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위친부미(爲親負米)

위친부미(爲親負米)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子路)라고 불리는 학생이 있었다. 자로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학생이었다.
100리 밖에있는 미곡상에 까지 걸어가 쌀을 사서 등에 짊어지고 부모님께 드렸다. 후에 자로는 고관이 되었다. 매끼 진수성찬이 올라왔으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산해진미를 어째서 잡수지 못하십니까?” 고 자로에게 물었다.
자로는 사람들에게 물론 산해진미이지요. 그러나 내가 부모님을 봉양할 100리 밖에있는 쌀집에 가서 쌀을 사서 등에 짊어지고 집에와서 지어 먹은 그 밥맛 보다 맛이 덜 할 뿐만 아니라 이제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으니 이와 같은 산해진미를 먹어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자로는 항상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으며 부모님의 걱정을 대신해 주었다. 부모님을 잘 봉양해야 된다는 자로의 성실한 생활은 본받을 만 하고 기쁨이 있는 삶이다.
이상의 고사는 소고사대지혜(小故事大知慧) 위친부미(爲親負米)이다.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위친부미(爲親負米)? 쌀을 사서 등에 짊어지고 집에와 부모님을 봉양한다.” 는 뜻이다.
親負米
孔夫子有個學生叫子路,子路很孝順,常常走到百里之外把米背回來讓他的父母吃。後來子路做了大官,每天菜飯非常富。子路反而吃不下。
人家就問他:“這好的山珍海味,你為吃不下?”子路對大家說:“這些飯菜比不上我幫父母背了一百里之外的白米香,而且我的父母現在也沒有機會來吃這樣盛的菜肴了。”子路能時時想著父母,替父母分憂。他覺得只要能奉養父母,過這種生活也非常踏實,非常歡喜。
자로(子路: 서기 전 542 서기 전 480 )의 본명은 중유(仲由)이고 자()는 자로이며 춘추말기(春秋末期) () 나라 변(: 현재 山東省 泗水縣 泉林鎭 卞橋)에서 태어났다. 자로는 공자 보다 아홉살 아래이고 공문칠십이현(孔門七十二賢) 중 한 사람이다.
공자의 논어(論語) 속에 자로의 이름이 41번 이나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공자의 제자 중에서 후세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현종(唐玄宗)은 자로를 위후(衛侯)에 추봉(追封)했고 북송의 진종(眞宗)은 자로를 하내공(河內公)으로 추봉했다.
논어(論語)-술이제칠(述而第七)에 보면 자질병(子疾病), 자로청도(子路請禱).”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공자가 병이 들어 아플 때 자로를 불러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는 뜻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