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설기(薛己: 서기 1487 년 ∼ 서기 1559 년)

설기(薛己: 서기 1487 년 ∼ 서기 1559 년)의 자(字)는 신보(新甫)이고 호(號)는 입재(立齋)이며 오군(吳郡 : 현재 강소성(江蘇省) 소주시(蘇州市)태생이다. 부친(父親)의 이름은 설개(薛鎧)이고 자(字)는 양무(良武)이며 제 9 대왕 효종(孝宗: 서기 1488년 - 서기 1505년) 때 태의원(太醫院) 의사(醫士)였다. 그 당시 자기 아들 설기는 태의원 원사(院使)에 임명되었다. ​설기는 특별히 소아과(小兒科)와 외과(外科)에 탁월한 의술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 설씨(薛氏) 집안은 양의(瘍醫) 전문 집안이었는데 후에 내과(內科) 전문이 되었다. 설기(薛己)는 어려서 부터 가훈(家訓)을 계승하여 의술(醫術)에 정진하였으며 특히 내과(內科)와 외과(外科)와 부인과(婦人科)와 소아과(小兒科)에 정연(精硏)하였다. ​설기는 정덕원년(正德元年: 서기 1506년)에 태의원(太醫院) 원사(院士)로 보직을 받았고 정덕 9 년에 어의(御醫)로 승진되었으며 정덕 14 년에 남경(南京) 태의원(太醫院) 원판(院判)이 되었다. ​설기(薛己)는 《외과추요(外科樞要)》、《내과적요(內科摘要)》、《여과촬요(女科撮要)》、《여양기요(癘瘍機要)》、《정체유요(正體類要)》、《구치유요(口齒類要)》를 편찬하였으며 그외 설기(薛己)는 《부인양방대전(婦人良方大全)》과《소아약증직결(小兒藥證直訣)》과《명의잡저(明醫雜著)》와《외과정요(外科精要)》등 수십종(數十種)의 의서를 교정(校訂)하였다. ​설기의 학술사상(學術思想)에 있어서 장원소(張元素)와 이고(李杲)와 전을(錢乙)의 영향(影響)을 가장 많이 받았다. 가정(嘉靖) 7년(서기 1528년)에 황태후(皇太后) 장씨(蔣氏)가 소갈병(消渴病)에 걸렸다. 설기(薛己)는 양과(涼瓜:苦瓜)와 산약(山藥)과 옥죽(玉竹)과 갈근(葛根) 등을 사용하여 황태후의 소갈증세를 경감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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