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8일 금요일

고향을 그리워하던 유수(劉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유수(劉秀) 서기(西紀) 25 년(年) 유수(劉秀)는 서한 (西漢) 정권(政權)을 중건(重建)한 후 도읍을 건안(建安)에 세우고 동한(東漢)의 초대 임금 광무제(光武帝: 25 - 57)가 되었다. 유수(劉秀)는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한 후(後) 국가(國家)의“중흥(中興)”정책의 일환으로 이국이민(利國利民) 정책과 부국강병(富國強兵) 정책(政策)을 반포하고 실시하였다. 유수는 자나 깨나 고향을 생각하며 잊지 못했다. 사적(史籍)에 기재(記載)된 바에 의하면 유수(劉秀)는 재위(在位) 32 년(年) 동안 모두 5차례나 고향(故鄉)인 조양(棗陽)을 방문하여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가 둘러보고 제조(祭祖)한 후 고향에 살고있는 친척들과 옛 친구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고 회궁(回宮)하였다. 금의환향(錦衣還鄉)한 유수(劉秀)는 자기 고향(故鄉)에 많은 은사(恩賜)를 베풀었다. 고향의 행정구획(行政區劃)을 승급(升級)시켜 주었고 할거세력(割據勢力)들을 제거시켜 줌으로써 평화스러운 고향을 만들어 주었다. 건무(建武) 6 년(서기 30 년)에는 유수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장능향(章陵鄉)의 이름을 장능현(章陵縣)으로 승격(升格)시켜 주었으며 장능현(章陵縣)에 특수(特殊)한 우혜정책(優惠政策)을 폈다. 건무(建武) 6 년 춘절(春節)에 유수(劉秀)는 장능(章陵) 현민(縣民)들에게 전조(田租)와 각종(各種) 차역(差役:부역)을 면제(免除)시켜 주는 조령(詔令)을 내렸다. 유수(劉秀)는 또 자신의 출생지(出生地)인 조양(棗陽)과 어릴 때 자라던 생장지(生長地)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사료(史料)에 기재(記載)된 바에 의하면 유수(劉秀)는 자기 출생지(出生地)인 제양현(濟陽縣)을 선후(先後) 3 차례 방문하고 제양현민들에게 향후 8 년 동안 면세조치를 하라고 조령(詔令)을 내렸으며 어릴 때 생장지(生長地)인 남돈현(南頓縣)을 두 차례 방문하고 나서 남돈현민들에게 향후 2 년 동안 전조(田租)를 면제(免除)시켜주고 1 년 동안 각종 부역(徭役)을 면제(免除)시켜 주라는 조령(詔令)을 내렸다. 명군(明君) 유수(劉秀)는 이와같이 가향(家鄉)과 고토(故土)에 대하여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전통(傳統) 미덕(美德)을 지니고 있었다. (湖北省 襄樊日報에서 轉載) 다음은 원문이다. "劉秀眷念于棗陽 西元25年,劉秀稱帝,重建漢政權,史稱東漢。 劉秀平定天下後,頒布實施了一系列利國利民、富國強兵的政策和措施,使國家走上了“中興”之路。日理萬機之際,他還唸唸不忘家鄉、情係故土。據史籍記載,劉秀在位32年,先後5次回到故鄉棗陽。在棗陽,劉秀多次進行祭祖並看望、款待族人、鄉親,表達眷念之情。 在衣錦還鄉的同時,劉秀還給予故鄉許多恩賜,一是升級家鄉的行政區劃,劉秀在削平主要割據勢力、全國統一已成定局的情況下,于建武六年(西元30年),下詔用自已祖陵章陵的名字,將故鄉舂陵鄉升格為章陵縣;二是對章陵縣實行特殊的優惠政策,建武六年春,劉秀詔令免除章陵的田租及各種差役。劉秀不僅眷念照顧故鄉棗陽,而且對其出生地、幼時生長地也都寄予深情。據史料記載,劉秀對其出生地濟陽縣,先後三次詔令免除全縣徭役8年;對幼時生長地南頓縣,先後兩次詔令免除全縣田租2年、徭役1年。一代明君劉秀這種熱愛家鄉、依戀故土、知恩圖報的傳統美德,在他的故鄉棗陽一直流傳至今,也必將世世代代發揚光大。湖北省-襄樊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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