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5일 월요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의 황제(皇帝)의 황음(荒淫) :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의 황제(皇帝)의 황음(荒淫) :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는 300여 년간 전란시대(戰亂時代)였다. 국가에서 조혼(早婚)을 장려하였으며 방사(方士)와 도가(道教)의 방중술(房中術)이 성행하였다 소위 채음보양(采陰補陽)은 연년익수(延年益壽)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였으며 일야어십녀(一夜御十女) 등 사상이 유전되었다. 이로 인하여 통치자(統治者)들의 황음(荒淫)과 종욕(縱慾)은 더욱 성하였다. 궁정 내에 대량(大量)의 궁녀(宮女)들이 있었으며 별인(別人)들의 처자(妻子)를 입궁(入宮)시켯다.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 : 서기 187년-서기 226년)는 원희(袁熙 : ? - 서기 207년)의 처(妻) 견씨(甄氏)를 후궁으로 취하였다. 또 오왕(吳王) 손호(孫皓) 풍순(馮純)의 처(妻)를 입궁(入宮)시켜 후궁으로 만들었다.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는 궁중(宮中)에 여악기구(女樂機構) 청상서(清商署)를 설치하였으며 그당시 후궁미녀(後宮美女)들의 숫자는 수 천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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