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4일 수요일

소동파(苏东坡)의 음식양생경(饮食养生经):

소동파(苏东坡)의 음식양생경(饮食养生经):
역사상(历史上) 수 많은 문인(文人)들 중 북송(北宋)의 소동파(苏东坡)와 같은 사람이 드물다.  그는 각계 각층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를 역사상(历史上) 제일류재자(第一流才子)라고 칭한다.   “군자원포주(君子遠庖厨)” 란 말과 상관없이 그는 스스로 부엌에 드나들며 요리를 하였으며 "재조대중망전망후(在灶台中忙前忙后),불역락호(不亦乐乎)"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부엌 안에서 음식을 요리하느라고 바쁜데 그것 또한 락(樂)이 아니겠는가?“ 란 뜻이다. 남자들이 부엌 안에서 일하면 않된다는 속된 생각을 버리고 그는 요리하는데 재미를 느꼈으므로 재미있게  요리를했으며 스스로 새로운 요리 메뉴를  발명하였다.   그 당시 백성들은 소동파를 미식가(美食家)라고 칭했다.   소동파가 스스로 발명한 요리 메뉴 앞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들면  “동파육(东坡肉)”、과 “동파어(东坡鱼)”、와 “동파주자(东坡肘子 : 돼지의 허벅지 고기로 만든 요리)”、“동파두부(东坡豆腐)” 등등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람들은 동파육(东坡肉)이란 말만 들어도 침을 석자(三尺) 씩 흘린다고 한다.   소동파의《저육송(猪肉颂)》이란 다음과 같은 문장(文章)이 있다.  :“把锅洗干净,稍微放点水,让柴火冒烟但不要出现明火。等猪肉慢慢炖熟不要着急,火候到了自然是美味。黄州本地的猪肉非常好,价格又和泥土一样便宜。有钱的人不愿意吃,穷人家又不懂得烹饪。早上起来吃上两碗,管饱肚子你别管。”
  원래(原来) 저육(猪肉)은 송(宋) 나라 때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였으며  돼지의 발밑에 있는 진흙 처럼  값이없는 고기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송 나라 때 돈이있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거들떠 보지도 않했다.  소동파의 저육송으로 인하여 돼지고기 값이 폭등하였으므로 조정(朝廷)에서  한때 토론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먹은 이유 중 하나는 소동파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곤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贵者不肯吃,贫者不解煮” 라는속어가 유행했었다.  즉 "부자들은 돼지고기를 먹기 꺼려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아 먹는법을 모르고 있다.“ 는 뜻이다.  소동파의 저육(猪肉) 가공법(加工法) 때문에 사람들이 동파육이란 말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되었므며 동파의 돼지고기 요리의 숨은 비밀은 얕은 불로 오랫동안 천천히 삶는 비법이다.  소동파의 음식(饮食)에 관한 시문(诗文)은 상당히 많이 있다.   예를들면 《두죽(豆粥)》、《채갱부(菜羹赋)》、《동파갱부(东坡羹赋)》등이 있는데  식재(食材)는 주로 팥(赤豆)과 무(萝卜)와 청채류(青菜类) 등 일반가정에서 상용하는 채소(菜蔬)들이다.  소동파는 흔한 식재들의 자연미를 살려서 새로운 요리를 스스로 개발하였다.   양생(养生) 각도(角度)에서 볼 때  소동파의 요리는 일반가정에서 흔히 사용된 식재인데 인체에 유익한 영양이 풍부하고  값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소동파는 요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양생사계(养生四戒)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계 중 하나는 “부장지약(腐肠之药)” 이라고도 칭하는 “감취비농(甘脆肥浓)” 이다.   “감취비농(甘脆肥浓)”,이란?   달고 부 드럽고 맛있으며 기름진 각종 음식을 일컫는다. 이와같은 음식물은 장을 부패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동파는 부엌 안에는 물론이고 침실 안에 까지 벽에다 “양생사계(養生四戒)” 를 써서 붙여놓고  수시로 읽어보며 시시(时时)로 반성(反省)하였다.
  소동파는 양생사계를 실천하는 중에 “이기방식(已饥方食),미포선지(未饱先止)” 란 음식원칙(饮食原则)도 발견하였다.  다시 말하면 “배가 고플 때 식사를 하되 배가 부르기 전에 밥숟갈을 놓아라.” 는 뜻이다.  즉  기아감(饥饿感)이 있을 때 식사를 하되 절대로 배불리 먹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음식 절제(节制)를 하지않을 경우   장위(肠胃)의 부담(负担)을 증가(增加)시켜  주며  신체건강(身体健康)에 불리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양생사계 중 하나는 “만식이당육(晚食以当肉)” 인데 음식을 오랫동안 씹어 삼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배가 고플때 식사를 하면 보통채소(普通菜蔬)도 고기의 맛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소동파는 청담(清淡)한 음식을 주로 섭취하였으며  중년(中年) 이후에는 소식(素食)을 주로하였다.  소동파는 고기를 100 일 동안 만 입에대지 않으면 고기 생각이 나지 않으며 또 100 일 동안 고기를 입에대지 않으면 전혀 고기를 먹지않게 된다고 말했다.
소동파는 만년(晚年)에  친구 이공택(李公择)에게 보낸 편지속에 소동파 자기자신의 양생경험(养生经验)의 총결(總結)을 “간(悭)” 자(字) 하나를 써서 보냈다.  “간(悭)” 은 “검소(俭素)” 를 의미하며 근검절약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아껴서 지나치게 써버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간(悭)은  즉  연수지도(延寿之道)라고 칭했다.  소동파의 “간(悭)” 은 실제로  양생학(养生学)에서 말하는 “색(啬)” 과 동일한 의미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59장(第五十九章)에 :“治人事天,莫若啬。” 란 구절이 있다.   색(啬)은 '절약하다'  '인색하다' 는 의미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经)》 59 장(章)에 나오는 명제인데 “색(啬)”은 간박(简朴)、절약(节约)、진석(珍惜 : 진귀하고 소중하게 여겨 아낌)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노자(老子)는 “색(啬)” 의 이념(理念)은  수신(修身)과 치인(治人)에 필요하며 자연(自然)을 경외하는 마음이므로 “장생지도(长生之道)” 와 부합된다고 말했으며  색은 자연과 사람이 화해하는 인생경계(人生境界)에 도달케 해준다고 말했다.
  소동파는 “흘동서부단요이검소위주(吃东西不但要以俭素为主),환요세작만인(还要细嚼慢咽),담식이서포자(淡食而徐饱者),당유대익(当有大益)”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청담한 음식물을 검소하게 먹어야 하며  천천히 오랫동안 씹어서 삼킬 경우 서서히 배가 부르며 건강에 유익하다." 는 뜻이다. 소동파의  일상생활 중 관찰한 경험에 의한 말이다.  소동파의 음식양생경에 보면  ’我在黄冈的山中见到许多放羊人专门把羊驱赶到土地贫瘠、草木短小的山地,原因是这些地方的草短小而有味,羊不会一口吃得太多,需要小口慢慢细嚼,所以羊非常健康,也不会患病。”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황강(黄冈)의 산중에 있을 때 양을치는 목자들이 양떼를 토지가 척박한 목초지역으로 몰고가는데 그 지역에서 자라는 초목들은 토지가 빈척하므로 키가 작고 여린데 키가 작고 어린 초목들이 더 맛이 있다고 한다. 양들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풀을 뜯어먹지 못하고 조금씩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천천히 가늘게 씹어 삼킨다. 그리하여 양들은 건강하며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는 뜻이다.
  이와같은 음식지도(饮食之道) 외에 소동파는 식사후에 입안을 청소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동파는 주로 농차(浓茶)로 입안을 헹구어 주므로써   입안과  이빨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청소해 냈으며 입냄새를 제거시켰다.  농차는 소동파에게 현대인들의 마우스워시나 마찬가지였다.  소동파는 항상 입안을 깨끗하게 유지햇으며 소동파의 치아(齿牙)에 충치가 없고  견실(坚实)한 치아를 유지한 이유이었다. 또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치아(齿牙) 보호(保护) 편방(偏方)을 음식양생경에 기재해 놓았다.    “用煮松脂水加白茯苓末,每天早晚用少量放在口中,用温水漱口,如此坚持下来,不但可以“牢齿”,还可以“驻颜”与“乌发”。다시 말하면 “송진 삶은 물 속에 복령가를 가미하여 매일 아침과 저녁에 입속에 머금고 있다가 뱉고나서 따뜻한 물로 입안을 헹구어 내면 충치를 예방해 줌과 동시에 미용효과도 있고 머리카락을 검게해 주는 공효도 있다. 단 오래 지속해 주어야 한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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