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차문화(茶文化)의 대외(對外)
전파(傳播)
고대 중국
차문화(茶文化)의 발전(發展)
과정중(過程中)
주변(周邊)
국가(國家)들에게 전파(傳播)되었고 각 국가(國家)의 음식문화(飲食文化)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반도(朝鮮半島)
내에는 4 세기(世紀)
부타 7 세기(世紀)
중엽(中葉)까지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와 신라(新羅)가 삼국시대(三國時代)를 형성하고 있었다.
6 세기(世紀)
중엽(中葉)
부터 조선에서 차(茶)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화엄종(華嚴宗)
지이선사 ( 智異禪師)가 당(唐) 나라로 부터 차나무 씨앗을 전입(傳入)하여
구례 화업사(華嚴寺)
주변에 심었다.
화엄사는 서기 544년(백제(百濟)
성왕(聖王)
22
년(서기 544
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
사묘(寺廟)의 명칭(名稱)은 화엄경(華嚴經)의 첫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
그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12
년 :
서기 643
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화엄사를 증축하였다.
또
서기 875년(新羅憲康王)에
도선국사(道詵國師)
재차(再次) 증축하였다. 그리하여
7
세기(世紀)
초(初)
부터 전조선(全朝鮮)
백성들이 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후 신라(新羅)는 당(唐)
나라의 원조를 받아 삼국을 통일(統一)하였다.
중국의 남북조(南北朝)
시기와 수당(隋唐)
시기(時期)에 중국과 백제(百濟)와 신라(新羅)
사이에 매우 빈번(頻繁)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중국과 조선의 경제(經濟)
교류와 문화교류(文化的交流)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특별히 신라(新羅)와 당조(唐朝)의 통사(通使)
왕래(往來)는
120여 차례 이상이나 있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당(唐)
나라 통사왕래通使來往)가 인접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신라(新羅)
사람들은 당(唐)
나라에 들어가서 불전(佛典)과 불법(佛法)을 학습하고 연구(研究)하였으며 일부 신라인들은 당조(唐朝)의 관리가 되었다.
신라(新羅)의 사절(使節)
대렴(大廉)은 당(唐)
나라 문종(文宗
: 서기 826년
- 서기 840년) 태화후기(太和後期)에
당 나라에 들어가서 차(茶)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대렴은 지리산(智異山)
속에있는 화엄사(華岩寺)
주위(周圍)에 차(茶) 나무의 씨를 심어 재배하였다.
조선(朝鮮)의《삼국본기(三國本紀)》권십(卷十),《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新羅興德王三年雲:入唐回使大廉,持茶種子來,王使植地理山。茶自善德王時有之,
至于此盛焉"。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신라 제 42
대 흥덕왕 3
년(서기 828
년 =
당나라 문종 태화 2
년)에 사신 대렴은 차종자를 가지고 신라로 귀국했는데 흥덕왕은 대렴으로 하여금
지리산 속에 차씨앗을 심으라고 어명을 내렸다.
신라 27
대 왕 선덕여왕(善德女王
:
서기 606
년-서기 647년)
때 부터 차는 있었지만 흥덕왕 때에 이르러
성하였다.“
는 뜻이다.
북송(北宋
:
960-1127) 때 신라인(新羅人)들은 북송(北宋)에 들어가서 팽다기예(烹茶技藝)를 배워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신라(新羅)는
중국(中國)의 차문화(茶文化)를 습득했음과 동시에 신라 고유의 차례(茶禮)를 건립하였다.
그 당시 신라의 차례(茶禮)는
다음과 같다.
一、길례시(吉禮時)
경차(敬茶);
二、치례시(齒禮時)
경차敬茶;
三、빈례시(賓禮時)
경차敬茶;
四、가시(嘉時)
경차敬茶)
이상의 차례 중에서 빈례시(賓禮時)
경차(敬茶)는 가장 전형적(典型的)인 봉차예식(奉茶禮式)이었다.
또
고려시대(高麗時代)
외국사신(外國使臣)들을 영접하는 빈례의식(賓禮儀式)은 5
종(五種)이 있었다.
송(宋)
나라와 요(遼)
나라와 금(金)
나라와 원(元)
나라 사신(使臣)들을 개성(開城)에 있는 황궁(皇宮) 내의 건덕전각(乾德殿閣)
안에서 거행(舉行)하였다.
국왕(國王)은 동(東)
쪽에 서서 남(南)
쪽을 바라보고 있고,외국사신(外國使臣)들은 서(西)
쪽 편에 서서 동(東)
쪽을 바라보며 차(茶)를
접대받았다.
또는 조선의 국왕(國王)이 동(東)
쪽 편에 서서 서(西)
쪽을 바라보며 서있고 외국의 사신(使臣)들은 서(西)
쪽 편에 서서 동(東)
쪽을 향하여 차(茶)를 접대받았다.
국왕(國王)이 친히 차(茶)를 외국사신들에게 봉차(奉茶)하였다.
고려시대(高麗時代)와 신라(新羅)
시대의 차례(茶禮)의 내용(內容)은 송(宋)
나라 때 궁정차연(宮廷茶宴)의 차례(茶禮)와 상통(相通)한 점이 많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