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유유(屠呦呦)의 배후(背后)에 있는 갈홍(葛洪)은 진정으로 노벨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갈홍(葛洪: 서기 283
년~서기 364
년)은 서진(西晋)에서 태어나서 동진(东晋)에서 향년(享年)
81
세(岁)로 사망하였다.
갈홍은 진(晋)
나라 때 저명(著名)한 도사(道士)였으며 연단가(炼丹家)임과 동시에 의학가(医学家)였다.
갈홍의 부인 포고(鲍姑)
역시 침구술(针灸术)에 정통(精通)하였다.
갈홍의 숙조부(叔祖父
:
작은 할아버지) 갈현(葛玄)은 삼국시기(三国时期)의 저명(著名)한 방사(方士)였으며 그의 존칭(尊称)은 “갈선홍(葛仙翁)”이다.
갈홍(葛洪)이
13
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가세는 매우 빈한(贫寒)하였다. 갈홍(葛洪)은 유가(儒家)의 경전(经典)을 탐독하였고 명가도사(名家道士)를
두루 방문하고
연단술(炼丹術)과 불로장생술(不老长生術)을 학습(学习)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화타(华佗)의 의서와 장중경(张仲景)의 의서(医书)들을 정독(精读)하였다.
갈홍(葛洪)이 명성을 얻은 후에 궁정에서 고관대작에 천거하였으나 거절하고 민간행의(民间行医)를 하며 제세구인(济世救人)하였다.
갈홍(葛洪)의 주요(主要)
저작(著作)은 《포박자(抱朴子)》내편(内篇)
20
권(卷)과 외편(外篇)
50
권(卷)이 있는데 도가(道家)의 연단술(炼丹术)의 명저(名著)이다.
《옥함방(玉函方)》은 갈홍(葛洪)의 주요(主要)
의학저작(医学著作)이며 100
권(卷)으로 조성되었으나 애석하게도 대부분 분실되어 실전(失传)되고 있다.
단지 갈홍(葛洪)의《옥함방(玉函方)》
중 상견병(常见病)과 급병(急病)과 급성전염병(急性传染病)의 치료방법(治疗方法)
만 간단하게 정리되어《주후급비방(肘后急备方)》
3
권(卷)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주후급비방(肘后急备方》3권은《주후구졸방(肘后救卒方)》)이라고도 칭한다.
주후(肘后)란?
팔꿈치의 뒷쪽이란 의미인데 본의서(本医书)는
팔꿈치 옆에 끼고 다닐 정도로
휴대하기 편리하며 어디서나 쉽게 펴 읽어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급비(急备)와 구졸(救卒)이란?
급구(急救)
또는 구명(救命)의 뜻을 갖고 있다.
주후급비방(肘后急备方)은
한의학 역사상 최초의 임상급구수책(临床急救手册)이다.
《주후급비방(肘后急备方)》
속에 갈홍(葛洪)은 천화병(天花病)과 결핵병(结核病)과 광견병(狂犬病)과 기생충병(寄生虫病)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해 놓았으며 치료방법은 세계 의학사상(世界医学史上)
최초의 기록이다.
갈홍(葛洪)의 광견병(狂犬病)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은 서양 보다 1000여 년이나 앞섰다. 또 기생충병(寄生虫病)에 대한 인식(认识)과 치료(治疗)는 서양 보다 1500여 년이나 앞섰다.
갈홍(葛洪)은 현대(现代)
인류(人类)의 전염병(传染病)
방치(防治)의 시조(鼻祖)이다.
《주후급비방(肘后急备方)》
속에 기록되어 있는 한 구절이 투유유(屠呦呦)에게
영감(灵感)을 제공하여 전세계(全世界) 인류(人类)를 학질(疟疾)의 공포로 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투유유의 노벯상 수상으로 인하여
세계(世界)
의학계(医学界)는 중국(中国)의 고전의학(古典医学)
저작(著作)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추세(趋势)라고 한다.
고대로 부터 중국에는 수 많은
위대(伟大)한 의학가(医学家)들이 있었다.
예를들면 춘추전국(春秋战国)
시대의 “신의(神医)”
편작(扁鹊)과 동한말년(东汉末年)의 “신의(神医)”
화타(华佗)와 “의성(医圣)”
장중경(张仲景)과 당(唐)
나라 초기(初期)의 “약왕(药王)”
손사막(孙思邈)과
명(明)
나라의 대의학가(大医学家)
이시진(李时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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