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3일 월요일

모과(木瓜)

모과(木瓜)는 특유한 과수이다. 춘추시대의 시경(詩經)-위풍(衛風)에 보면 모과(木瓜)”가 있다. ”투아이모과(投我以木瓜), 보지이경거옥식품(報之以瓊(玉飾品), 비보야(匪報也), 영이위호야(永爲以好也).”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모과를 던져 오기에, 어여쁜 패옥(佩玉)으로 갚아 주었지, 꼭 갚아 주려는 뜻이 아니라,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 일이지요라는 뜻이다. 지금 부터 3 천 여년 전에 모과는 남녀간에 서로 주고 받는 사랑의 증거물로 사용되었었다. 누가 나에게 모과를 선사함은 정을 표시함이기 때문에 몇 백배 더 비싼 옥식품(玉飾品)으로 답례하여 더욱 극진한 정을 표시하였다. 고인들은 모과와 옥식품(玉飾品)을 동등하게 취급하였다. 모과는 관상용, 약용(藥用), 식용(食用)으로 쓰이는 화훼(花卉)이다. 모과는 일찍이 국염(國艶)과 명화(名花)라는 영예를 얻었다. 매년 봄이 돌아 오면 가느다란 자갈색(紫褐色) 가지에 꽃봉오리가 송이 송이 피어나고 그 후에 잎이 돋아 난다. 모과는 배() 같으나 배는 아니고 참외 같으나 참외도 아니며 박과 같으나 박도 아니다.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 : 南京의 남쪽 120km 지점)에서 생산되는 모과는 살집이 풍부하고 찰지며 맛은 시고 과실의 색깔은 선황색(鮮黃色)이며 향기로운 꽃이 풍기는 그윽한 짙은 향기는 세상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므로 서기 420 년 남북조 시대 송() 나라 임금 유유(劉裕) 때 부터 청 나라 때 까지 1500여 년간 선성모과(宣城木瓜)는 시종(始終) 황제들의 봉공품(奉貢品)으로 사용되었다. 모과의 성미(性味)는 산삽(酸澁)이고 일반적으로 날로 먹지 못하며 꿀이나 설탕에 재서 먹고 과일즙이나 시렆을 만들어 먹는다. 가늘게 썰어 청사와 홍사를 만들어 찹쌀과 섞어 단떡이나 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선성모과는 향기가 진하기 때문에  옷장이나 장롱 속이나 옷궤짝 밑바닥에 넣어 두면 훗날 옷장 문이나 뚜껑을 열때 모과의 특수한 향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또 탁자 위나 책상 위에 얹어 놓으면 그윽한 모과향이 가볍게 휘날리어 마음이 탁트이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남송(南宋) 시인 육유(陸游 : 서기 1125 서기 1210 )는 모과를 찬탄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선성수과유기향(宣城繡瓜有奇香), 우득병대치침방(偶得幷帶置枕旁), 육근호용역하상(六根互用亦何常)? 아이비후대설상(我以鼻嗅代舌嘗),”다시말하면선성의아름다운모과는특유의향이나네!우연히모과를얻어베개곁에놓아두니 육근(六根 : , , , , , ())이 언제나 서로 사용할 수 있다네! 나는 코로써 모과 향의 냄새를 맡음으로 혀가 모과의 맛을 보는 것을 대신해 준다네!”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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