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부형청죄負荊請罪

부형청죄負荊請罪
전국시대(서기 전 403 - 서기 전 221 ) 조(趙) 나라에 두 명의 대신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인상여(서기 전 329 - 서기 전 259 )이고 또 한 사람은 염파(서기 전 327 - 서기 전 243 ) 장군이었다. 인상여는 인상여완벽귀조(藺相如完璧歸趙) 사건 때문에 조 나라에 공헌한 바가 크므로 인하여 상경(上卿)에 봉해졌다. 한 편 염파는 수 십만 대군을 이끄는 대장군이였다. 그러므로 염파 장군은 자기 보다 지위가 높은 인상여를 일개 서생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인상여는 전쟁에서 세운 공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파 장군은 항상 인상여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인상여는 염파 장군이 자기를 찾아 올 경우 일부러 부딪치기 싫어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왜냐하면 서로 좋지않은 감정이 있으므로 부딪칠 경우 마음 속에 번민이 생겨 병에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염파 장군의 마차가 앞에 오고 있었다. 인상여는 염파 장군을 먼빛으로 보자마자 즉시 마차에서 내려 자기가 손수 말머리를 돌렸다. 마차에 타고 있던 인상여의 가족들은 마음속에 불만이 생겨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나약합니까? 어째서 염파 장군을 두려워합니까?” 고 불평하였다. 인상여는 나 개인의 수치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염파 장군과 충돌이 빚어질 경우 조 나라가 장래 큰 재난을 겪을런지 모른다. 또 강국인 진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의 말 머리를 돌려 염파 장군을 따라간 것이었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의 영예와 치욕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말햇다. 인상여는 항상 나라와 백성들을 먼저 생각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염파 장군의 귀에 들어갔다. 염파 장군은 성현들의 서적을 탐독한 사람이므로 참회하는 마음이 있었다. 염파 장군은 가시 나무로 만든 매를 한 다발 자기의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다. 인상여는 염파 장군이 친히 자기 집을 찾아 온 것을 보고 감동하였다. 급히 대문 밖으로 나가 염파 장군의 손을 붙잡고 영접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염파 장군은 개과천선하였고 두 사람은 허물없이 친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조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일했다. 부형청죄란? 잘못을 인정하여 정중히 사죄한다는 뜻이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 중 부형청죄(負荊請罪)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負荊請罪
在戰國時代,趙國有兩位大臣,一位是藺相如,另外一位是廉頗將軍.藺相如完璧歸趙,對趙國有很大的貢獻,趙王把他封上卿.而廉頗是帶領數十萬大軍的大將軍,他就覺得藺相如是一介書生,也沒有立下汗馬功勞,居然位子在他之上,心理很不平,常常去找藺相如的麻煩.藺相如看到廉頗來找他,不想跟他當面衝突,就以生病理由避開.有時候走在路上,剛好廉頗將軍的馬車來了,藺相如立即交代他的下人繞道而行.他們這些家人心理就很不平衡,:"大人,您為何這樣懦弱?何會怕他?"藺相如就告訴他們:對我個人的這種羞辱沒有關系,假如我跟廉頗將軍起了衝突,國家將會有很大的災難.秦國什麽不敢侵犯我們?就是有我跟廉頗將軍在.我們不能因個人的榮辱,而令國家陷於更大的危難,甚至於致使國家蒙受恥辱,那就嚴重了.藺相如念念不是想自己,而是以大局,國家、人民著想。
這段話後來傳到了廉頗大將軍的耳中,將軍畢竟是讀過聖賢書的人,立刻生起懺悔之心.所以,老人家背著荊棘,走到藺相如的家裏,負荊請罪.藺相如知道廉頗將軍來,也非常感動,快衝向前去把老將軍扶起來.廉頗知過能改,使兩個人變成了莫逆之交,讓趙國免於災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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