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9일 수요일

침 한 방 맞고 활을 쏘다.

침 한 방 맞고 활을 쏘다. ​견권(堅權: 서기 541년 – 서기 643년)은 수(隋) 나라와 당(唐) 나라에 걸친 명의였다. 그는 평생을 의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침구로 병을 치료하는데 남달리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수 나라 때 노주(魯州 : 지금의 산동성) 자리(刺吏: 지금의 도지사) 고적금(庫狄嵚)이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활을 잡아 당겨 쏘지 못할 정도로 어깨와 팔과 손가락의 통증은 말 할수 없이 심했다. 사방팔방으로 의사를 구해 보았다. 천만다행으로 명의(名醫) 견권(堅權)을 발견하였다. ​견권은 ”고장군님! 성위에 나즈막하게 쌓은 담위에 활을 올려놓고 쏘면 괜찮을 터인데요! 아무튼 침 한 방으로 다시 활을 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 말했다. ​고장군은 반신반의 하면서 활을 준비해 놓았다. 견권(堅權)은 침통에서 가늘고 기다란 은침(銀鍼) 한 개를 꺼내어 고장군의 견우혈(肩髃穴)에 가볍게 자침하였다. 고장군은 갑자기 팔과 어깨에서 맥이 빠지고 감각을 잃은 마비된 느낌을 느꼈다. 차갑고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다. 잠시 후 깊고 맑은 샘물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 처럼 시원해 졌다. 한 줄기 정기가 5 장 6 부로부터 솟아 올라오는 것 같음을 느꼈다. 기(氣)가 통하고 힘이 생기고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발침하기를 기다린 후 고장군은 활을 잡아 당겨 화살을 쏘아 보았다. 힘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 미칠것 처럼 기뻤다. 고장군의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 마다 견권(堅權)의 침술에 탄복하였다. ​견권(堅權)의 명성은 온 세상에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당태종(唐太宗: 서기 626년- 서기 649년) 이세민(李世民)은 친히 견권(堅權)의 집을 방문하여 견권(堅權)과 담소하였다. 그때 견(堅權)권의 나이 일 백 팔(10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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