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유종원(柳宗元 : 서기 773 년-서기 819 년)의 누습(陋習) 타파

유종원柳宗元 : 서기 773 서기 819 의 누습(陋習) 타파


당(唐) 나라 제 15 대왕 헌종(憲宗:서기 805 - 서기 820 ) 원화(元和) 13 3 에 유종원(柳宗元)과 그의 지기(知己) 유우석(劉禹錫)은 함께 좌천되었다. 유종원(柳宗元)은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좌천시켰고유우석(劉禹錫)은 파주(播州 : 현재 귀주성(貴州省) 준의현(遵義縣)) 자사(刺史)로 각각 좌천시켰다. 유주(柳州)는 현재 광서(广西) 장족(壮族) 자치구(自治区)의 남부(南部)에 위치한 도시인데 사칭(史称) 용성(龙城)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유주(柳州)에 백월인(百越人)들이 살고 있었는데 유주에 일종(一種)계골점복(雞骨占卜)이 유행하고 있었다. 백월족(百越族)은 백오족(百粵族), 월족(越族)고월족(古越族)월인(越人) 이라고도 칭하는데 고대(古代) 중국남부(中国南部) 및 월남북부(越南北部)의 백월민족(百越民族)을 일컫는다. 사람이 질병에 걸리면 무사(巫師)를 집으로 초청하여 귀신(鬼神)을 내쫓고 병사(病邪)를 물리쳐 달라고 신(神)에게 축원하는 사귀살생적(祀鬼殺生的) 누속(陋俗)이 유행했다.   무사(巫師)는 대나무로 만든 끝이 뾰족하고 가는 꼬챙이를  수탉(公雞)목부위(脛骨中)에 찔러 닭의 목의 정반대방향(正反對方向)으로 삐죽히 나온 대나무 꼬챙이를 보고 병인(病人)의 길흉(凶吉)을 점쳤다. 대나무 꼬챙이가 닭의 목을 꿰뚫고 반대방향으로 곧게 삐죽히 나오거나 목뼈에 가깝게 닿으며 통과 할 경우 길조(吉兆)라고 말하고  대나무 꼬챙이가 비스듬히 구부러져 뚫고 지나가거나 경골(脛骨)로 부터 멀리 뚫고 지나갈 경우 불길한 운수(凶煞)라고 인정했다. 무사는 점복상(占卜上) 흉살(凶煞)일 경우 가축을 죽여 제사(祭祀)를 지내야 된다고 말했다. 만일 가축을 죽여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경우 흰베로 만든 보자기로 얼굴을 덮어 씌우고 먹지도 못하게 하고 마시지도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굶어 죽게 만들었다. 이와같은 악습 때문에 유주(柳州)의 인구(人口)는 점점 감소(減少)되어갔고 전야(田野)는 황폐되었으며  육축(六畜)은 생육하기 어려웠다. 유종원(柳宗元)유주(柳州) 자사에 임명된 후  이와같은 악습(惡習)을 타파해야 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유종원(柳宗元)즉시 대운사(大雲寺)를 수복(修復)하고 복원(復原)함과 동시에 불교(佛教) 제창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대운사(大雲寺) 스님들은 백성들에게 생사윤회(生死輪迴)를 선양(宣揚)하고 축생들의 살생을 금지하라고 권면하였다. 이로 인하여 당지(當地)의 육축살생(六畜殺牲) 사귀(祀鬼:귀신에게 제사 지냄) 풍속(風俗)은 개변(改變)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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