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名将)
양호(羊祜)는 전세(前世)의 유물(遗物)을 찾았다
양호(羊祜
: 서기 221년
~
서기 278년)의 자(字)는 숙자(叔子)이고 서진(西晋
:
서기
265
년
-
서기
316
년)의 저명(著名)한 군사가(军事家)이고
정치가(政治家)이며
문학가(文学家)였다.
양호(羊祜)는 박학다식(博学多識)하고 청렴결백(清廉潔白)하며 정직하였다.
그는
양양(襄阳)
현감으로 재직시
비전투시 주둔병을
농경에 종사시켰으며 문맹퇴치에 힘썼고 덕을 쌓고
회유정책(怀柔政策)을 써서 군민(军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한편으로는
군대를 양성하고 군대의
훈련을 강화시켜 오(吴
:
서기
200
년
-
서기
280
년)
나라를 멸할 준비를
갖추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동오(东吴)의 명장(名将)
육항(陆抗)이 사망한 후 양호는 임금에게 오(吴)
나라를 침범하여
멸망시키자고 상주(上奏)하였으나 조정의 대신(大臣)들의 반대(反对)로 인하여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기
278
년
함녕(咸宁)
4 년에 양호(羊祜)는
신병으로 인하여
낙양(洛阳)으로 돌아와 사망하였다.
임종전(临终前)에 이미 두예(杜预)를 자기 자리에
추천하였다.
후에
두예(杜预)는 오(吴)
나라를
멸하고 통일천하(统一天下)
서진(西晋)을
건국하게 되었는데 양호(羊祜)의 공(功)이 컸다.
양호(羊祜)가 세상을 떠난 후
남주(南州)의 모든 백성(百姓)들은 함께 슬퍼하였다.
양양(襄阳)
사람들은
양호(羊祜)가 살아 생전에 자주 올라가 관상하던
양양(襄阳)에 있는 현산(岘山)에 사묘(祀庙)와 비(碑)를 세워주고 사시(四时)
제사(祭祀)를
지내 주었다.
양호의 사묘를
방문하고 비문(碑文)을 읽는 자 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타루비(堕泪碑)이다.
양호(羊祜)의 유년시절에 있었던 한 가지 기사(奇事)가 《진서(晋书)·양호전(羊祜传)》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양호(羊祜)가 다섯 살 된 해에 어느 날 어머니에게 한 개의 금가락지를 내놓으라고
졸라댔다.
양호는 자기 어머니에게
자기(自己)가 전에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金環)라고
설명했다.
양호는 현재 금가락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양호의
어머니는
양호(羊祜)에게:“少爷以前并没有玩过什么金环呀?”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양호야!
전에 네가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는
없었다.”
는
뜻이다.
양호(小羊祜)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갑자기 머리속에
금가락지의 모양이 떠올랐다.
양호는 즉시 이웃집
이씨(李氏) 집의 동쪽편의 낮은 담장 밖에 서있는 뽕나무(桑树)
앞으로
달려갔다.
뽕나무
밑에 있는 작은
굴속에서
금가락지(金环)
한개를
찾아냈다.
그때 이씨(李氏)가 현장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깜짝놀라며
:“啊呀!这只金环就是我几年前死去儿子经常把玩的呀,是他丢失掉的,当时还因为找不到大哭一场,原来是在桑树洞里,现在怎么被羊祜拿走了?!”
라고 양호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얘야!
그 금가락지는 나의
아들이 몇 년 전 죽기전에 가지고 놀던 금가락지인데 그 당시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렸었다.
나의 아들은 그
금가락지를 잃어버린 후 통곡을 하며 울었었단다.
원래 그 금가락지는
바로 그 뽕나무 밑의 작은 굴속에서 잃어버렸단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그
금가락지를 오늘 찾아냈단 말이냐?”
는 뜻이다.
어린
양호(羊祜)의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이웃집
이씨(李氏)에게 말했다.
“내 아들
양호(羊祜)가 금가락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면서 온 집안에서 금가락지를
찾고 있었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이씨집 담장 옆에 서있는
뽕나무(桑树)
주변에서 금가락지를
찾고 있는데 드디어 양호는 그 금가락지를 찾고 말았다.”
고
설명했다.
이씨(李氏)는 양호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나서
자기의 죽은 아들이
양호와 비슷하게 생겼음을 알아차리고 슬피
울었으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양양 주위의 원근 각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나서 매우
신기(神奇)한 사건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이씨(李氏)의 죽은 아들이 바로 양호(羊祜)의 전신(前身)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 羊祜(公元221年~278年),字叔子,西晋著名军事家、政治家和文学家。
《晋书·羊祜传》:“羊祜五岁时,令乳母取所弄金环。乳母曰:‘汝先无此物。’祜即诣邻人李氏东垣桑树中探得之。主人惊曰:‘此吾亡儿失物也,云何持去!’乳母具言之,李氏悲惋。时人异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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