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황제(乾隆皇帝)의 십대양생(十大養生) 비법(秘法) :
25 사서(史書) 속에 수록되어 있는 230여 황제(皇帝)들 중 장수(長壽)한 3명의 황제는 :남북조시(南北朝時)의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은 86 세(歲)에 세상을 떠났고,여황제(女皇帝) 무칙천(武則天)은 향년(享年) 82 세(歲)였으며, 건륭(乾隆)은 향년 89 세(歲이)다. 건륭(乾隆)은 일생동안 스스로 다음과 같은 양생4결(養生四訣)을 철저히 실행하였다. : “吐納肺腑,活動筋骨,十常四勿,适時進補。其中“十常”爲:齒常叩,津常咽,耳常彈,鼻常揉,睛常運,面常搓,足常摩,腹常捋,肢常伸,肛常提。“四勿”爲:食勿言,卧勿語,飲勿醉,色勿迷。“
건륭(乾隆)은 여행다니기를 즐겼다. 강남(江南)을 6 차례나 순시하였고, 오대산(五台山)을 3 차례 등산하였으며,기타 수많은 명산대천(名山大川)과 고찰(古刹)과 구사(舊寺)들을 유람하였다. 항주십경(杭州十景)을 비롯하여 여러 성향(城鄉)에 건륭의 어필제비(禦筆題碑)가 건립되어 있다. 오대산(五台山)은 산서성(山西省) 흔주시(忻州市) 오대현(五台县)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中国) 4대불교명산(四大佛教名山) 중 하나이다. 건륭은 봉건제왕(封建帝王) 중 희귀한 다재다예(多才多藝)의 황제(皇帝)이다. 그는 독서가 취미이므로 학식(學識)이 연박(淵博)하였으며 그의 정취(情趣) 또한 심광(甚廣)하여 만어(滿語)、몽어(蒙語)、유어(維語)、장어(藏語)、한어(漢語) 등 5종문자(五種文字)를 이해하였다. 건륭은 서법(書法)을 즐겼으며 특별히 조맹부체(趙孟頫體)를 좋아하였다. 건륭은 일생동안에 1300여 편(篇)의 글을 썼으며,4만(萬) 여수(餘首)의 시를 썼다, 건륭은 희극(戲劇)과 잡기(雜技)와 관등(觀燈)과 활빙(滑冰)을 관람하기 좋아하였고、 친히 극중의 배우로써 연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다방면의 다양한 활동(活動)은 건륭의 수신양성(修身養性)에 유익을 주었다. 조맹부(赵孟頫: 서기 1254 년 - 서기 1322 년)는 원(元) 나라 때 관료(官僚)이었으며 서화가(书画家)이었다.
건륭(乾隆)은 기거음식(起居飲食)에 규율(規律)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대략 6시에 기상하였고 먼저 씻고나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 후에 정무(政務)를 처리하고 나서 대신(大臣)들을 만났다. 오후(午後)에는 유람(遊覽)을 하였으며 만반(晚飯) 후(後)에는 책을 읽든지 습자(習字) 연습을 하든지,작문(作文)이나 시를 썼다. 그후에 취침하였다. 섭취하는 음식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위주로 하였으며 육류(肉類)는 소량만 섭취하였다. 건륭은 포식하지 않했으며 차(茶)를 즐겨마셨다. 마시는 물은 어용(禦用) 서산(西山)의 천수(泉水)를 마셨으며 흠연(吸煙)은 하지않았다. 건륭(乾隆)은 90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총명하였다. 건륭의 자호(自号)는 “십전노인(十全老人)” 이다. 중국의 25사(二十五史)란? 《史记》《汉书》《后汉书》《三国志》《晋书》《宋书》《南齐书》《梁书》《陈书》《魏书》《北齐书》《周书》《隋书》《南史》《北史》《旧唐书》《新唐书》《旧五代史》《新五代史》《宋史》《辽史》《金史》《元史》《明史》《清史稿》등 25부사서(二十五部史书)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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