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은 세계 최초의 외상(外傷) 전문치료서이다. 서기 442 년 제() 나라 원가(元嘉) 19 년에 진() 나라의 유연자(劉涓子)가 원작자(原作者)이지 만 남북조 때 제()나라의 공경선(慶宣)이가 재정리하고 순서를 가려서 수정하여 제() 나라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원년(元年 : 서기 499 )에 편찬하였다.

지금부터 1660여 년전 서양 의학이 싹트기 시작할 때 제() 나라에서는 이미 임상 실험과 경험을 통하여 세계 최초의 외상 전문 서적을 간행하였으니 장한 일이다.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5 ()으로 구성되어 있고 외상과 옹저와 창절과 습진과 루력과 개선과 기타 여러 종류의 피부병 등의 병증이 수록되어 있다.

1 권에 옹과 저저의 감별법과 진단법과 예후(豫後) 등이 기록되어 있고 제 2 권에는 금창지혈산방(金瘡止血散方)과 어혈백마제산방(瘀血白馬蹄散方)을 비롯하여 31 개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3 권에는 장열옹저대황탕방(壯熱癰疽大黃湯方)과 옹괴후황기탕방(癰壞後黃芪湯方)을 비롯하여 29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 4 권에는 옹저종송지첩방(癰疽腫松脂帖方)과 단옹저시발흔열침음장성옹탕방(丹癰疽始發焮熱浸淫長成湯方) 31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5 권에는 옹저패괴생지황고방(癰疽敗壞生地黃膏方)과 제상육물멸반고방(諸傷六物滅盤膏方)을 비롯하여 59 개의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150 개의 외치료(外治療)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외상의 치료에 있어서 지혈과 수렴과 지통과 진정과 해독약 이외에 수은연고(水銀軟膏)와 웅황(雄黃 : 硫化)연고와 연단(鉛丹 : 亞鉛華(산화아연))연고 등이 있다. 연단(鉛丹 : 亞鉛華(산화아연))연고는 바셀린에 산화아연 정제 라놀린 표백 밀랍을 섞은 연고이며 습진과 외상과 염증 등에 사용된다. 이와 같은 연고는 인도와 아라비아와 유럽에서 사용된 연고 보다 수 백년이나 앞섰다.

또 옹종은 절개(切開)하고 천자(穿刺)하여 배농(排膿) 시키는 수술법을 사용하여 치료했다. 그외 장옹(腸癰 : 腹腔內外膿性疾患)의 치료에 대황탕을 사용했다.

공경선의 서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신화성(神話性)을 띈 고사가 실려 있다.

석유연자(昔劉涓子), 진말어단양교외조사(晉末於丹陽郊外照射), 홀연일물(忽然一物), 고이장허(高二丈許), 사이중지(射而中之), 위뇌전(爲雷電), 성약풍우(聲若風雨), 기야불감전추(其夜不敢前追). 힐단솔문도자제수인(詰旦率門徒子弟數人), 심종지산하(尋踵至山下), 견일소아제관(見一小兒提罐), 문하왕(問何往). “위아주피유연자소사(爲我主被劉涓子所射), 취수세창(取水洗瘡)”.운황부귀(云黃父鬼).잉장소아상수(仍將小兒相隨),환미지문(還未至門),문도약지성(聞搗藥之聲).비급(比及),요견삼인(遙見三人):일인개서(一人開書),일인도약(一人搗藥),일인와이(一人臥爾).내제성규돌(乃齊聲叫突),삼인병주(三人幷走).유일권옹저방(遺一卷癰疽方),병약일구(幷藥一臼).시종송무제북정(時從宋武帝北征),유피창자(有被創者),이약도지즉유(以藥塗之卽癒).연자용방위치(涓子用方爲治),천무일실(千無一失).연위십권(演爲十卷),호귀유방(號鬼遺方).자적여종숙조(姉適余從叔祖).연자기자서(涓子寄姉書),구서차사(具敍此事),병방일권(幷方一卷).방시단양박지본사(方是丹陽薄紙本寫),금수적상존(今手跡尙存).기손도경여여인거(其孫道慶與余隣居),정의이상(情疑異常),임종견어(臨終見語),가유신방(家有神方),아자유치(兒子幼稚),구비기인(苟非其人),도불허행(道不虛行),심권진후(尋卷診候),겸변약성(兼辨藥性),욕이상전(欲以相傳).속여기호방술(屬余旣好方術),수이불사(受而不辭).자득차방(自得此方),어금오재(於今五載),소치개유(所治皆癒),가위천하신험(可謂天下神驗).유씨석기공방(劉氏昔寄方),고초사다무차제(故草寫多無次第).금첩정기전후(今輒定其前後),족류상사(簇類相似),위차일부(爲此一部),유포향곡(流布鄕曲).유식지사(有識之士),행이자방(幸以自防).제영원원년대세기묘오월오일찬(齊永元元年大歲己卯五月五日撰)".

다시 말하면 () 나라 말기에 유연자는 단양(丹陽)의 교외(郊外)로 햇빛을 쪼이러 나갔다. 홀연히 키가 2 (: 1 장은 3.33m)이나 되는 큰 거물을 보았다. 유연자가 화살로 적중시켰더니 천둥과 번개치는 소리와 함께 폭풍우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 날 밤 유연자는 감히 거물을 쫓아가지 못했다. 이튿 날 아침 유연자는 젊은 제자 여러명을 거느리고 거물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도중에 어린 소년이 물 항아리를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유연자는 소년에게 어디로 가고 있느냐?” 고 물었다. 소년은 우리 주인께서 유연자의 화살에 맞은 상처를 씻기 위해서 물을 길러갑니다.” 고 대답했다. 유연자는 소년에게 너의 주인이 누구냐?” 고 물었다. 소년은 황부귀(黃父鬼)” 입니다고 대답했다. 유연자는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대문 앞에 도달되기도 전에 약을 찧는 소리와 약 냄새가 났다. 이윽고 유연자는 대문 앞에 도착되었다. 멀리 세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책을 펴서 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약을 공이로 찧고 있었으며 또 한 사람은 누어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세 사람은 옹저방 한 권과 돌절구와 공이와 약을 남겨둔 채 달아나 버렸다. 때는 송() 나라 무제(武帝)가 북벌 정책을 실행하던 때였다. 창과 화살로 인한 부상병이 많이 발생했다. 황부귀가 도망가며 남겨 둔 약을 발라 상처를 치유하였다. 유연자는 황부귀가 남겨두고 달아 난 옹저방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수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000명의 환자 중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 치유되었다. 유연자(劉涓子)는 열 권의 책을 쓰고나서 귀유방(鬼遺方)이라고 명명하였다. 유연자(劉涓子)는 이상과 같은 사실을 진술한 글과 함께 귀유방 일 권을 자기 누나에게 전해주었다. 후에 유연자(劉涓子)의 누나가 시집가며 그 책을 종조부에게 전해 주었다. 귀유방(鬼遺方)은 단양산(丹陽産) 박지(薄紙 : 얇고 투명한 종이)에 베꼈다. 지금까지 필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연자(劉涓子)의 손자 유도경(劉道慶)은 이웃집 사람에게 이 책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임종이 가까워 유언을 했다. ”우리 집안에 신방(神方)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물려 줄 적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람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보고 증상을 진단하여 약성을 분별하여 치료할 수 있는 훌륭한 방술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십시요.” 라고 말했다. 공경선(慶宣)은 이 방을 얻어 5 년 동안 환자들을 치료하는 즉시 질병이 치유되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신효막측한 처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도경은 공경선에게 귀유방을 전해 주었다. 순서가 없이 베껴져 있었기 때문에 순서를 가려서 잘 정리하여 시골 구석에 까지 퍼뜨렸다. 유식한 사람들은 귀유방을 보고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 나라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원년(元年 : 서기 499 ) 기묘(己卯) 5 5 일에 책을 편찬했다.” 는 뜻이다.

() 나라 때 종실전(宗室傳)에 기재된 것을 보면 유연자(劉涓子)는 팽성(彭城) 내사(內史)에게 일찍이 귀유방을 전수해 주었고 그의 아들이 조사하고 점검한 후 진무참관(振武參官)에게 전해 주었다. 송 나라 때 무제와 함께 북정(北征)에서 돌아 온 후 유격장군(遊擊將軍)에게 전해졌고 최후로 영포현후(營浦縣侯)에게 전해졌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귀유방(鬼遺方)은 유도경(劉道慶)의 임종시에 공경선(慶宣)에게 전해졌다. 현재 우리가 읽어 볼수 있는 귀유방(鬼遺方)은 공경선(慶宣)이 수정하고 재정리한 것이다.

()나라 때 손사막(孫思邈)의 저서 천금익방(千金翼方)에도 귀유방(鬼遺方)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귀유방(鬼遺方)은 후에 여러차례 중간(重刊)되었고 현재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송 나라 때 각본(刻本) 영인(影印)된 것이다.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은 원래 진() 나라 유연자(劉涓子)가 편찬한 책이다. 그러나 남제(南齊)의 공경선(慶宣)이가 재정리하고 순서를 가려서 제()나라 동혼후(東昏侯) 영원(永元) 원년(元年 : 서기 499 )에 재편찬되었다.

황부귀(黃父鬼)가 유전(遺傳)한 것이므로 ()” ()()” ()를 따서 귀유방(鬼遺方)이라고 명명되었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와 당서(唐書)에 원서(原書) 10 ()이 수록되어 있다. 송대(宋代) 이후에는 두 종류의 잔본(殘本) 즉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 5 권과 유연자치옹저신선유방(劉涓子治癰疽神仙遺方) 1 ()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연자치옹저신선유방 1 ()의 내용은 주로 옹저증치(癰疽證治)이다. 본서의 주요 내용들은 금창외상(金瘡外傷)과 옹저창절(癰疽瘡癤)과 진비개선(疥癬)과 악창제루(惡瘡諸瘻)와 루력퇴창(頹瘡)과 탕화상(湯火傷) 및 기타 외과질환에 관한 의약이론과 처방들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외과전서(外科專書)로써 수대(隋代)와 당대(唐代) 방서(方書)의 외과부분과 명대(明代) 왕긍당(王肯堂)의 양과증치준승(瘍科證治準繩)과 청() 나라 때 고세징(顧世澄)의 양의대전(瘍醫大全) 등에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연자귀유방(劉涓子鬼遺方)  조선(朝鮮)과 일본(日本)의 외과(外科)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일본의 의심방(醫心方) 중 외과부분에 유연자귀유방의 주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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