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9일 수요일

장계보불효조뢰극(張繼寶不孝遭雷殛)

장계보불효조뢰극(張繼寶不孝遭)
장계보(張繼寶)는 송() 나라 제 4 대왕 인종(仁宗 : 서기 1022서기 1063 ) 때 사람이다. 장계보(張繼寶)의 본래 성()은 설씨(薛氏)였다. 장계보(張繼寶)의 어린 시절 전시에 세상이 어수할 때 피난하여 도망가던 중에 친 부모와 헤어졌다. 다행히 장원수(張元秀)라고 불리는 사람을 전시에 만나 양자로 입양되어 장원수(張元秀)의 자식이되었고 이때부터 성()이 장씨로 개성되었다. 장원수(張元秀) 부부의 슬하에는 자식이 한 명도 없었다. 장원수(張元秀) 부부는 고생을 무릅쓰고 장계보를 친자식 처럼 길렀다. 스승 밑에서 공부도 시켜 장계보(張繼寶)는 서생이 되었다. 어느 날 장계보(張繼寶)는 타향으로 유람을 떠났다. 중도에서 자기의 생모를 만났다. 장계보(張繼寶)는 양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말없이 장원수(張元秀) 부부와 헤어졌다. 장원수(張元秀) 부는 자식을 잃고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하루 종일 장계보(張繼寶)가 집으로 돌아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계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실망하고 통곡하였다. 노부부는 흉년으로 인하여 굶주림을 당했다. 노부부는 만나는 사람 마다 장계보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또 백방으로 장계보(張繼寶)의 거처를 알아 보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장원수(張元秀) 부부는 장계보(張繼寶)가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하여 대관(大官)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노부부는 이 소식을 듣고 노비를 장만하여 장계보를 찾으러 서울로 올라갔다. 장원수(張元秀) 부부는 서로 오랫 동안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장계보를 만난다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계보(張繼寶)는 남루한 의복 차림의 두 노인을 만났다. 그러나 장계보(張繼寶)는 두 노인을 모르는 척 했다. 장계보(張繼寶)는 자기를 길러준 노부부의 은혜를 저버렸다. 장계보(張繼寶)는 부하들을 시켜 노부부를 쫓아냈다. 노부부는 분노가 치밀어 일부러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말았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덮히기 시작하더니 뇌성벽력이 내리쳐 한 번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장계보(張繼寶)는 벼락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이상의 고사는 인과응보류편(因果應報類編) 중 장계보불효조뢰극(張繼寶不孝遭)이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張繼寶,是宋仁宗時的人。他本來姓薛,因幼年時兵荒馬亂,在避難逃亡中,與他的親生父母離散了。幸而有一位張元秀,憐憫他的孤苦,收養子,這個原薛家的孩子,從此就改姓張。張元秀夫婦因沒有親生兒女,對待養子繼寶,極疼愛,如同親生兒子一樣,辛辛苦苦的把他撫育成人,並且延師課讀,培養成一個很有學問的人。有一天,繼寶外出遊玩,途中適逢自己的生母,他竟忘記養父母的養育之恩,不辭而別。
張元秀夫婦失了兒子,悲痛萬分,終日在家盼望繼寶歸來,可是望穿秋水,不見愛兒的蹤影,失望之餘,老夫婦哭泣不已。後來家道中落,老夫婦淪饑民,因此更渴求繼寶的下落,四處探聽,逢人詢問。過了幾年,得悉繼寶赴京考中了狀元,並且做了大官,老夫婦聽到這消息,喜出望外,急忙借了路費,到京中去尋覓愛兒。好不容易見到闊別多年的兒子,知繼寶看到二位老人衣衫襤褸,好像失了他的面,竟完全忘了撫育之恩,非但不肯相認,還飭令屬下加以驅逐。老夫婦氣憤膺,頭撞牆壁而死。一會兒,天空中陰四合,雷電交加,霹靂一聲之下,張繼寶在雷中斃命了。(取材自古病今醫)
雷擊不孝的事,不僅古今筆記載錄很多,即近代報紙新聞,亦常有登載,如一九三九年六月六日上海申報載,海通社華沙五日電云:「波蘭索里卡村,昨日發生駭人之逆倫慘案,有平民勃里斯圖巴者,年三十二歲,因繼承財關係,與其母發生口角,竟以利斧將其母死,勃甫自家中逃出,即觸雷電而死,人咸謂雷擊逆子云。」
出苦飛航作者何侃如老居士說:「空中自然之電擊,雷神借之以擊惡人,科學神道,兩不背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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