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汉) 나라 초대왕 고조(高祖: BC 206년 - BC 195년) 때 위만조선(卫满朝鲜)이 기자조선(箕子朝鲜)을 멸망시킨 후 도읍(都邑)을 왕험(王险 : 현재 평양시 남쪽)에 정했다.
제 2 대왕 혜제(惠帝 : BC 194년 - BC 188 년) 때 위만조선은 한(汉) 나라의 변방 속국이 되었다. 한 나라와 위만조선은 수 십년 동안 무사태평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제 6 대 왕 한무제(汉武帝 : BC 140 년 - BC 87 년) 때 위만(卫满)의 손자(孙子) 우거(右渠)가 왕위에 올랐다. 우거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한 나라에 대하여 강경하게 대처하였다.
무제(武帝)는 양부(杨仆)와 순체(荀彘) 장군을 파견하여 위만조선 토벌 작전을 실시하였다. 일 년 만에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자리에 낙랑(乐浪)、현토(玄菟)、진번(真番)、임둔(临屯)의 사군(四郡)을 설치했는데 그중 낙랑군(乐浪郡)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 7 대왕 소제(昭帝: BC 86년 - BC 74년) 시원(始元) 5년(BC 82 년) 임둔(临屯)과 진번(真番)을 낙랑(乐浪)과 현토(玄菟)에 합병시켰다.
한편 조선반도(朝鮮半岛)의 북부(北部)에는 조선인(朝鲜人) 외에 예맥족(濊貉族)과 옥저족(沃沮族)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반도의 남부에는 진한(辰韩)、마한(马韩)、변한(弁韩)이 건립되어 삼한(三韩)이 있었다.
그 당시 현토군(玄菟郡)의 동북쪽(현재 송화강(松花江) 상류 일대)에 부여국(夫余国)이 있었는데 고구려인(高句骊人)은 부여인(夫余人)의 한 지파였다.
제 9 대왕 원제(元帝: BC 48년 - BC 33년) 때 부여인(夫余人) 주몽(朱蒙)이 백성들을 데리고 남하하여 조선반도의 구양(旧壤)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高句骊)를 건국하였다. 주몽의 성(姓)은 고씨(高氏)이다.
고구려는 한(汉) 현토군(玄菟郡)을 침범하여 차지하였다. 한편 조선반도 내에 있는 삼한(三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제 8 대 왕 선제(宣帝) 오봉(五凤) 원년(元年: BC 57 년)에 진한(辰韩)은 서라벌(徐罗伐)을 건국하였다.
그리하여 서한(西汉) 말년(末年)에 조선반도(朝鲜半岛)의 서북부(西北部)는 한(汉) 나라의 낙랑군(乐浪郡)이 점령하고 있었고 동북부의 대부분 지역은 고구려(高句骊)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新罗)는 조선반도의 동남부(东南部)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百济)는 조선반도의 서남부(西南部)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백제(百济)와 신라(新罗)는 조선반도의 남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한조(汉朝)와 밀접한 관계는 없었으며 고구려(高句骊)는 한 나라와 접근해 있었으므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고구려는 건국 후 한(汉) 나라와 군시(君臣)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동한(东汉) 때 부터 시시 때때로 굴복하다가 배반하여 한제국(汉帝国)은 동북(东北) 지방의 고구려가 눈속 들어있는 가시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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