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과 경교(景教)의 수도자 아라본(阿罗本)
경교(景教)란?
서기 450년 경 시리아 사람 네수토리우스(Nestorius)가 주창한 예수교의 한 당파로써 당 나라 때 아라본(阿罗本)에 의하여 중국에 전파되었다.
당 나라 태종(서기 626 년 – 서기 649 년) 때 최초로 경교(景教) 전도사 아라본(阿罗本)에 의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당태종은 특별히 서기 635 년에 그 당시 재상(宰相) 방현령(房玄龄)을 파견하여 아라본(阿罗本)을 귀빈 대접하여 장안으로 맞이하였다.
장안(長安)의 서편 교외에서 국례(國禮)를 갖추어 아라본(阿罗本)을 환영하였다. 아라본(阿罗本)은 궁안으로 영접되어 외국 전도사로써 존경을 받았다.
원래 아라본(阿罗本)은 서역의 중국과 접경 지대에서 기독교를 전파하였었다.
당 나라가 태평성세일 때 경교가 중국에 전입되었다.
당 고조(서기 618년 – 서기 626년)가 당나라를 건국한 이래 당태종 때 이르러 거국부서와 인민안강과 문화창명의 시기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변방 지역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그치지 않았고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과 페르샤(이란) 지역에서는 회교도들과 기독교도들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의 위협은 중국 본토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 태종은 변방의 돌궐민족의 침입을 두 차례나 막아냈었다. 당태종은 변방 국가들과 긴장한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써 통혼(通婚)은 물론 상업상 교류를 활발히 진척시켰다.
그리고 당 나라와 유라시아 제국과 교통의 요로인 사로(丝路 : Silk Road)를 개통하였다. 이러한 상황일 때 아라본(阿罗本)이 중국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당태종의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아라본(阿罗本)은 원래 시리아 사람이었으며 인상이 좋고 품행이 단정하며 독서를 좋아하고 유교의 예절을 지킬 줄 아는 중년 학자였다. 그래서 당태종은 아라본(阿罗本)을 귀빈대접 해 주었다.
아라본(阿罗本)이 당나라로 건너 올 때 530 권의 성경을 가지고 왔다. 성경의 일부가 중국말로 번역되었다.
당태종은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또 아라본(阿罗本)으로부터 성경강해를 들었다. 성경의 진리는 당태종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당태종은 아라본을 비롯하여 그의 모든 수행원들로 하여금 당나라 백성들에게 경교(景教)를 전파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주었다.
아라본(阿罗本)과 그 제자들이 당나라 안에서 경교(景教)를 전파할 때 그 당시 재상 방현령과 대신(大臣) 위징(魏徵) 등이 협조를 해주어 경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전파할 수 있었다.
아라본(阿罗本)이 장안에 머문지 3년 째 되던 해인 정관(貞觀) 12 년에는 당태종이 친히 아라본(阿罗本)과 그 제자들에게 자유로히 경교를 전파할 수 있도록 어명을 내렸다.
또 당태종은 장안의 의녕방(义宁坊) 지방에 경교사(景教寺)를 건립시켜 주었으며 자신의 초상화를 경교사(景教寺)벽화로 그려 넣게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당태종과 경교간에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서기 649 년에 고종(高宗 : 서기 649 년 – 서기 683 년)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고종 역시 경교(景教)를 제창하였고 전국에 칙령을 내려 경교사(景教寺)를 각지에 건립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경교는 전국의 대도시로 먼저 전파되었고 아라본(阿罗本)은 당나라 경교(景教)의 교장(敎長)이 되었다.
그 당시 장안은 당나라의 경교(景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라본(阿罗本)이 당나라로 건너 온 후 경교사景教寺)가 건립되었고 성경이 중국말로 번역되었으며 복음이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후 3 년 안에 페르샤에서 건너 온 경교(景教)의 전도사는 21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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