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모첨차(信陽毛尖茶) :
중국 고대로 부터 신양차구(信陽茶區)에서 신양모첨차를 재배한 역사는 유구(悠久)하다. 지금으로 부터 2200여 년전 동주(東周 : BC 771 년 - BC 221 년) 시기(時期)와 당(唐) 나라 때 이미 신양(信陽)에서 차엽(茶葉)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760 년~서기 780 년)에 차학가(茶學家) 육우(陸羽)는 세계(世界) 최초의 차학전저(茶學專著)인 《다경(茶經)》을 편찬하였다. 그 당시 신양(信陽)은 팔대차구(八大茶區)의 하나인 회남차구(淮南茶區)에 속해있었다. 다경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淮南以光州(今潢川、光山一帶上,義陽郡(今信陽市平橋區、溮河區)、舒州次,……」" 다시 말하면 "회남은 광주(현재 황주와 광산 일대의 의양군(현재 신양시 평교구와 사하구)와 서주 등이다." 는 뜻이다. 당(唐) 나라 때 《지리지(地理志)》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義陽郡(今信陽市平橋區、溮河區)土貢品有茶」" 다시 말하면 "의양군(현재 신양시 평교구와 사하구)에서 조정에 바치는 토공품 중 신양차가 포함되어 있다." 는 뜻이다. 송(宋) 나라 때 시인(詩人) 소동파(蘇東坡)는 신양차를 다음과 같이 칭찬(稱讚)했다. "「회남차(淮南茶),신양제일(信陽第一)」" 다시 말하면 "회남차 중에서 신양차가 으뜸이다." 는 뜻이다. 그 당시 공품(貢品) 중 상등차(上等茶)는 현재의 신양모첨(信陽毛尖)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신양모첨(信陽毛尖)은 송(宋) 나라 말기의 산차(散茶)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신양모첨(信陽毛尖)은 북송(北宋) 부터 명조(明朝) 까지 생산된 산차(散茶)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므로 신양모첨에 관한 논란이 발생했다. 역사상(歷史上) 신양모첨(信陽毛尖)의 주요산지는 현재(現在) 신양시(信陽市) 사하구(溮河區)와 평교구(平橋區)와 라산현(羅山縣)과 오운(五雲 : 車雲山、集雲山、連雲山、天雲山、雲霧山)과 흑룡담(黑龍潭)과 백룡담(白龍潭)과 하가채(何家寨)와 진뢰산(震雷山)과 영산사(靈山寺)등이다. 신양모첨차는 생진해갈(生津解渴) 작용과 청심명목(清心明目) 작용과 성뇌(醒腦) 작용과 거니소식(去膩消食) 등 다종(多種) 영양가치(營養價值)가 있는 명차(名茶) 중 하나이다. 하남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는 정주시(鄭州市)의 남쪽 30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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