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우(荔浦芋
: 토란)의 전설(传说)
해진(解
缙 : 서기 1369
년-
서기 1415
년)은 명(明)
나라
홍무(洪武)
2 년에 태어나서
한림원(翰林院)
대학사(大学士)를 지냈으며 명(明)
나라 영락(永乐)
초년(初年)에 남방지역(南方地域)에 한재(旱災)가 계속되어 쌀 한 톨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특별히 광서지역(广西地域)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해진(解缙)은 심사숙고 끝에 황상(皇上)에게 광서지구 백성들의 부세(赋税)를 경감(减轻)시켜 달라고 상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해진의 부인이 여포우(荔浦芋
:
토란)을 쪄가지고 해진 앞에 대령했다.
해진은 토란(芋头)과 서랑(薯莨)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서랑(Dioscorea)은
마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해진은
유년시절 고향에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할 때
서랑(薯莨)
쪄서 먹고 배고픔을 달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해진(解缙)은 성조가 자기 집에 당도하기 2
시간 전부터 여포우를 삶기
시작하였다.
성조가 자기 집 앞에 당도할 무렵에 여포우 삶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였다.
해진(解缙)은 즉시 잘 삶아진 여포우를 절반을 잘라서 황상(皇上)의 손에 쥐어 주고 또 해진 자신도 황상이 보는 앞에서
한 입에 넣고 먹어 버렸다.
황상(皇上)은 해진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한 입 베어먹었다.
황상이 입안에 여포우를 집어넣고 씹어 본
즉
맛이 쓰고 시고 떫었으며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해진은 황상의 먹는 모습을 본 후:“폐하(皇上)!
맛이 어떻습니까?”
고 물었다.
주체(朱棣)는:“해진학사(解缙学士)!
이것이 무슨 음식이길래 당신은 한 입에 넣고 꿀떡
삼킵니까?
짐(朕)은 도저히 삼킬수가 없구려!
” 라고 말했다.
해진은:“폐하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있군요!
이 음식은 산야(山野)에 자라는 서랑(薯莨)이라고 불리는 식물의 뿌리입니다.
소신(小臣)이 유년시절 고향에 흉년이 매년 들어 먹을 양식이 없을 때 배고픔을 달래주던
음식이옵니다.
그래서 소신은 한 입에 꿀떡 삼킬수
있습니다.
현재 강남지역(江南地域)에 계속되는 한재 때문에 백성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서(广西)
지역이 한재(旱災)의 피해가 제 일 큽니다.
그래서 이 지역 백성들은 서랑으로 매일 매일
연명하고 있습니다.”
고 아뢰었다.
주체(朱棣)는 :“영락태평성세(永乐太平盛世)가 겨우 이 정도 밖에 않된단 말이냐?”
라고 해진에게 말했다.
해진은 “폐하(皇上)!
소신이 감히 폐하께 망언(妄言)을 했나봅니다.”
고 아뢰었다.
성조(聖祖)
주체(朱棣)는
광서지구(广西地區)
백성들에게 앞으로 3
년 동안 부세(赋税)를 감면해 주라고 어명을 내렸다.
해진(解缙)의 계모(计谋)가 성공했다.
해진은 서랑(薯莨)과 여포우(荔浦芋
:
토란)가 서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하여
계모를 꾸몄는데 성공한 셈이다.
실제로 성조 황제(皇帝)에게 서랑(薯莨)을 드리고 자기 자신은 여포우(荔浦芋
: 토란)를 먹었다.
이상의
고사는 《해진교접우(解缙巧接芋)》에 실려있는
아름다운 고사(故事)인데
현재까지 유전(流传)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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