)를 건립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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