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봉옹공문호수행(胡封翁公門好修行)
청(清) 나라 때 호향산의 호봉옹(胡封翁) 선생이 강소성 금산현 심판관의 직무를 맡아 보았다. 그는 사람됨이 충실하고 청렴결백하였다. 그는 또 공무원으로써 옳지 못한 행위로 직책을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횡령과 부정행위는 가치없는 일이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해 금산현에 강도 사건이 발생하여 피해자가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도둑의 두목을 비롯하여 30여 명의 도둑 집단을 체포하였다. 그 당시 법은 아주 엄했기 때문에 이런 경우 주범이거나 종범을 따질 필요없이 모두 참수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호봉옹(胡封翁)이 이 사건을 맡아 처리하게 되었다. 호봉옹(胡封翁)이 조사해 본 결과 30여 명의 도둑들은 모두 실업자들이었고 빈민들이었기 때문에 차마 30여 명을 모두 참수형에 처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호봉옹(胡封翁)은 30여 명의 도둑 중에서 주범 두 사람 만 참수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나머지 도둑들은 군대에 입영시켜 국경 지대를 수비케 하는 유형(流刑)에 처했다. 유형이란? 죄인을 외딴 곳으로 보내어 그 곳에 있게 하는 형벌의 한 가지이다. 현관이 호봉옹의 심판을 살펴보니 형벌을 너무나 가볍게 처리한 것 같아 호봉옹(胡封翁)에게 ”이 강도 약탈 사건은 도둑들의 자백에 의하여 종전에도 누차 도둑질을 했고 또 이번엔 피해자가 사망되었으니 당신의 판결이 너무 경한 것 아닙니까?” 고 말했다. 현관은 이번 사건을 상급 정부에 의뢰하여 논박하려고 호봉옹(胡封翁)의 판결을 인준해 주지 않았다. 호봉옹(胡封翁)은 재차 현관에게 ”만일 현관께서 나의 판결을 상급 법원에 제출하여 논박하려거든 나를 성정부 까지 끌고 갈 것이 아니라 현관께서 나에게 죄인에게 죄를 너무나 가볍게 판결했다는 죄명을 씌워 처벌하여 주십시요.” 라고 말했다. 현관은 호봉옹(胡封翁)의 말을 듣고 너무나 크게 감동을 받고 웃으며 ”당신이 지금 백성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살려 달라고 빌고 있는데 나는 어찌 그러한 인자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현관은 호봉옹(胡封翁)의 판결을 인준하였으며 그대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과연 성정부에서 청원이 기각되었고 재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호봉옹(胡封翁)은 자신의 팔결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 청원서를 올렸다. 그러나 재차 기각되었다. 그래도 호봉옹(胡封翁)은 여러 차례 청원서를 올렸다. 순무(巡撫)는 진노하여 현관을 직접 심문하겠다고 즉시 성정부로 올라 오라고 명령하였다. 순무(巡撫)는 현관을 당장 해고시킬 기세였다. 현관은 해고 당할까봐 겁을 집어 먹었다. 호봉옹(胡封翁)은 현관을 안심시켜 주며 ”내가 현관을 따라가서 성정부에서 우리들에게 도적을 단속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재앙을 입힌 죄를 씌워 처벌할 경우 그 죄를 모두 나 혼자서 뒤집어 쓰겠습니다.” 고 말했다. 현관과 호봉옹은 둘이서 함께 성정부에 도착했다. 현관이 먼저 들어가 순무를 배알하였다. 순무는 엄숙한 얼굴로 정색하여 ”도적을 단속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재앙을 입혔지요” 라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현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죄를 인정하였다. 또 순무는 ”당신은 현관에 임명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누가 당신에게 이와 같은 짓을 가르쳐 주었습니까?”고 물었다. 현관은 ”이번 사선은 호심판관이 처벌한 도안(盜案)입니다.” 고 대답하였다. 순무는 ”호모씨는 당신과 함께 여기 왔습니까?” 고 현관에게 물었다. 현관은 ”호씨는 지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순무는 얼굴에 냉소를 띠우고 ”내가 본래 어떤 탐관오리가 뇌물을 탐내어 법을 어겼을 것이라고 의심했었는데 과연 그렇군! 당장 호심판관을 내 앞에 대령하십시오!” 라고 현관에게 명령하였다. 즉시 위경은 문 밖에서 현관을 기다리고 있는 호봉옹을 붙잡아 왔다. 순무는 호봉옹을 향하여 큰 소리로 ”너는 심판관이라는 사람이 강도가 사람을 죽였으면 주범이거나 종범이거나 상관하지 않고 모두 참수형에 처한다는 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냐?”고 꾸짖었다. 호봉옹은 ”소인은 그와 같은 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는 반드시 경과 중이 있으므로 도적들의 죄의 경중을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여깁니다.” 고 대답하였다. 순무는 노발 대발하며 ”한 패거리들의 도둑이 사람을 상하게 하고 죽였는데 경중을 어떻게 구분한단 말이야.” 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호봉옹은 ”일생 동안 도적질 만 하며 등불을 환하게 밝혀 놓고 사람을 죽였거나 상하게 하였을 경우 거도거도로 인정하여 사형에 처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내가 처리한 도적들의 도안에 보시면 알다 시피 이들은 대부분 실업자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춥고 배고픔을 참다 못하여 법을 어긴 도둑들인데 잘못으로 인하여 살인하였습니다. 이들은 등불도 없이 캄캄한 밤중에 당황하고 혼란한 속에서 발걸음이 어지러워 넘어지면서 그만 사람을 찔러 죽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참작할 때 조금은 관대하게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순무(巡撫)는 호봉옹의 변호를 듣고나서 ”너는 강도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먹었느냐?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나에게 납득이 가도록 도둑들의 사정을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냐?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경우 곤장을 맞게 될 것이다.” 고 말했다. 호봉옹(胡封翁)은 ”만약 내가 도둑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먹고 도둑들의 죄를 경감시켜 주기 위해서 변호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뇌물 수수 혐의죄와 방조죄를 적용하여 처벌 받아야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 처럼 큰 안건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며 내 양심을 속이기는 싫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순무(巡撫)는 또 ”네가 도둑들로 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 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를 경감시켜 처벌한 이유는 무엇이냐?” 고 물었다. 호봉옹(胡封翁)은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재차 심문할 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공무원으로써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청컨대 순무(巡撫) 대인께서 구양수(歐陽修)의 농강천표(瀧岡阡表)를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구양수(歐陽修)는 ”생명을 구하고 싶으나 할수 없으면 죽은 자와 내가 모두 여한이 없도록 처리해야 되느니라!” 고 말했지 않습니까? 순무(巡撫)는 호봉옹(胡封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후 호봉옹(胡封翁)을 자기의 책상 앞으로 가까히 불러 앉혀 놓고 호봉옹(胡封翁)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자한 모습과 선한 인상은 사람을 빨려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순무는 또 한 번 호봉옹(胡封翁)의 얼굴을 쳐다 보고나서 공무원으로써 청렴결백한 관리에 속하는 사람이지 절대로 탐관오리의 인상이 아니다는 것을 확인하고 모든 노기를 풀어 버렸다. 순무(巡撫)는 호봉옹에게 ”당신은 아들이 몇 명이나 되며 현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고 물었다. 호봉옹(胡封翁)은 ”슬하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큰 녀석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거인(擧人)이고 나머지 세 명은 현에서 설치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고 대답하였다. 순무(巡撫)는 호봉옹의 말을 듣고나서 존경심이 우러나와 ”당신은 공무를 공명정대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당신이 이번에 판결한 도안(盜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신의 판결로 인하여 수 많은 생명이 보전되었습니다. 이는 당신의 큰 아들이 명년에 진사에 합격할 징조라고 사료됩니다.” 고 말했다. 호봉옹(胡封翁)의 도안이 확정되어 30여 명의 도둑들 중에서 두 명 만 사형에 처해졌고 나머지는 모두 살아 남았다. 그 다음 해 호봉옹(胡封翁)의 큰 아들은 진사에 합격하여 호향산의 태수로 임명 받았고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 역시 태학(太學) 출신으로 관직에 임명되었으며 넷째 아들은 름생(廩生)이 되었다. 름생(廩生)이란? 명청(明淸) 시대에 관청에서 돈과 양식 등을 지급하는 생원(生員)을 일컫는다. 호봉옹(胡封翁)의 집안은 현재 까지 자자 손손 선비의 집안으로 내려 오고 있다.
이상의 고사는 인과응보고사류편 중 호봉옹공문호수행(胡封翁公門好修行)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清代太守胡向山的封翁胡老先生,在江蘇金山縣擔任審判官的職務,素行忠厚廉潔,從來不屑做貪污舞弊的事。有一年,金山縣發生一件強盜搶劫的案件,被害人受傷致死,經政府捕獲盜犯首從共三十餘人。當時的法律很嚴厲,凡是強盜傷人,不分首犯或從犯,一律都要處以斬首的死刑。胡封翁承辦這件盜案,看到那盜犯三十餘人,都是失業的貧民,不忍看他們都受斬首的極刑,就判決主犯二人斬首,其餘一律都判充軍邊地的流刑。可是縣官認為判得太輕,封翁向縣官解釋道:「這件雖是強盜搶劫案,但看他們的供詞,並非累次犯案的積賊。至於被害人受傷致死,是因為黑夜裏慌忙推跌致傷而斃命的,不是刀槍殺死的,這樣的犯情不算很重,似乎可以輕辦。」然而縣官恐怕會受到上級政府的嚴厲駁斥,不敢批准封翁作的判決。封翁再向縣官進言說:「如果受到上級的駁斥,請你把我解到省裏去,辦我輕縱盜匪的罪名就是了。」縣官聽了很受感動,和顏悅色的對封翁說:「你既然肯為民請命,我豈獨沒有仁慈的心呢!」就批准封翁所作的判決。這件盜案報到省方,果然駁回,飭令另行更審,封翁就寫了一篇洋洋千言的呈文,詳細說明原判的理由,向省級頂上去,復經駁斥,經過了三駁三頂,巡撫大為震怒,下令提案親訊,並飭縣官到省,勢將予以撤職查辦,縣官大為恐懼,歸罪於胡封翁,可是封翁問心無愧,卻很鎮靜,願意跟隨縣官一同到省,並且說:「如果省方認為我們輕縱盜犯,要辦我們,我當一人負責。」縣官就與胡封翁同行,到了省裏,縣官謁見巡撫,巡撫呵斥他不該輕縱盜犯,聲色俱厲,縣官只得頓首認錯,巡撫說:「你到任不久,誰教你這樣的呢?」縣官答道:「這是胡審判官承辦的盜案。」巡撫問:「胡某有否跟你同來?」縣官答:「他現在候於門外。」巡撫冷笑的說:「我本來懷疑是貪官污吏的納賄枉法,果然如此,我當親予訊究。」立即飭令衛警把胡封翁從門外帶進來,巡撫厲聲的問:「你是擔任審判官的,怎麼不知強盜傷人致死,應該不分首犯或從犯,一律都要判決斬首的死刑呢?」胡封翁答:「我知道法律本來有如此的規定,但其中也有輕重之分,應當權衡,不可一概而論。」巡撫更怒形於色的說:「同一強盜傷人,怎麼還有輕重之分呢?」封翁回答道:「法律上對於積年的巨盜,公然用刀槍殺死事主,固然要處以死刑;但是像這件盜案,都是失業的貧民,為饑寒所迫,以致誤觸法網,至於被害人的死,是由於黑夜中的慌亂推跌而起,並非有意用刀槍殺害,這樣的情形,似乎可以稍從寬辦。」哪知巡撫聽了封翁的辯解,更拍桌大罵的問:「你得了強盜多少的賄賂?竟敢替他們巧言開脫呢?如果不說老實話,要用棍子打你了。」胡封翁叩首的回答:「若說下吏有意替強盜開脫,下吏不敢辭其罪,至於受賄枉法,下吏是素來不屑做的,不要說像這樣的巨案,就是鬥毆的小案,下吏也不敢昧著良心作事。」巡撫聽了,忽又強作笑顏的問:「你既然沒有受強盜的賄賂,為什麼要辦得這樣輕呢?」封翁對此不願回答,經過巡撫的一再訊問,才回答說:「沒有其他原因,只是公門裏面好修行。諒巡撫大人一定讀過歐陽修的瀧岡阡表,歐陽文忠說:求其生而不得,那麼死者與我都無遺憾了。」巡撫覺得所言很有道理,就令封翁走近桌前,仔細一看,發現這位胡老先生一副慈祥的面貌,善氣迎人,一望而知確是公門修行的好人,並非貪官污吏的敗類,頓覺怒氣全消,就和顏悅色的問:「你有幾個兒子?現在作何行業?」封翁回答道:「我有四個兒子,大兒子僥倖考中了上科的舉人,其餘三個兒子都是縣學生。」巡撫聽了,肅然起敬的說:「這是你公門裏面好修行的報應,現在這件盜案,我決定核准你的原判,從你保全了很多的性命這件事來看,這又是你兒子明年考中進士的預兆了。」這件盜案就此確定,僅判盜首二人死刑,其餘統統全活。明年胡封翁的長兒胡向山太守,果然考中了進士,次兒三兒都從太學出身而出任官職,四兒也當了廩生,至今子子孫孫書香不絕。(取材自坐花志果譯語改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