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5일 금요일

대홍포(大红袍) 명칭(名称)의 내력(来历) - 5/10

대홍포(大红袍) 명칭(名称)의 내력(来历) - 5/10 명태조(明太祖 : 서기 1368년- 서기 1398년) 주원장(朱元璋) 홍무(洪武) 18 년(서기 1385년)에 정현(丁显)은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상경(上京)하고 있었다. 무이산(武夷山)에 도착하여 갑자기 복통(腹痛)이 발생하여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천심영락선사(天心永乐禅寺)의 한 화상(和尚)이 소장(所藏)하고 있는 차엽(茶叶)을 끓여 마시고 나서 병통(病痛)이 즉시 멈추었다. 그리하여 정현(丁显)은 상경한 후 무사히 과거시험을 치를수 있었고 장원급제(状元及第)하였다. 후에 정현(丁显)은 천심영락선사를 방문하고 자기의 병을 치료해준 화상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현(丁显)은 화상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준 차엽(茶叶)의 출처(出处)에 관하여 문의했다. 정현(丁显)은 자기가 입고있던 대홍포(大红袍)를 차나무에 입혀주었다. 이로 인하여 이 차나무는 “대홍포(大红袍)” 란 이름을 얻었다. 정현(丁显)은 차(茶) 단지 속에 대홍포 차엽을 가득 담아 가지고 상경하였다. 얼마후에 황후(皇后)가 병에 걸렸다. 궁중의 어의들이 황후의 질병을 치료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정현(丁显)이 대홍포 차엽(茶叶)을 황후에게 헌상(献上)하여 황후(皇后)는 대홍포차를 마신 후 신체(身体)가 점점 건강해지게 되었다. 주원장은 매우 기뻐하며 홍포(红袍)를 정현(丁显)에게 하사하고 정현과 함께 친히 무이산 구룡과(九龙窠)를 방문하여 차수(茶树)에게 용은(龍恩)을 표시했으며,그후 부터 대홍포라고 칭하는 무이암차(武夷岩茶)는 황가(皇家)의 공차(贡茶)로 정해졌다. 매년(每年) 명나라 조정(朝廷)에서는 관리를 구룡과에 파견하여 차나무 위에 홍포를 덮어주었다. 이로 인하여 대홍포 차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정현(丁顯:서기 1358년-서기 1398년)은 명태조(明太祖) 홍무(洪武) 18년(서기 1385년)에 27세의 나이에 장원급제(状元及第)한 명조(明朝)의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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