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방원영(龐元英)의 저서 《담수(談藪)》에 수록되어 있는 손림(孫琳)에 관한 고사(故事) 한 토막이다.
북송(北宋) 때 방원영(龐元英)의 저서 담수(談藪)에 다음과 같은 손림에 관한 고사를 인용하여 수록해 놓았다.
:“張氏久病瘧,熱時如火,年餘骨立。醫用茸附諸藥,熱益甚。召醫宮孫琳診之,投小柴胡湯一帖,熱減十之八九,三服脫然。淋曰:此名勞瘧,熱從髓出,加以剛劑,氣血愈虧,安得不瘦?蓋熱有在皮膚、在臟腑、在骨髓, 非柴胡不可。若得銀胡,只須一服。南方者加減,故三服乃效。觀此,則得用藥之妙也。”
다시 말하면 “장씨는 오랫동안 학질에 걸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말라서 뼈만 앙상하다. 의사가 녹용과 부자가 혼합되어 있는 처방을 사용하여 치료했더니 열이 더욱 심해졌다. 의관 손림을 초청하여 치료했다. 손림이 장씨에게 소시호탕(柴胡湯) 한 첩을 복용시켰더니 80% 내지 90% 의 열이 감소되었으며 세 첩을 복용하고 나서 장씨의 병은 치유되었다. 손림은 “당신의 병은 노학(勞瘧)이라고 칭하는데 열이 골수로부터 비롯되었오. 약력이 강한 약재를 사용했으므로 기혈이 더욱 허해졌는데 편안합니까? 대부분의 열은 피부와 장부와 골수에 머물러 있는데 시호가 아니면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은시호(銀柴胡) 한 첩만 복용하면 치유됩니다. 남방 사람들을 치료할 경우에 약량을 가감해야 되므로 세 첩을 복용해야 효력이 있습니다. 복용해 보시면 약효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고 장씨에게 말했다.
방원영(龐元英)의 자(字)는 무현(懋贤)이고 단주(单州) 사람이며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详)이다. 대략 북송(北宋) 신종(神宗 : 서기 1067년 - 서기 1085년) 사람이며 정치인이다. 다. ,官朝散大夫。원풍5년(元豐五年:서기 1082년)에 상서성(尚書省) 관주객낭중(官主客郎中)에 임명되었다. 저서(著書)에 《문창잡록(文昌杂录)》6권(六卷)과 《담수(談數)》1권(一卷)과《문창십록(文昌什錄)》 4권(四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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