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의심감(食医心鉴)과
조선(朝鮮)의 유학생(留學生)들
《식의심감(食医心鉴)》은
식의심경(食医心镜)이라고도
칭한다. 식의심경(食医心镜)은 의학이론(醫學理论)과 실천(实践)이 결합(结合)된 양의서(良醫書)이다.
각(各) 식료처방(食疗處方)
마다 질병의 원인과 증상을 간단히 논술하고 식료(食疗)의 원리(原理)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예를들면 산부편(产妇篇)에 보면 :“(产妇生育)百日之内,犹尚虚赢……饮食失节,冷热乖衷,血气虚损,因此成疾,药饵不知,更增诸疾。"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산후 100일 이내에 식욕부진 등으로 인하여 산부의 신체가 매우 허약해 지고 열과
한이 상충하며 기혈이 허손하므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되는데 약선(藥膳)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경우엔 여러가지 질병이 발생한다.”
는 뜻이다.
당(唐)
나라 제 20 대왕 선종(宣宗)·
대중연간(大中年间
: 서기 847년—서기
859년)에
출판된 식의심경(食医心镜
: Heart
mirror of diet therapy) 은 식물요법(食物疗法)
전문의서(专門醫書)이다.
단미(单味)
약물(药物)을 많이 사용했으며 중풍(中风)과 각기(脚气)와 소갈(消渴)과 임병(淋病)
등의 치료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부인과(妇人科)와 소아과(小兒科)
질병(疾病)의 식치처방(食治處方)
등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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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餘首)의 부인산후질병(妇人产后疾病)의 식료방(食疗方)이 있는데 기혈부조(气血不调)와
허손무력(虚损无力)의
치료에 백양육홍미죽방(白羊肉红米粥方)이있고;
산후허손(产后虚损)과
유즙불하(乳汁不下)의
치료에 저체죽방(猪蹄粥方)이 있으며;산후리(产后痢)와
산후요복두통(産後腰腹肚痛)의
치료에 야계육혼돈방(野鸡肉馄饨方)
등이 있다.
식의심감(食医心鉴)
속에는
16 종(種)의 병증(病症) 분류(分类)가
수록되어 있는데 매류(每类)
마다 수방(数方) 또는 수십방(数十方)이
수록되어 있다. 중풍병(中风病)
식치(食治)에
증양두육방(蒸羊头肉方)
등 13수(首)와
침주차약제방(浸酒茶药诸方)、서예주(薯蓣酒)、괴엽차(槐叶茶)
등 11수(首)와
치제기식치길피탕(治诸气食治桔皮汤)
등 2 수(首)와
심복냉통식치(心腹冷痛食治)의
도인죽(桃仁粥)
등 3 수(首)와
각기식치(脚气食治)의
모과탕(木瓜汤)
등 2 수(首)와
비위기약(脾胃气弱)의
치료에 식량저두방(食酿猪肚方)
1 수(首)와
오미일병식치(五味噎病食治)의
양육병(羊肉饼)
등 3 수(首)와
소갈음수과다(消渴饮水过多)와
소변무도식치(小便无度食治)
우유방(牛乳方) 1 수(首)와
수종제방(水肿诸方)과
칠종임병식치(七种淋病食治)의
수우육갱(水牛肉羹)
등 12수(首)와
소변삭식치(小便数食治)의
소두갱(小豆羹)
6 수(首)와
오리적백장활식치(五痢赤白肠滑食治)의
즉어회(鲫鱼脍)
등 6 수(首)와
오종치병하혈식치(五种痔病下血食治)의
행인죽(杏仁粥)
등 9 수(首)와
부인임신제병(妇人妊娠诸病)
및 산후식치(产后食治)의
야계육혼돈(野鸡肉馄饨)
등 26 수(首)와
소아제병식치(小儿诸病食治)의
이죽(梨粥)
등 15수(首)와
기타 여방(余方)을
합하여 모두 16 류(类)이다.
곽말약(郭沫若 :
鼎堂)과
왕국유(王国维 :
观堂)와
동작빈(董作宾 :
彦堂)과
并称为之一的
라진옥(罗振玉 :
雪堂) ,을
가리켜 중국의
갑골학사사당(甲骨学史四堂)이라고
칭하는데 그중 라진옥(罗振玉 : 서기 1866년
- 서기 1940년)은 일본을 여행하던 도중에 깜짝 놀랠 사건 하나를 발견하였다. 구은(咎殷)의 저서 《식의심경(食医心镜)》3권(卷)의 원서(原书)는 송(宋)
나라 이후에 모두
산실(散失)되었으므로 중국 내에서는 찾을 길이 없었다. 라진옥(罗振玉)은 《식의심경(食医心镜)》
3권(卷)
중에서 오직 1권(卷)
속의 식료방(食疗方)
200
여수(余首)를
조선(朝鲜)에서 편찬된 《의방유취(医方类聚)》
속에서 발견하였다.
일본인(日本人)
다기원견(多纪元坚)은
조선을 여행하던 중 조선의 의방유취(医方类聚)를
입수(入手)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당(唐)
나라 때와 송(宋)
나라 때 대량의 조선(朝鲜)
유학생(留学生)들이 중국(中国)에 공부하러 갔다가 공부를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서적들을 휴대하고 귀국했는데 그
서적(书籍)들 중에 《식의심경(食医心镜)》이 끼어 있었다.
서기 1445
년(年)
조선(朝鲜)의 학자(学者)
김예몽(金礼蒙)은
의방유취(医方类聚)를
편찬하였다.
또 일본인 다기원견(多纪元坚从)은 《의방유취(医方类聚)》
속에서 《식의심경(食医心镜)》
만을 수집하여 서기 1924
년에 단독(单独)으로 책을
출판(出版)하였다.
그리하여 구은(咎殷)의
식의심경(食医心镜) 원서(原書)의 진면목(眞面目)을
파악할 수 있으니 매우 다행한
일이다.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로 구학(求學)하러 떠났던 조선의 유학생들이
없었다면 구은(咎殷)의
식의심경(食医心镜)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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