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규(孫一奎)의자(字)는문원(文垣)이고 호(號)는 동숙(東宿)이며 별호(別號)는 생생자(生生子)이다.안휘성(安徽省) 휴녕현(休寧縣)에서 태어나서 명(明) 나라 가정(嘉靖)과 만력(萬曆) 년간에 생활한 저명한 의가였다. 명 나라 때는 정치와 사사회가 안정되어 의학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때였다. 그리하여 의학서적이 다량 출판되었다. 손일규(孫一奎)는 어려서 부터 천자총명 하였으며 동네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소년 시절 부터 스승으로 부터 역경(易經)을 학습했으며 유학의 학습에 전념하였다. 스승도 손일규(孫一奎)의 영특함에 감탄하였다. 가정(世宗 : 서기 1522 년 – 서기 1566 년) 이후 조정에 간신들이 들어와 정권을 잡으며 지식인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조정의 부패로 인하여 대량의 학자들이 의업으로 전향하였다. 손일규(孫一奎)는 본래 신체가 허약하여 사도(仕途)로 나가 출세한다는 생각을 접고 양상(良相) 보다 양의(良醫)가 되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날 괄창(括蒼 : 현재 麗水( 杭州 남쪽 200km 지점))으로 형을 만나러 내려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선인의 신비방서(神秘方書)를 얻었다. 신비방서를 열심히 탐독한후 환자들을 치료해 봤더니 괄목할 만한 효험이 있었다. 이때부터 손일규(孫一奎)는 유학을 접고 의학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손일규(孫一奎)는 영추와 소문과 난경 등을 탐독하고 유교 불교 도교의 경전 중 의학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탐독하였다. 후에 휘주(徽州)의 이현(黟縣)에 살고있는 황고담(黃古潭)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의학연마에 열중하였다. 의난잡증의 치료는 모두 황고담 선생의 지도를 받아 치료하였다. 휘주(徽州)는 송선화.(宋宣和) 3 년(서기 1121 년)에 흡주(歙州)로 개명하였으며 흡현(歙縣), 이현(黟縣), 휴녕(休寧), 기문(祁門), 적계(績溪), 무원(婺源) 등 6 현(縣)으로 분활되었다. 현재는 휘주구(徽州區)라고 칭하며 모두 황산(黃山) 주위의 현(縣)들이다. 어느 날 손일규(孫一奎)의 남동생이 여행 도중 노상에서 열사(熱邪)의 침입을 받았다. 피로가 겹쳐서 왼쪽 갈비뼈 부근에 통증과 동시에 피부색이 빨갛게 변했으며 수포도 생겼다. 의사들은 간경(肝經)의 울화(鬱火)라고 진단하고 사간약(瀉肝藥)을 썼다. 그 결과 병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손일규(孫一奎)는 동생을 데리고 휴녕에서 30km 떨어진 이현 까지 걸어서 황고담 선생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다. 황고담 선생은 한의학 이론을 상세히 설명해 준 후 고한약(苦寒藥)을 사용하면 않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고한약은 조사(燥邪)를 자생(資生)시키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황선생은 감한약(甘寒藥)을 써야 된다고 말했다. 동생의 병은 과루(瓜蔞)와 가분초(加粉草)와 홍화(紅花)를 배합하여 만든 약 한 첩을 복용하고 나서 치유되었다. 손일규(孫一奎)는 황선생의 의술이 고명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손일규(孫一奎)는 30여 년간 임상경험을 토대로 모든 의난잡증을 성공적으로 치료하여 명의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손일규(孫一奎)의 문전에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고관대작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였다. 손일규(孫一奎)는 시간나는 대로 저술에 힘써 적수현주(赤水玄珠) 30 권(卷)과 의지서여(醫旨緖餘) 2 권(卷)과 손문원의안(孫文垣醫案) 5 권(卷)을 저술하였다. 적수현주(赤水玄珠)란 이름은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장자(莊子)-천지(天地)에 보면 ”황제출유도적수지북(黃帝出遊到赤水之北), 등상곤륜산(登上崑崙山),회래후(回來後), 발현타적현주유실료(發現他的玄珠遺失了), 어시선후파지(於是先后派知), 이주화끽후등인거심조(離朱和喫詬等人去尋找), 도몰유득도(都沒有得到). 황제우지파상망거(黃帝又指派象罔去), 상망조도료(象罔找到了).”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황제가 어느 날 여행을 떠나 적수의 북쪽에 이르렀다. 황제는 곤륜산에 올라갔다 내려 온 후 현주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知)와 이주(離朱)와 끽후(喫詬)를 곤륜산에 보내어 현주를 찾아오라고 명령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황제는 다시 상망(象罔)을 보내어 현주를 찾아오라고 명했다. 상망(象罔)은 현주를 찾아가지고 돌아왔다.” 는 뜻이다. 이와 같은 고사에서 적수현주(赤水玄珠)란 이름을 따왔다. 적수현주전집(赤水玄珠全集)은 후세 의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후학들을 위한 보귀적인 저서이다. 적수현주전집은 앞에서 말한 적수현주(赤水玄珠) 30 권과 의지서여 2 권과 손문원의안 5 권을 모두 합친 전집을 일컫는다. 손일규(孫一奎)는 학술상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이론을 융합하여 황제내경과 난경을 연구했으며 선배들의 장점을 취하였다. 명문(命門)과 삼초(三焦)와 상화(相火)의 연구에 집중하였다. 또 의학이론에 태극설(太極說)을 병용하여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명문신간동기설(命門腎間動氣說)을 창립하였다. 적수현주전집(赤水玄珠全集)은 선배들의 의학 이론의 정수를 모으고 자신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각가의 장점을 첨가하여 만든 의서이다. 손일규(孫一奎)는 학파를 조성하는 것을 적극 반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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