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불언(食不言)
전통적인 양생학에 보면 ”성인강석자여금(聖人講惜字如金), 취시위료진량감소인체정기신외설(就是爲了盡量減少人體精氣神外泄)”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옛날 성인들은 될수 있는 대로 인체의 정(精)과 기(氣)와 신(神)의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을 황금(黃金)과 같이 아껴서 하여라.” 는 뜻이다.
고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의 자모(慈母) 여와(女媧)라는 여신(女神)이 있다. 천지개벽 후 지구상에는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조수(鳥獸)와 충(蟲)과 어류(魚類)가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지구상은 황량(荒凉)하고 적막하였다. 대신(大神) 여와(女媧)가 광활한 대지를 거닐고 있노라니 무척 고독하였다. 그래서 여와(女 媧)는 연못가로 가서 황토 흙과 물을 혼합하여 주물럭 거려 연못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대로 흙덩이를 만들었다. 얼마 후에 흙덩이는 응애! 응애! 울며 기뻐서 훌쩍 훌쩍 뛰어 다녔다.
여와(女媧)는 이 아기의 이름을 “인(人)” 이라고 지었다. 여와(女媧)는 아기를 보고 매우 만족하였으며 계속 황토 흙과 물을 섞어 반죽하여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만들었다.
이상은 중국의 인간 창조 신화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여와(女媧)는 자기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과연 여와(女媧)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확하게 알수 없지만 물 위에 비친 여와(女媧)의 얼굴을 상상해 보면 여와(女媧)의 모습을 대강은 추측할 수 있다.
여와(女媧)가 인간을 창조할 때 어째서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와 오직 한개의 입을 만들었을까?
인간에게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말은 적게 하라고 한 개의 입을 주었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도리가 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2400여 년전 춘추전국 시대의 철학가 노자(老子)는 자연의 심오한 이치를 깨닫고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했는데 도덕경에 ”다언수궁(多言數窮), 불여수중(不如守中)”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말을 많이 하고 수다를 떠는 것은 중간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는 뜻이다.
벙어리를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은 매일 말을 하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장시간 오래하면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 소모된다고 믿고 있다.
기(氣)는 할아버지요 정(精)은 아버지이며 신(神)은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氣) 자(字)는 공기(气)와 곡식(米)을 합한 자(字)이다. 일상 생활 중 심기(心氣)가 화평(和平)하다는 말은 기분이 상쾌하다는 말이다.
노(怒)를 내포한 말을 해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노즉상간(怒則傷肝), 노즉기상(怒則氣上)” 하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는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 말을 하면 기와 혈이 상행(上行)하여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 외에 대노(大怒)하면 형(形)과 기(氣)가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된다. 또 얼굴과 눈의 모양이 비뚤어지고 변형된다. 또 장기간 화를 내고 있으면 얼굴의 모양이 화낸 상태로 굳어져서 얼굴 모양이 몹시 추악해 진다. 그리고 말이 진심에서 울어 나온 것이 아닐 경우 심(心)이 뒤흔들어져 어지럽혀 진다.
심위군주지관(心爲君主之官)이라 하였다. 심(心)은 일국의 왕이나 마찬가지이다. 국왕의 마음이 교란되어 있으면 국민들은 누구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야 할것 인가? 심(心)이 교란될 경우 기타 장부도 모두 평형을 상실하게 된다.
속설에 ”언자무의(言者無意), 청자유심(聽者有心)” 이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말하는 사람은 뜻없이 해도 듣는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새겨 듣는다.” 는 뜻이다.
말을 할 때 반드시 주의깊게 생각하며 말을 해야 된다.
또 속설에 ”화종구출(禍從口出), 병종구입(病從口入)” 이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화는 입으로 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 들어 온다.” 는 뜻이다.
또 다른 속설에 ”양언일구삼동난(良言一句三冬暖), 악어상인육월한(惡語傷人六月寒)” 이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좋은 말 한 마디는 삼동의 추운 겨을도 따뜻하게 녹혀 주고 나쁜 말 한 마디는 한 여름에도 찬 서릿발을 내리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한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 보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 즉 안심시켜 주고 위로해 주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그리고 말을 적게 해야 된다.
특별히 공자(孔子 : BC 551 년 – BC 479 년)는 “식불언(食不言)”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음식물을 먹을 때는 말을 하지 말라.” 는 뜻이다.
사람의 식도(食道)와 기관(氣管) 사이에 후두개(喉頭蓋 : Epiglottis)가 있다. 후두개를 ”설색(說塞)” 이라고도 부른다. 즉 ”말 뚜껑” ”말 마개” 라는 뜻이다.
우리가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삼킬 때 후두개는 후두(喉頭)를 막아 음식물이 기도(氣道)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준다. 또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식도를 덮어주고 기도는 열어 줌으로써 공기가 기도를 통하여 위로 올라오며 소리가 나게 해준다. 그러므로 말을 하면서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길 때 자칫 잘못하여 밥 알이 한 개라도 기도(氣道)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기침을 나오게 하거나 토하게 만들어 밥 알이 허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준다.
음식물을 삼킬 때 마다 식도는 열어주고 후두구는 닫아주니 수고가 많은 후두개를 위하여 다시 한 번 감사를 해야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음식물을 삼킬 때는 일시적으로 기도(氣道)가 봉쇄된다. 그러나 젖먹이 갖난 아기들은 동물과 비슷하여 숨을 쉬면서도 젖을 꿀떡 꿀떡 잘 마실 수 있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설소료(說小了), 정기신다료(精氣神多了)” 란 말을 남기고 싶다.
다시 말하면 ”말을 적게하면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 충만해 진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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