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5일 화요일

한국(韓國)의 정림사(定林寺)와 남조(南朝)의 상정림사(上定林寺)의 관계(關係)

한국(韓國)의 정림사(定林寺)와 남조(南朝)의 상정림사(上定林寺)의 관계(關係)

 

중국(中國) 남경(南京)의 상정림사(上定林寺) 유지의 고고발굴(考古發掘) 대량(大量)의 문물(文物)이 출토되었다. 과학자들은 남경지구(南京地區)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남조(南朝 : 서기 420 년 - 서기 589 년)와 당대(唐代 : 서기 618 년 - 서기 907 년)의 각각 다른 시기(時期)의 사묘용(寺廟用) 기왓장(瓦)의 유형(類型)과 풍격(風格) 등을 발견했다.  남조(南朝) 시기의 지층(地層)에서 출토(出土)된 와당(瓦當)은 서기 5 세기 내지 6 세기(世紀)의 동아지구(東亞地區)와 기타 여러국가와 구역(區域)의 사묘용(寺廟用) 기와(瓦)의 독특한 풍격(風格)을 나타내 주는데   고고학 연구 학자들의 학술(學術)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남경의 상정림사(上定林寺) 유지(遺址)에서 출토(出土)된 와당(瓦當)과 한국(韓國) 충청남도(忠清南道) 부여시(扶餘)시내(市內)의 백제시기(百濟時期) 정림사(定林寺) 유지(遺址)에서 출토(出土)된 와당(瓦當)은 서로 닮았음을 인식한 후  학자들은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와당(瓦當)기와의 막새나 내림새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것이다기와집 붕의  가장 앞쪽의 처마 끝에  붙여놓은 원형(圓形)의 기와()이며  통와(筒瓦)의 맨 앞쪽에 붙여 놓았고   목제비첨(木制飞檐)을 보호해 주며  배수(排水)와 방수(防水) 역할을 해 주는 미화용(美化用) 기와이다와당의 도안설계(图案设计)를 보면  운두문(云头纹)도철문(饕餮纹)문자문(文字纹)동물문(动物纹)식물문(植物紋) 등 길상도안(吉祥圖案)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남경대학(南京大學) 역사학과(歷史學科) 교수(教授)이며 고고(考古) 전문학가(專問學家)인 하운고(賀雲翱) 교수와 한국(韓國)의 충남대학(忠南大學) 고고학과 교수이며 백제문화연구원(百濟文化研究院) 고고연구부장인 박순발(朴淳發) 교수와 상​호 지식교환에 의하면 백제시대(百濟時代) 정림사(定林寺)에서 출토(出土)된 와당(瓦當)의 유형(類型)은 연화문와당(蓮花紋瓦當)과 만자문와당(萬字紋瓦當)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중 연화문와당(蓮花紋瓦當)단판연화문와당(單瓣蓮花紋瓦當)과 복판연화문와당(複瓣蓮花紋瓦當)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복판연화문와당(複瓣蓮花紋瓦當)의 시대(時代)는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와 고려시대(高麗時代)라고 하며 백제시기(百濟時期)의 연화문와당(蓮花紋瓦當)은 모두 단판연화문와당(單瓣蓮花紋瓦當)인데  남경의 상정림사(上定林寺) 유지(遺址)에서 출토(出土)된 남조와당(南朝瓦當)의 유형(類型)과 풍격(風格)이 완전일치(完全一致)한다고 한다.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 서기 439년 - 서기 581년)와 백제국(百濟國)의 삼자지간(三者之間)의 문물교류는 활발했으며 한국(韓國)의 정림사(定林寺)의 이름도 남조(南朝)로 부터 유래하였다고 한다.   사서(史書)에 보면 ,"百濟佛教初傳自東晉約在東晉孝武帝太元九年384),胡僧摩羅難陀從東晉到了百濟受到沈流王之禮敬第二年385春二月百濟為其創佛寺於漢山度僧十人』,百濟佛法由此而興。" 라고 기재(記載)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백제의 불교는 동진으로 부터 전래되었다. 대략 동진의 효무제 9 (서기 384 )에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으로 부터 백제에 들어가서 백제의 침류왕으로 부터 성대한 예우를 받고 그 이듬해인 서기 385 년 봄 2 월에 한산에 불사를 창건하였으며 열 명의 승려가 탄생되었다. 이때부터 백제의 불교는 흥하기 시작했다.” 는 뜻이다.



이로써 백제국(百濟國) 불교(佛教)는 동진(東晉 : 서기 317년 - 서기 420년)으로 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중국(中國)의 고대문물(古代文物) 전문연구가(專問硏究家) 양홍(楊泓)백제시대에 남조(南朝)의 도성(都城)인 건강(建康 : 현재의 남경(南京)종산(鍾山)의 남록(南麓)그 당시 유명했던 상정림사(上定林寺)의 유지가 존재해 있고  백제의 불교는 남조로부터 전입된 것이 확실하며 남조(南朝) 시대의 상정림사(上定林寺)의 유지는 현존하므로  한국(韓國) 부여시(扶餘市)의 정림사(定林寺)와 남경의 상정림사 간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양홍(楊泓)현재 중국(中國)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 고고소(考古所) 연구원(研究員)이며 국가급(國家級) 고대문물(古代文物) 감정위원회(鑒定委員會)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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