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저징(褚澄)

저징(褚澄)의 자()는 언도(彦道)이고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 : 서기 479 서기 502 ) 때 양적(陽翟) 사람이다.

유송(劉宋 : 서기 420 서기 479 )의 제 3 대왕 문제(文帝 : 서기 424 서기 453 )는 저징(褚澄)을 여강공주(廬江公主)와 결혼시켜 부마도위(駙馬都尉)에 봉하였다. 저징(褚澄)은 청렴결백한 관리임과 동시에 의술에 정통하여 백성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후에 남제(南帝)의 고제(高齊 : 서기 479 서기 482 ) 때 오군태수(吳郡太守)에 임명되었다. 예장왕(豫章王)이 중병에 걸렸을 때 태조는 저징(褚澄)을 불러 치료하여 완치되었다.

다음은 저씨유서(褚氏遺書)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故事)이다.

<<남제(南帝) 건원시(建元時 : 公元 479 ) 위오군태수(爲吳郡太守), 백성이도염이공사도군(百姓李道念以公事到郡), 징견위왈(澄見謂曰) : 여유중질(汝有重疾). 이도염(李道念) 답왈(答曰) : 구유냉질(舊有冷疾), 지금오년(至今五年), 중의불채(衆醫不). 징위진맥(澄爲診脈), 위왈(謂曰) : 여병비냉비열(汝病非冷非熱), 당시식백약계자과다소치(當是食白鷄子過多所致). 영취소일승자복용지(令取蘇一升煮服用之), 초일복(初一服), 즉토득일물여계자대(卽吐得一物如鷄子大), 담연이지미동(痰涎裏之微動), 개착(開着), 차물여추계(此物如雛鷄). 징설(澄說) : ”차미진(此未盡)” 재복소잉약(再服所剩藥), 우토득여전물십삼매(又吐得如前物十三枚), 병수유(病遂愈).>> 

다시 말하면 서기 479 년 남제(南齊)의 고제(高帝) 건원(建元) 원년(元年)에 저징(褚澄)이 오군태수로 있을 때 이도염이란 사람이 오군에 공무(公務)가 있어 방문하였다. 저징(褚澄)당신에게 중병이 있오라고 이도염에게 말했다. 이도염은 저에게 냉질이 있은지 5 년 입니다. 여러명의 의사들을 불러 치료해 봤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고 저징(褚澄)에게 대답했다.

저징(褚澄)은 이도염의 맥을 짚고 나서 당신의 병은 냉질도 아니고 열질도 아니요. 흰 달걀을 많이 먹은 탓이니 자소(紫蘇) 삶은 물 한 되를 복용하십시요. 그러면 즉시 달걀 사이즈 만 한 물건을 토해 낼 것이오. 속에서 담연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병아리 만 한 물건을 토해낼 것입니다. 속에 들어있는 담연을 모두 토해내지 못했음으로 재차 자소음을 복용하면 또 다시 열 세 덩어리를 토해낼 것이오. 그후 당신의 병은 드디어 치유될 것입니다.” 는 뜻이다.

저징(褚澄)의 저서 잡약방(雜藥方)은 도중에 분실되었고 저씨유서(褚氏遺書) 1 () 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후세인들에 의하여 송지(宋志)에 수록되어 있다. 저징(褚澄)과 같은 시대의 저명한 의학가 도홍경(陶弘景 : 서기 452 서기 536 )은 본초학에 공헌한 바가 매우 컸다. 도홍경은 서기 492 년에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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