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찰괘검(季札掛劍)
춘추(春秋:BC770년-BC403년)시대에 계찰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외교관으로써 노(魯) 나라 주재 오(吳) 나라 대사로 임명받아 떠나는 도중에 서(徐) 나라를 경과하게 되었다. 서(徐) 나라 임금은 계찰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요청했다. 식사 도중 서(徐) 나라 임금은 계찰이 허리에 차고있는 보검을 주시하고 있었다. 계찰이 서(徐) 나라 임금의 눈을 쳐다보고 보검을 욕심내는 눈빛임을 당장 알아 차렸다. 계찰은 예의를 갖추어 서(徐) 나라 임금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사신이 반드시 보검을 허리에 차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아뢰었다. 그래서 계찰은 ”내가 외교사절의 임무를 수행하고 오(吳) 나라로 귀국할 때 꼭 서(徐) 나라에 들려 나의 보검을 서(徐) 나라 임금에게 주어야지!” 라고 마음 먹고 있었다. 계찰은 노 나라에 가서 외교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서(徐) 나라에 들렸다. 공교롭게도 서(徐) 나라 임금은 죽고 없었다. 계찰은 즉시 서(徐) 나라 임금의 묘지로 달려가 예의를 취한 후 자기의 보검을 묘지 옆에 있는 나무에 걸어 두었다. 계찰의 수행원은 나무에 걸어 놓은 보검을 쳐다보며 ”계대사님!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보검을 서(徐) 나라 임금의 묘지 옆에 있는 나무에 걸어둔다고 한들 죽은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이 어떻게 보검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계찰에게 말했다. 계찰은 ”내가 처음 그와 같이 마음을 먹었었는데 현재 임금이 죽고 없다하여 어찌 내가 처음 먹었던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는가? 내가 처음 서(徐) 나라 임금을 만났을 때 마음속으로 나의 보검을 서(徐) 나라 임금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임금이 죽고 이 세상에 없다고 나는 한 번 먹었던 나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겠네!” 라고 수행원에게 말했다. 고인들은 처음 먹은 마음을 바꾸지 않음으로써 신용을 지켰다. 그래서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 이란 말이 생겼다. 다시 말하면 “장부의 말 한 마디는 천금과 같이 무겁다는 뜻으로써 한 번 한말은 꼭 지켜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小故事大知慧) 중 “계찰괘검(季札掛劍)” 이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在春秋时代,有个人叫季札。季札要代表吴国出使鲁国,这是属于外交工作。在出使的途中,经过徐国,徐国国君请他吃饭。在吃饭过程中,国君就一直盯着季札腰带上的宝剑。季札看到国君的眼神,就知道他很喜爱这口宝剑,这是“视思明”,看了以后他就明白了。但是按照礼仪来说,代表国家的使臣都必须佩戴宝剑。所以,他心里就暗想,等我完成任务以后,再将这把剑送给他。
他出使鲁国回来,又经过徐国,就去把剑送给徐国国君,不巧国君已经去世了。季札立即就赶到国君的墓前给他行礼。行完礼以后,就把自己的宝剑挂在墓边的树上。他的随从一看,就对他说:“主人,您这样做太过了,因为您并没有答应要把剑送给他;而且纵使你已经答应给他了,他也已经死了,所以根本没有必要再把剑挂在那里。”季札接着说:“始吾已心许之,岂以死背吾心哉。”我的心已经起了此念要送给他,如何可以因国君之死,而违背了我心里的承诺!古人的信用是在起心动念上修,对于自己所起的一念都不愿意违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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