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최안잠(崔安潛)의 도적 진압

최안잠(崔安潛)의 도적 진압

최안잠(崔安潛)은 당() 나라 제 22 대왕 희종(僖宗 : 서기 873 서기 888 ) 때 사천(四川) 절도사(節度使)를 지낸 사람이다.

사천(四川)은 원래 한족(漢族)과 소수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지방으로써 치안이 매우 어려운 곳이었으며 백성들의 원성이 높은 곳이었다.

고병(高騈)이라는 사천 절도사는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파직 당했고 그 후임으로 최안잠(崔安潛)이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최안잠(崔安潛)이 사천 절도사에 임명되었을 때 도처에서 도적들이 들고 일어나 사회의 치안이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다. 백성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임 절도사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최안잠(崔安潛) 절도사가 어떤 방식으로 경내의 도적들을 소탕할 것인가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최안잠(崔安潛) 절도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해 냈다. 부임한지 5 일째 되는 날 최안잠(崔安潛) 절도사는 관비(官費) 1500 ()을 풀어 성도잠시(成都蠶市)와 약시(藥市)와 보시(寶市) 등 가장 도적이 많은 3 개처에 분배할 계획이었다.

()이란? 관(貫)이며 끈에 꿴 1000 문(文)의 동전을 일컫는다.

그리고 곳곳에 다음과 같은 방문(榜文)을 써 붙였다.

여과유인고발병체포일개도적(如果有人告發幷逮捕一個盜賊), 상전오백민(償錢五百緡).
  도적필유동과(盜賊必有同夥), 약동과고발가이사면고발자죄(若同夥告發可以赦免告發者罪),
  화평상인일양영상(和平常人一樣領償), 망대가분용포도(望大家奮勇捕盜), 절차화환(絶此禍患).”

다시 말하면

만일 도적 한 사람을 고발하거나 체포할 경우 상금 500 ()을 받을 것이다. 도적은 반드시 친구가 있다. 만일 친구 도적을 고발할 경우 죄를 사면해 줄 것이며 보통 사람들과 같은 상금을 받게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도적을 잡는데 협조해 주기 바란다. 이로 인하여 화를 입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는 뜻이다.

최안잠(崔安潛) 절도사는 방문을 써 붙인 후 자신의 계획을 장려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3 ()를 순시하였다.

얼마 후에 어떤 사람이 상습 절도범을 체포하여 관가로 끌고 왔다. 도적은 계속 자기 죄를 불복하며 타화아일양간료십칠년(他和我一樣干了十七年), 획장도시평분(獲贓都是平分). 타즘마능착아니(怎麽能捉我呢)?”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시 말하면 저 사람과 나는 지난 17 년 동안 장물(贓物)을 똑 같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를 체포할 수 있습니까?” 라는 뜻이다.

최안잠(崔安潛) 절도사는 니기연지도아이발하방문(旣然知道我已發下榜文), 위사니불파타선촉래견관(不把他先捉來見官)? 약시나양적화(若是那樣的話), 타취핵시사죄(他就該是死罪), 니취해수상료(就該受賞了). 현재(現在), 니피타점료선(被他占了先), 해니사(), 니환설사(還說)!” 라고 잡혀 온 도적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가 방문을 발부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어째서 저 사람을 먼저 붙잡아 관가에 끌고 오지 않았느냐? 만약 저 사람을 네가 먼저 붙잡아 관가에 끌고 왔더라면 저 사람은 사형을 받게될 것이고 너는 상금을 받을 것인데 현재 너는 저 사람에게 먼저 붙잡혀 관가에 끌려 왔다. 그러므로 너는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며 저 사람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아직도 할 말이 있느냐?” 는 뜻이다.

범인을 체포하여 관가에 끌고 온 사람은 도적이 보는 앞에서 상금을 받고 체포된 도적은 광장에서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부터 도적들은 서로 미워하기 시작했으며 고발 당할까 두려워 서천을 떠나 딴곳으로 멀리 밤중에 도망쳐 버렸다. 그리하여 사천 경내(境內)에 도적이 없어졌다. 이상의 고사(故事)는 아무리 견고한 조직이라 할지라도 내부에 시기와 질투가 있으면 쉽게 붕괴된다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단결은 안정의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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