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9일 화요일

안길백차(安吉白茶)의 역사(历史) :

안길백차(安吉白茶)의 역사(历史) : 예로부터 고인(古人)들은 흰 색깔을 지니고 있는 식물과 동물은 영물(灵物)로 취급했으며 서조(瑞兆)라고 믿었다. 서조(瑞兆)란? 상서로운 좋은 징조라는 의이이다. 불교(佛教)의 고사 중에도 예를들면 백작 (白雀)과 백원(白猿) 등에 관한 고사(故事)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사(白蛇)와 백구(白龟)에 관한 신화(神话) 전설 고사(故事)는 많다. 백차(白茶)는 당(唐) 나라 때 저명한 시인 육우(陆羽)의 다경《茶经》에 다음과 같이 최초로 기재(记载)되어 있다. :“永嘉县东三百里有白茶山。北宋庆历(1041-1048年)年间:“白叶茶,芽叶如纸,民间大重,以为茶瑞。” 다시 말하면 “북송(北宋) 경력(庆历) 연간(서기 1041 년 - 서기 1048 년)에 영가현 동쪽으로 300 리 쯤 떨어진 곳에 백차산이 있음을 알았다. 차잎의 색깔은 희며 어린 잎사귀는 종이와 비슷하고 백성들은 백차를 상서로운 차로 알고 매우 귀히 여겼다.” 는 뜻이다. 송(宋) 나라 휘종(徽宗 : 서기 1100년 - 서기 1125 년) 조길(赵佶)의 저서《대관차론(大观茶论)》에 보면:“白茶自为一种,与常茶不同,其条敷阐,其叶莹簿,崖林之间,偶然生出,虽非人力所致,有者不过四五家,生者不过一二株。”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차는 보통 차와 다른데 줄기는 분명하고 잎사귀는 넓고 옥같이 밝으며 깨끗하다. 인적이 드문 절벽에서 스스로 돋아나 자라기 때문에 네 다섯 집에서 생육할 경우 겨우 한 두 나무 만 생존하는 귀한 차나무이다.“ 는 뜻이다. 276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던 명(明 : 1368-1644) 나라 때에는 백차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마도 백차 나무가 절멸되었거나 사람의 눈에 띄이지 않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서기 1930 년에 안길현 효풍진(孝丰镇)의 마령강(马铃岡)에서 우연히 산중에서 수 십 그루의 야생(野生) 백차수(白茶树)를 발견하였다. 안길현지(安吉县志)에 보면 “枝头所抽之嫩叶色白如玉,焙后微黄,为当地金光寺庙产”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차 나무의 가지 끝에서 백옥과 같은 연한 잎사귀가 돋아나는데 채취하여 말릴 경우 옅은 백색으로 변한다. 이 백차는 안길현에 있는 금광사(金光寺)에서 생산된 백차이다.” 는 뜻이다. 안길백차수(安吉白茶树)에서 봄철에 순백색(纯白色)의 어린 잎사귀들이 돋아 나는데 늦은 봄 쯤 되면 잎사귀가 백록색(白绿色)으로 변하고 여름에는 차잎이 완전히 녹색(绿色)으로 변한다. 안길현(安吉县)은 절강성(浙江省)의 서북부(西北部)의 서초계(西苕溪) 유역(流域)에 자리잡고 있으며 항주의 서북 6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안길현을 “중국(中国)의 죽향(竹乡)” 이라고도 칭한다. 왜냐하면 품질이 우수한 대나무가 다량 생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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