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기(全元起)의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남조(南朝)의 제(齊 : 서기 479 년 – 서기 502년) 나라와 양(梁 : 서기 502 년 – 서기 557 년) 나라 때 사람이다.
남사(南史)-왕승유전(王僧儒傳)에 보면 전원기는 태의시랑(太醫侍郞)이었으며 의술에 정통하여 그 당시 상류 사회에서 신격화된 인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환자들은 전원기의 치료를 받기 위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당시 ”득기치자생(得其治者生), 사기치자사(舍其治者死)” 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전원기의 의술은 고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전원기의 치료를 받으면 살고 전원기의 치료를 포기하면 죽는다.” 는 뜻이다.
전원기는 주황제내경(注黃帝內經)-소문(素問) 8 권(卷)을 저술하고 소문훈해(素問訓解)라고 칭했다.
중국내에서 최초로 전원기가 소문을 정리하고 주해하였다.
서기 1057 년(嘉祐 2 년)에 송정부(宋政府)에서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을 설치하여 의적(醫籍)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고증(考證)하고 재편집하였다.
임억(林億)과 장우석(掌禹錫)과 고보형(高保衡)과 손조(孫兆)와 진종고(秦宗古)와 주유(朱有) 등으로 구성된 교정의서국은 서기 1068 년 과 서기 1077 년 사이(熙寧年間)에 소문, 상한론, 금궤요약, 금궤옥함경, 맥경, 난경, 침구갑을경, 천금요방, 천금익방, 외대비요 등을 간행했다. 임억 등이 황제내경을 교정할 때 전원기의 내경훈해의 편차(編次 : 배열순서)와 일부 주석(註釋)을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전원기의 내경훈해는 500여 년간 보존되어 오다가 유실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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