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화수포(花秀圃). 작음서음화(作淫書淫畵) 절진공명(折盡功名)

화수포(花秀圃). 작음서음화(作淫書淫畵) 절진공명(折盡功名)
() 나라 때 복건성(福建省) 복주시(福州市)에 화수포(花秀圃)라고 불리는 서생이 살고 있었다. 그는 용모가 뛰어나고 총명하였으며 공부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은 어려서부터 화수포(花秀圃)가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그리므로 장래 큰 그릇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화수포(花秀圃)는 자기 스스로도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수포(花秀圃)의 총명함을 정도(正道)에 사용하지 않고 연애시와 연정시와 연서와 애정 소설을 쓰고 남녀간의 규방락사(閨房樂事)와 음란하고 음탕한 그림과 나체 그림을 그렸다. 동료들에게 돌려가며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라고 주었고 춘화를 보고 즐기게 하여 주었다. 화수포(花秀圃)는 자기의 작품들 은하나의 오락 작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 절대로 읽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음탕한 생각을 품게 할 줄은 전혀 몰랐다.
8 대왕 선종(宣宗 : 서기 1821 서기1850 ) 도광(道光) 갑진년(甲辰年 : 서기 1844 ) 춘 삼월에 화수포(花秀圃)의 이종 사촌 누이 동생이 화수포의 집을 방문하였다.
사촌 누이 동생은 오빠의 글재주가 뛰어났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촌 누이 동생은 오빠의 글과 그림을 보고나서 먼 고향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법도에 벗어난 행위를 하였다. 화수포(花秀圃)의 부모님들은 이와 같은 불륜의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사촌 누이 동생의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남을 발견하였다. 사촌 누이 동생은 임신을 두려워하였고 집안 어른들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얼굴을 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사촌 누이 동생이 죽은지 한 달도 채 못되어 화수포(花秀圃) 역시 병이 들었다. 갑자기 화수포의 몸에서 열이 났다가 다시 차거워졌고 두통도 있으며 위가 땅기고 통증도 있었기 때문에 의사를 불러 약도 지어 먹었다. 그러나 이틀 동안 혼수 상태에 있었다.
화수포는 혼수 상태 속에 있는 동안 사촌 누이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나서 큰 소리로 울부짖고 나를 끓는 물속에 집어 넣어 죽여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 난 화수포(花秀圃)사촌 누이 동생이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나의 꿈속에서 서낭당 신령께서 나를 꾸짖었습니다. 서낭당 신은 너는 하찮은 붓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무지한 부녀자를 살해하였다.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너의 복록과 명예를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너의 죄값으로 너는80대 곤장을 먼저 맞고나서 너의 몸을 끓는 물속에 집어 넣는 형을 받게될 것이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 아귀(餓鬼)의 명부에 기록될 것이다고 말했다.” 고 가족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 이튿 날 화수포(花秀圃)의 양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생겨 아픔을 참을 수 없었다. 일 주일 후에 온 몸에 붉은 농창이 생겨 가렵고 고름이 흘러 나왔다. 가렵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긁으면 고름이 터져 나오며 고름이 묻은 곳에 종기가 또 생겨 생창은 계속 번져 나갔다. 의사를 불러 치료해봐도 치유되는가 생각하면 또 다시 재발하였다.
후에 화수포(花秀圃)는 여러 차례 과거 시험을 치루었으나 오자가 많아 낙방하였거나 정답을 쓰지 못하여 낙방되었으며 먹물로 글씨가 뭉개져서 글씨를 알아볼 수 없어 낙방하였다. 어느 때는 시험장 안에서 하루 종일 생각해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백지 시험지를 제출한 적도 있었다. 매번 과거 시험을 치룰 때 마다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화수포(花秀圃) 보다 실력이 모자라는 친구들은 모두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다.
화수포는 과거운이 없었고 사업운도 없어 하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했다.화수포(花秀圃)는 후에 빈궁한 생활을 하였고 결국 굶어서 죽었다. 분명히 화수포(花秀圃)의 이름이 아귀(餓鬼)의 명부에 올라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이상의 고사는 보명연수법 중 화수포(花秀圃). 작음서음화(作淫書淫畵) 절진공명(折盡功名) 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花秀圃 작음서음화(作淫書淫畵) 절진공명(折盡功名) “福建省福州市有一書生花秀圃,聰明好學,相貌堂堂,里親友見他幼年時就有才學,書畫俱佳,都預估他將來必成大器,他自己也自命不凡;可惜,他聰明卻沒有用在正途:寫詩喜歡詞,文偏愛描述男女閨房樂事,喜歡畫春宮淫蕩、赤身露體之圖,在同儕之間傳閱;他認這些只不過是娛樂而已,卻不知道常常引動人的淫念。
道光甲辰年,春天三月的時候,花秀圃的姨表妹前來花家探親。表妹素仰表哥的文采,在瀏覽花秀圃的書畫之際,亦不免生起暇思綺想,兩人遂有不軌行,可是家長們未察覺。過些時日,表妹覺得身體狀況異常,恐已有了身孕,又怕事情被長輩知道,將無地自容,竟然自縊而亡。
大約一個月後,花秀圃得病,忽冷忽熱,頭痛、拉肚子,延醫服藥,昏睡了兩天,在昏睡時忽而喚表妹,忽而又叫「別打了!」又哭:「燙死我了!」醒來時告訴家人:「表妹是因我而死的,我夢見城隍老爺罵我:『作賤有用之筆墨,害死無知之婦女,實在可恥!應該削除祿籍、功名俱廢!責沸湯淋身之刑,先打八十大板再治罪。』之後就將我的名字納入餓冊。」家人安慰他:「不要放在心上,不過是夢境而已,別當;好好的養病,將來功名利祿少不了的。」
第二天,花秀圃的兩股俱腫,疼痛難行。一周後,全身上下長滿膿瘡,紅腫奇癢,破後瘡水所流之處又生瘡,醫治了很久,還會不定時復發。
後來花秀圃參加各種考試,不是因錯字、或文不對題,就是因墨汁汙了考卷而被淘汰;還有一次在試場整日苦思,仍然交白卷,但是出了考場又能振筆而論;每次考試總是令他捶胸頓足,不能如願,可是,實力比他差的同儕反而能入榜。科一直無緣得中,事業無成。後來,花秀圃潦倒窮困,饑餓而死;果是入了餓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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