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0일 월요일

두우균오자등과(竇禹鈞五子登科)

두우균오자등과(竇禹鈞五子登科)
삼자경(三字經)을 읽어 본 사람은 다음과 같은 네 구절을 기억하고있을 것이다. 「竇燕山,有義方,子,名俱揚。」 다시 말하면 두연산은 정의로운 사람이다. 아들 다섯 명을 잘 가르쳐 모두 세상에 명성을 날리게 하였다.” 는 뜻이다. 열 두 글짜로 구성되어 있지만 두연산의 사적을 간단 명료하게 잘 묘사해 놓았고 인과응보에 관하여 실증해 놓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권면하기에 족하다. 다음은 두연산에 관한 고사이다. 두우균(竇禹鈞)은 석경당(石敬瑭 : 서기 936 서기 942 )이 건립한 오대(五代) 후진(後晉) 때 유주 지방 사람이다. 유주(幽州)는 연산 (燕山)에 속해 있기 때문에 두우균(竇禹鈞)을 두연산(燕山)이라고도 칭한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두우균(竇禹鈞)은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으며 어머니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은 20세 전후에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고 30세 가 될 때 까지 슬하에 자식이 없으면 무후위대적우려(無後大的憂慮)를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나의 후대가 끊어지는가 보구나! 하는 근심과 걱정이다.” 는 뜻이다. 두우균(竇禹鈞) 역시 30세가 될 때 까지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하루 종일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느 날 두우균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 우균(禹鈞)! 너의 전생의 업은 엄중하였다. 그래서 현세에서 너에게 자식이 없으며 너의 수명 또한 단명할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손자 우균아! 네가 지금 부터라도 적선을 하고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할 경우 업력이 변하게 될 것이다. 너의 운명이 만회될 수도 있다. 적선하여라!” 고 말했다. 두우균(竇禹鈞)은 잠에서 깨어난 후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똑똑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두우균(竇禹鈞)은 이때부터 적선을 하고 사람들을 구제해야 겠다고 결심하였다. 두우균(竇禹鈞)의 집안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이 어느 날 두우균(竇禹鈞)이 모아놓은 2 () 은전(銀錢)을 훔쳐 도망갔다. 하인은 다음과 같은 채무를 증명하는 유가증권을 한 장 써서 자기 딸의 팔뚝에 묶어 놓았다. 「永賣此女,償所負錢。」 다시 말하면 내딸을 당신에게 팝니다. 나의 채무를 탕감해 주소서!” 란 뜻이다. 하인은 아주 먼 타향으로 달아났다. 두우균(竇禹鈞)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나서 하인이 자기 딸의 팔뚝에 묶어 둔 채권을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하인의 딸을 곱게 잘 키워서 시집 갈 나이가 되었다. 두우균(竇禹鈞)은 마음씨 착하고 잘 생긴 청년을 물색하여 결혼시켜 주었다. 그후 어느 해 설날 두우균은 연경사로 배불하러 올라갔다.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 깔아놓은 방석 위에 황금 30 ()과 백은(白銀) 200 ()이 놓여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배불하러 왔다가 잘못하여 방석 위에 놓고 가버렸을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두우균(竇禹鈞)은 절 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을 반나절 동안 기다렸다. 과연 어떤 사람이 무엇이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울면서 대웅전 앞에 도착되었다. 두우균(竇禹鈞)어찌하여 당신은 그렇게 슬피 울고 있습니까?” 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나의 부친이 유괴범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범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 한테 여기 저기서 긁어모아 황금 30냥과 백은 200 냥을 마련했습니다. 그 돈을 납치범들에게 주고 나의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내야 합니다. 나의 전대를 손으로 더듬어 보니 황금과 백은은 온데 간데 없고 빈 주머니 만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만일 그 돈이 없으면 나의 아버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내가 조금 전에 진향배불했던 대웅전으로 다시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배불 도중에 분실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고 두우균(竇禹鈞)에게 말했다. 두우균(竇禹鈞)은 이 사람이 진짜로 황금과 백은을 분실한 사람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두우균(竇禹鈞)은 즉시 황금 30 냥과 백은 200 냥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차비에 보태 쓰라고 차비 까지 마련해 주었다. 황금과 백은 주인은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며 절을 떠났다. 두선생은 일생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예를 들면 친구들 중에 돈이 없어 죽은 친척들의 널을 장만할 수 없을 경우 자기 돈으로 널을 사서 친구에게 주면서 장례를 치루라고 하였다. 또 어느 집에서 돈이 없어 자녀들을 결혼시킬 수 없을 경우 두선생은 자기 돈을 집어주며 결혼 비용을 대주었다. 그리하여 노처녀와 노총각들의 칭송을 받았다. 빈곤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장사 밑천을 대주면서 장사를 시켜 생활을 안정시켜 주었다. 두우균은 인근 각지의 빈한한 사람들의 대자대비한 활불이나 마찬가지였다. 두우균(竇禹鈞)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좋은 일을 하였다. 두우균(竇禹鈞)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여 주기 위해서 자신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일 전도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매년 버는 돈 중에서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 비용으로 사용했다. 두우균(竇禹鈞)은 방이 40개나 되는 학원을 설립하여 수 천권의 책을 구입해서 실력있는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젊은이들의 교육에 힘썼다. 돈이 없는 가난한 집의 자식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 주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두선생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또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너는 지금 까지 수 년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상제께서 너의 음덕을 귀히 여겨 너에게 3( : 1 기는12 )를 더 연수(延壽)해 주실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네에게 5 명의 아들을 점지해 주실 것이다. 너의 5 명의 아들들은 후에 입신출세 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죽은 후 너는 천당에 가게 될 것이다.” 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계속 두우균(竇禹鈞)에게 나의 사랑하는 손자 우균아! 인과응보의 도리는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의 응보는 현세에 나타나지 않으면 내세에라도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의 인과응보가 자손들에게 까지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그물은 눈이 굉장히 넓어서 성근 것 같지만 악인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는 노자(老子)의 말을 명심하고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아라.” 고 말했다. 두우균(竇禹鈞)은 꿈속에 나타나서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을 똑똑히 머리속에 되새기며 덕을 쌓고 수신하였다. 얼마 후에 두선생은 5 명의 아들을 낳았다. 두선생의 가정 교육은 대단히 엄했다. 아이들은 규율을 잘 지키고 화목하며 온 집안이 효성스러웠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자라서 모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큰 아들 두의는 관직이 상서까지 올랐고 둘째 아들 두엄은 한림학사에 임명되었으며 셋째 아들 두칭은 지정사가 되었고 넷째 아들 두간은 기거랑이 되었으며 다섯 째 아들 두희는 좌보궐이 되었다. 여덟 명의 손자들도 모두 입신출세하였다. 그 당시 시랑 풍도는 두우균(竇禹鈞)에 관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 燕山竇十子有義方,靈一株老,丹桂五枝芳。시 말하면 연산은 슬하에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자식 교육을 잘 시켜 후에 자식들의 덕행과 명성이 온 천하에 퍼졌다네!” 란 뜻이다. 두우균(竇禹鈞) 자신도 간의대부의 관직에 임명되었었고 향년 82세로 세상을 마쳤다. 두우균(竇禹鈞)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 온 것을 미리 알고 친구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목욕한 후 의복을 갈아 입고 조용히 웃는 얼굴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선과 악에 대한 인과응보는 현세에서 받을 수도 있고 자손대에도 받을 수 있으며 내세에서도 받을 수 있다. 빨리 받고 늦게 받을 뿐이지 아무런 다른 차이는 없다. 두우균(竇禹鈞)이 살아 생전에 베푼 공덕과 음덕 때문에 두우균은 죽어서 분명히 천국에 갔을 것이다. 두우균(竇禹鈞)은 현세와 자손의 대와 내세에 걸쳐서 선과(善果)를 획득한 사람이다. () 나라 때 문정공(文正公) 범중암(仲淹)은 자손들에게 두우균의 고사를 이야기 해주며 자손들을 훈시했으며 범중암의 자손들도 모두 입신출세하였다. 현재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두우균의 고사를 귀가 아프게 들어서 잘 알고 있고 범중암(仲淹)의 고사도 잘 알고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보석이 널려있는 보석산에 올라가 보석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하산하는 것과 같아 애석한 마음 그지없다.
이상의 고사는 인과응보류편 중 두우균오자등과(竇禹鈞五子登科)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竇禹鈞五子登科凡是讀過舊書三字經的人,都知道三字經中有這樣的四句:「竇燕山,有義方,子,名俱揚。」雖然這僅是寥寥四語,但竇燕山的事蹟,證明因果報應確實不虛,足以勸世勵俗。現在就把竇燕山的故事,講給大家聽。
竇禹鈞是五代後晉時幽州地方人,因幽州屬燕,故名燕山。他是一個自幼喪父的孤兒,賴母親撫養長大,事母很孝順,對於母親的話,從來不敢違逆。在那個時代的人,多數在二十歲左右就結婚,所以如果到了三十歲還沒有兒子,就會感覺到「無後大」的憂慮。可是禹鈞到了三十餘歲,膝下猶虛,正在愁眉不展的時候,忽然有一天夜間,做了一個夢,夢見他已故的祖父對他說:「禹鈞!前生的惡業很重,所以今生的命運,不僅沒有兒子,並且壽命也很短促,我親愛的孫兒,希望及早回心向善,努力多做救人濟世的善事,或許可以轉變業力,挽回命運。」他一覺醒來,把夢中祖父的話,一一銘記於心,從此立志諸惡莫作,眾善奉行。
竇家有一僕人,盜用了禹鈞二萬銀錢,恐怕給主人發覺,就寫了一張債券,繫在自己小女的臂上,券上寫明:「永賣此女,償所負錢。」僕人從此遠逃他。禹鈞發覺了這件事,把僕人所寫的債券焚,並且對僕人的女兒撫養得很好,那女兒長大後,禹鈞還替備了嫁妝,嫁了一位美滿的賢婿。
有一年新年的元旦,禹鈞到延慶寺去拜佛,在寺中大雄寶殿的拜墊旁,拾到了白銀二百兩,黃金三十兩,他想一定是拜佛人的遺失物,就在寺中守候失主。等候了半天,果然看到一個哭哭啼啼而自言自語的人,禹鈞問他何故哭泣,那人說:「我父親給匪擄去,將被處死,我好不容易向親友們東借西湊,得到白銀二百兩,黃金三十兩,預備把這筆金銀贖回我父親的死。知我一摸錢袋,黃金白銀都沒有了,這樣我的父親就難免一死,剛才我到這裏來進香拜佛,不知是否遺失在寺中。」禹鈞知道那人是失主不誤,就將黃金白銀如數歸還,並且還贈給他一筆路費,失主歡天喜地的道謝而去。
竇先生一生做的好事很多,例如親友中有喪事無錢買棺者,他出錢買棺葬殮;有家貧子女無法婚嫁者,他出資助其婚嫁,使外無曠夫,內無怨女。對於貧困得無法生活的人,他借錢給他們,使他們有做生意的資本,因此各地的窮人,由他幫助而得以維持生活的,不可勝數。他了要救苦濟人,所以自己的私生活很儉樸,絲毫不肯浪費,每年量一歲的收入,除了供給家庭的必要生活費用外,都作救苦濟急之用。他還建立書院四十間,聚書數千卷,禮聘品學兼優的老師,年,對於無錢的貧苦子弟,代為繳納學費,先後造就了很多學問高深的優秀人才。
有一天,竇先生又做了一個夢,夢見祖父對他說:「多年以來,做了不少的善事,上天因為你陰德很大,給延壽三紀,並且賜給五個貴子,來日都很顯達,將來壽終之後,可上升天堂。」祖父說完以後,又繼續諄諄的對他叮囑:「因果的道理,確實而無虛妄。善惡的報應,或見於現世,或報於來世,或影響子孫。天網恢恢,疏而不漏,對沒有疑問的。」
從此以後,竇先生更加努力修身積德,後來果然生了五個兒子,因他家很嚴,所以兒子們都很循規蹈矩,和睦雍熙,滿門孝順。五個兒子都先後中了進士,大兒子竇儀,官至書,次兒竇儼,位至翰林學士,三兒竇,官參知政事,四兒竇侃,任起居,五兒竇僖,位左補闕,還有八個孫子,也都很貴顯。當時侍馮道贈詩一首云:「燕山竇十子有義方,靈一株老,丹桂五枝芳。」竇禹鈞本人,也做到諫議大夫的官職,享壽八十二歲,臨終前預知時至,向親友告別,沐浴更衣,談笑而卒。
善惡的報應,有的現世獲報,有的子孫獲報,有的來世獲報,雖有遲速的不同,但報應不爽,是毫無疑問的,像竇禹鈞公,不僅現世獲享高壽厚祿,後代子孫昌盛顯達,且觀其臨終瑞相,亦可證明來世必能獲生善地。這是因竇公生平做的功德,廣而且大,所以能「現世」「子孫」「來世」三者,都能獲得善果。宋朝文正公仲淹,曾將竇禹鈞的事蹟,訓示其子孫,廣修善事,因而范公的後代,亦很昌盛發達。可是世人知悉竇禹鈞事蹟的很多,不止範文正公一人,但大多聞而不行,如入寶山空手回,豈不可惜!(取材自歷史感應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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