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사막(孫思邈)의 수명(壽命)
논쟁(論爭)
손사막(孫思邈)이 몇세 까지 살았을까?
하는 문제는
사학자(歷史學者)의 쟁의(争議)의 대상이다.
101
세설(歲說)과 141
세설(歲說)과 심지어 168
세설(歲說)
까지 있으며 각각
지지자(支持者)들도 많다.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在北周宣帝時(公元579年),正是王室內部的多事之秋,孫思邈便到太白山去隱居。在隋文帝輔政之時,徵聘他去作當時最高學府國子學中的教授之官'國子博士'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북주(北周: 서기 557
년
-
서기
581
년)
제
4
대왕 선제(宣帝 :
서기
579
년)에 왕실(王室) 내에 혼란이 발생한 가을 어느
날에 손사막은 태백산에 은거했다.
그 다음 수나라 초대왕
문제(文帝 : 서기 581년
-
서기
604
년)
때 문제는 손사막을
초빙하여 수 나라의 최고학부(最高學府)인 국자학(國子學)의 교수(국자박사(國子博士))로 임명하였다.“
는
뜻이다.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孫思邈永淳元年卒”
이라고 기록되어
있고,《신당서(新唐书)》에는 “永淳初卒”,이라고 각각 기록되어
있다.
또
경희태(卿希泰)의 저서 《중국도교사상사망(中國道教思想史綱)》에 보면 손사막(孫思邈)의 졸년(卒年)은 공원(公元)
682
년(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손사막(孫思邈)의 출생년(出生年)이 역대(歷代)
사가(史家)들의
쟁의점(爭議點)이다.
손사막의 출생년에
관하여 두 가지 설법(說法)이 있는데 첫째:공원(公元)
581
년설(年說)이다.
서기 581
년은
수(隋)
나라 초대 임금
문제(文帝 : 서기 581 년 - 서기 604 년) 개황(開皇)
원년(元年)이다.
둘째 설법은
공원(公元)
541
년설(年說)인데 서기 541
년은
서위(西魏)
문제(文帝)
대통(大統)
7
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원(公元)
581
년설(年說)이 인류(人類)의 정상수명(正常壽命)의 극한(極限)을 고려 할 때 가장 합당하다고 수긍하고 있다.
서기
581
년 설법은 구당서 보다
먼저 편찬되었다고 말하는 노조린(盧照鄰)의
저서 《병리부서(病梨賦序)》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근거를 두고있다.
“《舊唐書》本傳所載的盧照鄰《病梨賦序》中有照鄰癸酉之歲于長安見思邈,思邈“自雲開皇辛酉歲生,年九十三矣”的記載。“
이다.
다시 말하면 ”노조린은 그 당시 계유생이라고 말하는 손사막을 장안에서
만났었다.
손사막은 노조린을
만났을 그 당시 “나는 개황 원년 신유(辛酉) 년생이며
93
세이다.”
고
말했다는
뜻이다.
또
541
년 설법(說法)은
신당서(新唐书)와
구당서(舊唐书)에
기재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孙思邈生於西魏年間,新、舊《唐书》中有關北周洛城總管獨孤信見孫思邈並嘆其為聖童的說法才會成立。獨孤信見思邈的說法在《舊唐書》卷一九一《孫思邈傳》中有記載。另在原碑刻于北宋元豐四年,金大定九年重刻的耀州華原縣五臺山孫真人祠記碑中亦記載:“周洛州總管獨孤信,見其少而異之。曰:聖童也。顧大器難為用而.”
다시 말하면 ”손사막은 서위(西魏 : 서기
535
년 -서기 557 년) 년간에 출생하였다.
신당서와 구당서에 보면
북주(北周 : 서기 557 년 - 서기 581 년) 락성(洛城) 총관(總管) 독고신(獨孤信)은 그 당시 손사막을 보고나서
신동(神童)이라고
찬탄하였다.
독고신의 손사막에 대한
이 말은 구당서 권(卷) 191
‘손사막전(孫思邈傳)’
에 기재되어
있다.
또 북송(北宋)
원풍(元豐)
4
년(서기 1070
년)에 건립된 손사막의 원비각(原碑刻)과 금(金) 나라 대정(大定) 9
년에 중수된
중비각(重碑刻)이 손사막의 고향인 요주(耀州) 화원현(華原縣) 오대산(五臺山)에 건립된 손진인 사당 앞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에
“주나라 락주 총관 독고신이 총명하고 영특하게
생긴 소년을 보고 ‘너는 신동이구나!
그러나 큰 그릇으로는
사용되기는 어렵겠다.’
고
말했다.”
는
뜻이다.
독고신(獨孤信
: 서기
503년
- 서기 557년)의 본명(本名)은 여원(如願)이고 선비족(鲜卑族)이며 운중(云中
: 현재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사람이다.
서위(西魏)의 8
대주국(八大柱国)
중 한 사람이며
대사마(大司马)의 벼슬에 올랐다.
만일
손사막(孫思邈)의 공원(公元)
581
년(年)
출생 설법(說法)이 성립(成立)한다면 독고신(獨孤信)이
한 말은 틀린 말이나
다름없다.
독고신은 서기
503
년에 태어나서 서기
557
년에 죽었으므로
독고신이 살아 생전에 손사막을 만났으므로 손사막의 541
년 출생 설법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또 만일 손사막(孫思邈)의
공원(公元) 541
년(年)
출생 설법(說法) 성립(成立)한다면 사서(史書)에기재기載되어있는的독고신獨孤信의
“见其年少而異之”
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 결과 손사막(孫思邈)의
공원(公元)
541
년(年)
출생 설법(說法)과
서로
어긋난다.
각종
사료(史料) 분석(分析)으로 고증(考證)된 종합(綜合)
결론(結論):손사막(孫思邈)이 공원(公元)
541
년(年)에 출생했다고 주장하는
설법(說法)은 비교적 합리적(合理的)이다.
그러므로
손사막(孫思邈)은 공원(公元)
541
년(年)에 태어나서 공원(公元)
682
년(年)에 향년(享年) 141
세(歲)를 누리고 거세(去歲)한 도교양생(道教養生)의
실천자(實踐者)이며
험증인(验證人)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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