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9일 토요일
동한(東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구해준 괴수(槐樹:홰나무)
동한(東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구해준 괴수(槐樹:홰나무)
동한(東漢) 건무(建武) 연간(年間)의 백죽원사(白竹園寺)는 현재까지 2000여 년의 역사(歷史)를 갖고있으며 상번(襄樊)의 저명(著名)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유수(劉秀)가 어렸을 때 백죽원사(白竹園寺)에 가서 스승님에게 글도 배우고 예술(藝術)도 배웠으며 무술(武術)도 배웠고 모든 일에 대하여 스승님과 의논도 하였다. 그래서 백죽원사(白竹園寺)는 유수(劉秀)의 전기고사(傳奇故事)와 특별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은 한 그루의 괴수(槐樹)가 유수(劉秀)를 구해 주었다는 흥미진진한 고사(故事)이다.
유수(劉秀)가 조양(棗陽) 용릉(舂陵)에서 기병(起兵)하여 완성(宛城)을 향하여 서쪽으로 진공할 때 여러 차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육양현(淯陽縣) 경내(境內)로 진입한 후(後) 남양(南陽) 태수(太守) 견부(甄阜)가 이끄는 십만정병(十萬精兵)들이 급히 완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질주하고 있었다. 좁은 길목에서 양군은 만나 서로 양보 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쌍방(雙方)은 즉시 목숨을 내걸고 싸움을 전개해야 될 지경에 부딪혔다.
격전(激戰)이 개시되려고 할 때 돌연(突然)히 하늘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양쪽 군대(軍隊)는 짙은 안개에 뒤덮혀 서로 지척(咫尺)을 분간 할 수 없었다. 견부(甄阜)는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후 기병(騎兵)을 총 출동시켜 돌격하였다. 유수가 이끄는 의군(義軍)들은 견부의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없어 모두 흩어져 걸어서 도망치고 일시 대혼란(大混亂)을 겪고 패배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유수(劉秀)는 말을 채찍질 하여 다시 남(南)쪽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유수가 후퇴하며 말을 달리고 있는 도중에 작은 누이 동생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작은 누이 동생 백희(伯姬)는 물밀듯이 후퇴하는 병마(兵馬)들에 짓밟혀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다. 유수(劉秀)는 허리를 굽혀 손을 내밀어 누이 동생을 들어 올려 말의 등위에 앉힌 후 조양(棗陽) 방향(方向)으로 질주하였다.
농무(濃霧)는 점차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패전(敗戰)한 유수(劉秀)의 심정은 복잡다단하였다. 유수(劉秀)는 백희(伯姬)와 더불어 수 십리 길을 달렸다. 돌연(突然)히 산발(散髮)하고 울고 있는 누이 유원(劉元)을 만났다.
유수(劉秀)는 남쪽을 향하여 도망치고 있는 한 무리의 의군들 속에 끼어있는 누이에게 ”누나! 빨리 말 위에 올라 타시오!” 라고 말했다.
유수의 누이 유원(劉元)이 주위를 살펴보니 남동생 유수와 여동생 백희가 말 위에 타고 있었다. 그래서 유원은 유수에게 머리를 흔들며 ”나는 걸어가도 괜찮으니 너희들이나 빨리 도망가라.” 고 말하며 단연 거절하였다.
유수(劉秀)는 할수없어 밧줄로 두 자매를 묶어 말고삐에 매달아 놓았다. 이때 유수는 멀리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희뿌연 먼지를 보았으며 군사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함성 소리를 들었다. 유수는 계속 왕망의 병마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유원(劉元)은 로변(路邊)에서 막대기를 하나 주어 말의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하여 세게 내리쳤다.
청려마(青驪馬)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를 지르면서 질주하였다. 유수는 자기 누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순간적으로 유수의 누이를 묶어 두었던 말고삐가 느슨해지면서 풀어지는 바람에 누이는 땅에 떨어져 왕망의 군대에게 도살(屠戮) 당하고 말았다.
유수(劉秀)와 백희는 백죽원사(白竹園寺) 부근(附近)에 당도하였다. 유수와 백희도 피곤하고 말도 지쳐 있었다. 왕망의 추병(追兵)들은 계속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때 길가에 서 있는 큰 괴수(槐樹:홰나무)가 갑자기 중간(中間)이 찢어지며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중앙에 큰 공간이 생겼다. 유수(劉秀)는 매우 기뻐하며 말에서 뛰어 내려 백희와 함께 괴수의 중앙에 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괴수(槐樹)는 즉시 찢어진 부분을 오무리기 시작하여 유수와 백희를 감추어 보이지 않게 숨겨 두었다.
유수가 가장 아끼는 청려마(青驪馬)는 주인(主人) 유수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두 사람을 내려놓고 계속 남쪽을 향하여 질주하며 왕망의 군대를 남쪽으로 유도하였다.
왕망(王莽)의 군대(軍隊)들이 청려마를 추격하며 유수가 숨어있는 괴수 옆을 스치고 지나간 후 대괴수(大槐樹)는 스스로 열려져서 유수(劉秀)와 백희는 무사히 전란을 피하여 생명을 구했다.
그후 대괴수(大槐樹)는 찢어진 상태로 살아서 외실내공(外實內空)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서 있었다.
유수(劉秀)와 백희가 타고 다닐 말이 없어 수심에 가득차 있을 때 멀리서 질주하여 달려오는 청려마(青驪馬)를 발견하였다. 유수(劉秀)는 청려마(青驪馬)를 반기며 말 위에 백희를 태우고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찾아 다시 불러 모아 왕망(王莽) 군대(軍隊)를 토벌(討伐) 할 계획을 다시 세웠다.
다음은 湖北省 襄樊日報에서 轉載한 원문(原文)이다.
"槐樹救劉秀”的故事
建于東漢建武年間的白竹園寺,距今已有近兩千年的歷史了, 因其天造地設般的獨特自然和人文景致,成為襄樊著名的旅遊景點之一。
因為劉秀年輕時曾在白竹園寺拜過師、學過藝、練過武、議過事,所以白竹園寺關于劉秀的傳奇故事特別多,其中,“槐樹救劉秀”的故事,一直為人們津津樂道。
卻說劉秀在棗陽舂陵起兵西進宛城,途中接連打了幾個勝仗。進入淯陽縣境內後,又與南陽太守甄阜所率馳援宛城的十萬精兵猝然相遇。狹路相逢,雙方立馬展開拚死搏殺。孰料,天公作惡,激戰正酣時,突然天降大霧,濃霧如幕,罩住了兩軍,咫尺之間難辨人面。甄阜見天賜良機,急忙催動騎兵,乘勢衝殺過來。義軍徒步,難以抵擋,一時大亂,全線潰敗。
劉秀也是荒不擇路,策馬向南狂奔。正在疾行間,劉秀忽然看到小妹妹伯姬摔倒在路旁,身邊兵馬如潮水般蜂擁而過,小妹隨時有被亂軍踐踏喪命的可能,處境十分兇險。千鈞一發之際,劉秀來不及多想,彎腰伸手,迅捷拽起伯姬,置于馬背,向棗陽方向奔逃。
濃霧漸漸散去,戰敗後的情景讓劉秀心驚肉跳。劉秀與伯姬疾馳十數裏地,又突然看到二姐劉元發髻散亂,扯著啼哭的女兒,夾在人群中艱難地向南逃命,神情十分狼狽,劉秀心中一緊,急呼:“二姐,快上馬!”
劉元抬頭一看,見弟弟和妹妹共騎一匹馬,馬上搖頭擺手,斷然拒絕道:“不要管我,你們快逃!”劉秀勒住韁繩,欲拉姐姐上馬。此時遠處塵土飛揚,喊殺聲由遠而近,追兵眼看就要殺過來了。劉元撿起路邊一根粗木棍,朝馬臀上猛力擂去。青驪馬遭此狠擊,負疼長嘶著向前竄去。劉秀只好眼含熱淚,松韁任馬狂奔,把姐姐撇在腦後,任由莽兵屠戮。
青驪馬雖說健碩快捷,但因馱著劉秀兄妹二人,體力漸漸有些不支。當劉秀逃到白竹園寺附近時,早已是人困馬乏,眼看著追兵又要逼近,兇險迫在眉睫!恰在此際,旁邊大槐樹突然從中間裂開來,內中空間恰好可容兩人,劉秀見狀,大喜過望,急忙攜著伯姬跳下馬來,躲了進去。兄妹倆剛藏好,槐樹立即合上,把倆人遮蓋得嚴嚴實實。青驪馬倣佛也懂得主人心思,待倆人剛跳下,就箭一般地向南邊狂奔不止,把追兵引開了去。莽軍過後,大槐樹又自動裂開,劉秀二人由此得救,大槐樹從此再未合上,外實內空,成為奇觀。
劉秀兄妹躲過一劫後,正在為無坐騎而發愁時,青驪馬又從遠方飛馳而來,劉秀見了,轉憂為喜,急與伯姬重新跳上馬,去尋找失散的大部隊,重新踏上了討伐王莽的徵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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