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공공산(龔公山) 보화사(寶華寺)

공공산(龔公山) 보화사(寶華寺)

보화사(寶華寺)는 당(唐) 나라 제 10 대왕 현종(玄宗 : 서기 712 년 - 서기 756 년천보연간(天寶年間)에 창건된 절인데 원명(原名)은 서당보화선원(西堂寶華禪院)이며 강서성(江西省) 공현(贛縣) 전촌진(田村鎮) 동산촌(東山村)에 자리잡고 있는 공공산(龔公山)에 건립했는데 공공산(龔公山)은 전촌진(田村鎮) 중심부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사(隱士) 공량(龔亮)이 살고있던 산이다.


마조(馬祖 : 서기 709년 -서기 788년)라고 불리는 화상(和尚)이 어느 날 공공산(龔公山) 주인 공씨(龔氏)를 찾아가서 산의 일 부분과 손수 농사를 지어 먹을 땅을 한 조각 만 시주(施主)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공씨(龔氏)는 쾌히 마조 스님에게 공공산(龔公山)의 일 부를 사용하도록 승락해 주었다.


마조(馬祖) 스님은 즉시 가사(袈裟)를 벗어 햇빛을 가리는 집붕으로 삼고 촛불을 켜놓고 선법(禪法)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가사(袈裟)? 스님들의 회색 옷 위에 걸치는 면포(綿布)를 일컫는다.


향불 타는 냄새가 온 산에 널리 퍼져 나갔다. 얼마 후에 공씨(龔氏)는 자기 소유의 밭(田)과 산(山)을 전부 마조화상(馬祖和尚)에게 시주해 버렸다. 공공산(龔公山)의 전설은 이와같다.


그리하여  공공산(龔公山)은 마조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선법(禪法)을 펼치는 산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남한(南韓)과 일본(日本)을 비롯한 동남아(東南亞) 여러 국가(國家)의 불교(佛教)와 공공산(龔公山)은 깊은 인연이 있다공공산(龔公山)에는  당(唐) 나라 때 건립된 명탑(名塔)인 옥석탑(玉石塔)과 당(唐) 나라 때 심었다는 고백(古柏 : 측백나무)과 은행(銀杏) 나무를 비롯하여 십대보물(十大寶物)과 유공권(柳公權)과 이발(李勃) 등 역대(歷代) 명가(名家)들이 쓴 석각비명(石刻碑銘)들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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