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660여 년전 서양 의학이 싹트기 시작할 때 제(齊) 나라에서는 이미 임상 실험과 경험을 통하여 세계 최초의 외상 전문 서적을 간행하였으니 장한 일이다.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은 5 권(卷)으로 구성되어 있고 외상과 옹저와 창절과 습진과 루력과 개선과 기타 여러 종류의 피부병 등의 병증이 수록되어 있다.
제 1 권에 옹과 저저의 감별법과 진단법과 예후(豫後) 등이 기록되어 있고 제 2 권에는 금창지혈산방(金瘡止血散方)과 어혈백마제산방(瘀血白馬蹄散方)을 비롯하여 31 개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제 3 권에는 장열옹저대황탕방(壯熱癰疽大黃湯方)과 옹괴후황기탕방(癰壞後黃芪湯方)을 비롯하여 29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 4 권에는 옹저종송지첩방(癰疽腫松脂帖方)과 단옹저시발흔열침음장성옹탕방(丹癰疽始發焮熱浸淫長成㨣湯方) 등 31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제 5 권에는 옹저패괴생지황고방(癰疽敗壞生地黃膏方)과 제상육물멸반고방(諸傷六物滅盤膏方)을 비롯하여 59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150 개의 외치료(外治療)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외상의 치료에 있어서 지혈과 수렴과 지통과 진정과 해독약 이외에 수은연고(水銀軟膏)와 웅황(雄黃 : 硫化砷)연고와 연단(鉛丹 : 亞鉛華(산화아연))연고 등이 있다. 연단(鉛丹 : 亞鉛華(산화아연))연고는 바셀린에 산화아연 정제 라놀린 표백 밀랍을 섞은 연고이며 습진과 외상과 염증 등에 사용된다. 이와 같은 연고는 인도와 아라비아와 유럽에서 사용된 연고 보다 수 백년이나 앞섰다.
또 옹종은 절개(切開)하고 천자(穿刺)하여 배농(排膿) 시키는 수술법을 사용하여 치료했다. 그외 장옹(腸癰 : 腹腔內外膿性疾患)의 치료에 대황탕을 사용했다.
공경선의 서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신화성(神話性)을 띈 고사가 실려 있다.
”석유연자(昔劉涓子), 진말어단양교외조사(晉末於丹陽郊外照射), 홀연일물(忽然一物), 고이장허(高二丈許), 사이중지(射而中之), 위뇌전(爲雷電), 성약풍우(聲若風雨), 기야불감전추(其夜不敢前追). 힐단솔문도자제수인(詰旦率門徒子弟數人), 심종지산하(尋踵至山下), 견일소아제관(見一小兒提罐), 문하왕(問何往). “위아주피유연자소사(爲我主被劉涓子所射), 취수세창(取水洗瘡)”.운황부귀(云黃父鬼).잉장소아상수(仍將小兒相隨),환미지문(還未至門),문도약지성(聞搗藥之聲).비급(比及),요견삼인(遙見三人):일인개서(一人開書),일인도약(一人搗藥),일인와이(一人臥爾).내제성규돌(乃齊聲叫突),삼인병주(三人幷走).유일권옹저방(遺一卷癰疽方),병약일구(幷藥一臼).시종송무제북정(時從宋武帝北征),유피창자(有被創者),이약도지즉유(以藥塗之卽癒).연자용방위치(涓子用方爲治),천무일실(千無一失).연위십권(演爲十卷),호귀유방(號鬼遺方).자적여종숙조(姉適余從叔祖).연자기자서(涓子寄姉書),구서차사(具敍此事),병방일권(幷方一卷).방시단양박지본사(方是丹陽薄紙本寫),금수적상존(今手跡尙存).기손도경여여인거(其孫道慶與余隣居),정의이상(情疑異常),임종견어(臨終見語),가유신방(家有神方),아자유치(兒子幼稚),구비기인(苟非其人),도불허행(道不虛行),심권진후(尋卷診候),겸변약성(兼辨藥性),욕이상전(欲以相傳).속여기호방술(屬余旣好方術),수이불사(受而不辭).자득차방(自得此方),어금오재(於今五載),소치개유(所治皆癒),가위천하신험(可謂天下神驗).유씨석기공방(劉氏昔寄龚方),고초사다무차제(故草寫多無次第).금첩정기전후(今輒定其前後),족류상사(簇類相似),위차일부(爲此一部),유포향곡(流布鄕曲).유식지사(有識之士),행이자방(幸以自防).제영원원년대세기묘오월오일찬(齊永元元年大歲己卯五月五日撰)".
다시 말하면 ”진(晉) 나라 말기에 유연자는 단양(丹陽)의 교외(郊外)로 햇빛을 쪼이러 나갔다. 홀연히 키가 2 장(丈 : 1 장은 3.33m)이나 되는 큰 거물을 보았다. 유연자가 화살로 적중시켰더니 천둥과 번개치는 소리와 함께 폭풍우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 날 밤 유연자는 감히 거물을 쫓아가지 못했다. 이튿 날 아침 유연자는 젊은 제자 여러명을 거느리고 거물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도중에 어린 소년이 물 항아리를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유연자는 소년에게 ”어디로 가고 있느냐?” 고 물었다. 소년은 ”우리 주인께서 유연자의 화살에 맞은 상처를 씻기 위해서 물을 길러갑니다.” 고 대답했다. 유연자는 소년에게 ”너의 주인이 누구냐?” 고 물었다. 소년은 ”황부귀(黃父鬼)” 입니다고 대답했다. 유연자는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대문 앞에 도달되기도 전에 약을 찧는 소리와 약 냄새가 났다. 이윽고 유연자는 대문 앞에 도착되었다. 멀리 세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책을 펴서 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약을 공이로 찧고 있었으며 또 한 사람은 누어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세 사람은 옹저방 한 권과 돌절구와 공이와 약을 남겨둔 채 달아나 버렸다. 때는 송(宋) 나라 무제(武帝)가 북벌 정책을 실행하던 때였다. 창과 화살로 인한 부상병이 많이 발생했다. 황부귀가 도망가며 남겨 둔 약을 발라 상처를 치유하였다. 유연자는 황부귀가 남겨두고 달아 난 옹저방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수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000명의 환자 중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 치유되었다. 유연자(劉涓子)는 열 권의 책을 쓰고나서 귀유방(鬼遺方)이라고 명명하였다. 유연자(劉涓子)는 이상과 같은 사실을 진술한 글과 함께 귀유방 일 권을 자기 누나에게 전해주었다. 후에 유연자(劉涓子)의 누나가 시집가며 그 책을 종조부에게 전해 주었다. 귀유방(鬼遺方)은 단양산(丹陽産) 박지(薄紙 : 얇고 투명한 종이)에 베꼈다. 지금까지 필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연자(劉涓子)의 손자 유도경(劉道慶)은 이웃집 사람에게 이 책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임종이 가까워 유언을 했다. ”우리 집안에 신방(神方)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물려 줄 적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람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보고 증상을 진단하여 약성을 분별하여 치료할 수 있는 훌륭한 방술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십시요.” 라고 말했다. 공경선(龚慶宣)은 이 방을 얻어 5 년 동안 환자들을 치료하는 즉시 질병이 치유되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신효막측한 처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도경은 공경선에게 귀유방을 전해 주었다. 순서가 없이 베껴져 있었기 때문에 순서를 가려서 잘 정리하여 시골 구석에 까지 퍼뜨렸다. 유식한 사람들은 귀유방을 보고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제(齊) 나라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원년(元年 : 서기 499 년) 기묘(己卯) 5 월 5 일에 책을 편찬했다.” 는 뜻이다.
송(宋) 나라 때 종실전(宗室傳)에 기재된 것을 보면 ”유연자(劉涓子)는 팽성(彭城) 내사(內史)에게 일찍이 귀유방을 전수해 주었고 그의 아들이 조사하고 점검한 후 진무참관(振武參官)에게 전해 주었다. 송 나라 때 무제와 함께 북정(北征)에서 돌아 온 후 유격장군(遊擊將軍)에게 전해졌고 최후로 영포현후(營浦縣侯)에게 전해졌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귀유방(鬼遺方)은 유도경(劉道慶)의 임종시에 공경선(龚慶宣)에게 전해졌다. 현재 우리가 읽어 볼수 있는 귀유방(鬼遺方)은 공경선(龚慶宣)이 수정하고 재정리한 것이다.
당(唐)나라 때 손사막(孫思邈)의 저서 천금익방(千金翼方)에도 귀유방(鬼遺方)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귀유방(鬼遺方)은 후에 여러차례 중간(重刊)되었고 현재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송 나라 때 각본(刻本) 영인(影印)된 것이다.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은 원래 진(晉) 나라 유연자(劉涓子)가 편찬한 책이다. 그러나 남제(南齊)의 공경선(龚慶宣)이가 재정리하고 순서를 가려서 제(齊)나라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원년(元年 : 서기 499 년)에 재편찬되었다.
황부귀(黃父鬼)가 유전(遺傳)한 것이므로 “귀(鬼)” 자(字)와 “유(遺)” 자(字)를 따서 귀유방(鬼遺方)이라고 명명되었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와 당서(唐書)에 원서(原書) 10 권(卷)이 수록되어 있다. 송대(宋代) 이후에는 두 종류의 잔본(殘本) 즉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 5 권과 유연자치옹저신선유방(劉涓子治癰疽神仙遺方) 1 권(卷)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연자치옹저신선유방 1 권(卷)의 내용은 주로 옹저증치(癰疽證治)이다. 본서의 주요 내용들은 금창외상(金瘡外傷)과 옹저창절(癰疽瘡癤)과 진비개선(疹痱疥癬)과 악창제루(惡瘡諸瘻)와 루력퇴창(瘻疬頹瘡)과 탕화상(湯火傷) 및 기타 외과질환에 관한 의약이론과 처방들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외과전서(外科專書)로써 수대(隋代)와 당대(唐代) 방서(方書)의 외과부분과 명대(明代) 왕긍당(王肯堂)의 양과증치준승(瘍科證治準繩)과 청(淸) 나라 때 고세징(顧世澄)의 양의대전(瘍醫大全) 등에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은 조선(朝鮮)과 일본(日本)의 외과(外科)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일본의 의심방(醫心方) 중 외과부분에 유연자귀유방의 주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