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豆)
고인들은 ”이두위반(以豆爲飯), 용이치병(容易致病).”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콩으로밥을 만들어 먹으면 쉽게 병에 걸린다.” 는 뜻이다.
진(晉) 나라 때 장화(張華)의 저서 박물지(博物誌)에 보면 ”인식두삼년(人食豆三年), 즉신중(則身重), 행지난(行止難). 인상식소두(人常食小豆), 영인기조조(令人肌粗燥).”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콩을 3 년 동안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어려워 진다. 또 팥을 자주 먹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건조해 진다” 는 뜻이다.
또 혜강(嵇康)의 양생론(養生論)에 보면 ”두영인중(豆令人重), 유영인명(楡令人暝), 합환견분(合歡蠲忿), 훤초망우(萱草忘憂), 우지소공지야(愚智所共知也).”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콩은 사람의 체중을 불려주고 느릅나무는 사람을 우매하게 만들며 합환은 화를 가라앉혀 주고 훤초는 근심과 걱정을 덜어 준다. 미련한 자나 총명한 자가 모두 잘 알고 있다.” 는 뜻니다.
그래서 두류(豆類)는 주식으로 삼지 못한다.
또 범승지서(氾勝之書)에 보면 ”대두보세이위의(大豆保歲易爲宜), 고지소이비흉년(古之所以備凶年).”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콩은 저장해 두고 먹을수 있는 곡식임으로 옛날부터 고인들은 흉년을 대비하여 콩을 비축해 두었다.” 는 뜻이다.
또 논형(論衡)에 보면 ”두맥수려(豆麥雖粝), 역능유기(亦能愈饑); 식두맥자(食豆麥者), 개위려이불감(皆謂려/而不甘), 막위복공무소식(莫謂腹空無所食).”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콩과 보리는 거칠지만 역시 굶주림을 해결해 준다.
사람들이 콩과 보리를 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공복에 먹을 수 있다.” 는 뜻이다. 동한(東漢)의 제 1 대왕 광무제(光武帝 : 서기 전 140 년 – 서기 전 87 년)가 북경의 남방 140km 지점에 있는 호타(滹沱)에 도착했다. 공손이란 신하가 콩국을 무제에게 바쳤다. 콩국은 위장이 텅비어 꼬르륵 소리가 날때 먹는 미식(美食)이란 영예를 얻었다. 그래서 요즘도 북경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콩국이 잘 팔리고 있다.
송(宋) 나라 때 도곡(陶谷)의 저서 청이록(淸異錄) 중에 기록되어 있는 호타반(滹沱飯)에 보면 ”광무제행군무량(光武帝行軍無糧), 빙이헌맥반두죽(冯異獻麥飯豆粥), 면도호타하(勉渡滹沱河). 식호타반경성일종광영료(食滹沱飯竟成一種光榮了).”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광무제가 행군할 때 양식이 없었다. 빙이 장군은 광무제에게 꽁보리밥과 콩국을 바쳤다. 그래서 광무제는 호타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이때부터 호타반을 대접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되었다.” 는 뜻이다.
형무소(刑務所) 죄수들에게 콩밥을 먹이는 이유가 있는데 콩은 너무 자주 먹어도 신체에 해롭다.
혜강(嵇康 : 서기 223 년 – 서기 263 년)은 3국시대 위(魏) 나라 문학가, 사상가, 음악가, 한의학가이다. 자(字)는 숙야(叔夜)이고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혜강은 양생복식법을 연구하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방식을 주장했다. 저서에 양생론과 답난양생론(答難養生論)과 난댁무길흉섭생론(難宅無吉凶攝生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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