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7일 금요일

고려왕조(高麗王朝) 시기(時期)의 불교

고려왕조(高麗王朝) 시기(時期)의 불교


고려(高麗)가 전국을 통일(統一)한 후(後) 태조(太祖) 왕건(王建)은 불교(佛教)를 신봉하였으며 불탑(佛塔)사찰을 건립하였다. 그리하여 불교佛教)가 점차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고려(高麗) 11 (11) 임금 문종(文宗 : 서기 1046 ()서기 1083 ()의  출가(出家)한  넷째  아들  의천(義天)은 우세승통(祐世僧統)에 봉했으며세칭(世稱) 의천승통(義天僧統)이라고도 칭한다


의천(義天)고려(高麗) 선종(宣宗)  2(서기 1084 에 입송(入宋)한 후 송나라의 고승(高僧) 대덕(大德)으로 부터 화엄(華嚴)을 학습하고  천대교의(天臺教義)와 계법(戒法)과 선법(禪法)을 학습한 후 고려로 귀국하여 천대종(天臺宗)이 해동(海東)에서 흥성하지 못함을 개탄하고 숙종(肅宗) 2(서기 1096)에  고려(高麗)의 천대종(天臺宗)을 창립(創立)하였다.

 

 고려  제 4 대 국왕 광종(光宗(재위: 949~ 975)은 송악(松嶽) 기슭에  귀법사(歸法寺)를 건립하고  균여(均如)를  주지(主持)로  초청하였다. 균여(均如)는 고려왕조(高麗王朝) 초기(初期)화엄학자(華嚴學者)였다고려 중기(中期)에 들어서면서 선문(禪門)은 점차적으로 쇠락(衰落)하였다. 그 당시 지눌(知訥)은 정혜사(定慧社)를 결성하고선종풍(禪宗風)을 천양(闡揚) 함으로써  수 많은 선사(禪師)들이 배출되었고  조계선풍(曹溪禪風)이  재차(再次)  중흥(中興)하게  되었다. 지눌(知訥)은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의 개조(開祖)이다.  지눌은 조계종(曹溪宗)의 종전(宗典)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을 저술하였다.   그후 태고보우(太古普愚)는 입원(入元)하여 옥청공(屋清珙)으로 부터 불법을 학습하고나서 귀국한 후  선문구산(禪門九山)을 일종(一宗)으로 통일시조계종(曹溪宗 또는 선적종(禪寂宗))이라고 칭했다. 천대종(天臺宗) 역시 선종(禪宗)의 일파(-派)이므로 선종(禪宗)에 조계종(曹溪宗)과 천대종(天臺宗)의 양종과 더물어 원융종(圓融宗)을 화엄종(華嚴宗)이라고 개칭하였고법상종(法相宗)을 자은종(慈恩宗)이라고개칭했으며법성종(法性宗)중도종(中道宗)이라고 개칭하였고 계율종(戒律宗)을  남산종(南山宗)이라고 개칭하였으며열반종(涅槃宗)을  시흥종(始興宗)이라고  각각 개칭改(稱 )하였다. 후에 "오교이종(五教二宗)"이라고 칭했다


고려시대 불교(佛教)의 사업 중 가장 큰 사업은  대장경(大藏經)의 출판(出版)이었다고려(高麗) 현종(顯宗) 2(서기 1010 ) "단관기양(丹冠祈禳)이란 구호(口號) 아래 6000권(余卷)의 대장경(大藏經)을  70여년(餘年)에 걸쳐 조각하기 시작하였다서기 1087 선종왕(宣宗王) 때 비로소 완성하였으며 대구시(大邱市)에 있는 팔공산(八公山) 부인사(符仁寺)에 보존해 두었다. 고려 고종(高宗) 19(서기 1232 )에 몽고병(蒙古兵)들에 의하여 훼손되었다. 고종 23 (서기 1236 ) 부터 다시 조각하기 시작하여 16년(年)에 걸쳐 고종 38 (서기 1251 )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완성되었다고려장(高麗藏)이라고도 칭하며  현재 가야산(迦耶山) 해인사(海印寺)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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