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후(柳太后)와
황기(黃芪)
명(明)
나라 때 약학가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
(本草綱目)에 보면 “黃芪,舊作“耆”,長也,被李時珍稱為“補藥之長”.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황기(黃芪)는 본래 황기(黃耆)
라고 칭했으며 “기(耆)” 는
“장(長)” 이란 뜻이고 황기(黃芪)는 보약 중
으뜸이다.” 는 뜻이다.
황기(黃芪)의
성미는 감(甘)、미온(微溫)이고
보중익기(補中益氣)、지한(止汗)、이수소종(利水消腫)、제독생기(除毒生肌)
작용이 있다.
황기(黃芪)는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며 명의들이 즐겨 사용하는 한약이다.
구당서-방기전
(舊唐書·方技傳 )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
나라 때 허윤종(許胤宗 : 서기 536 년 – 서기
626 년))이 남진(南陳)에 있을 때
신채왕(新蔡王)의 외병참군(外兵參軍)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유태후(柳太後)가
중풍병으로 갑자기 말을 할수 없었다. 여러 명의를 불러 치료해 봤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유태후(柳太後)는 구금(口噤) 때문에
약을 복용할 수 없었고 하루 하루 병세는 점점 엄중해져 가고 있었다. 신채왕은 마음이 조급했다.
의술에
정통한 허윤종은 열탕기훈증법(熱湯氣熏蒸法)으로
유태후(柳太後)의 병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수
십 항아리 속에 황기와 방풍을 넣고 유태후의 침상 밑에서 천천히 끓이기 시작하였다. 약탕기 속에서 모락 모락 올라오는
나오는 김이 유태후의 코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날 밤 유태후(柳太後)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며칠 동안
유태후(柳太後)를 치료하여 유태후(柳太後)는 종전과
똑같이 건강을 되찾았다.
유태후(柳太後)는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져서 기혈실조(氣血失調)로 인하여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황기의
온성은 보기승양(補氣升陽) 해주고
고표행체(固表行滯)해 주며 방풍(防風)의
미온성(微溫性)은 산풍승습지통(散風勝濕止痛) 작용이
있으므로 유태후의 병을 치유해 준 것이었다. “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 이고(李杲 :
서기1180년-서기1251년)는
황기(黃芪)와 방풍(防風)은 서로 도와 치료 효과가
확대된다. 보기고표(補氣固表) 작용이 있으므로 신체가 건강해 지고 기와
혈을 증강시켜 주기 때문에 산풍행체(散風行滯) 작용이 증가된다. 특히
열증기(熱蒸氣)는 온통경락(溫通經絡)해 주고
기혈(氣穴)의 순환을 촉진시켜 준다. 또 피부를 윤택하게 해주므로 모공을
열어 주고 약물의 성분을 더 잘 흡수하게 해줌으로 인하여 단 시간 내에 약효가 발생한다.” 고
설명하였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柳太後與黃芪
《舊唐書·方技傳》記載:唐朝許胤宗在南陳新蔡王手下做官時,柳太後突然患中風說不出話來,請遍名醫治療都沒有效果。柳太後因為口噤不能服藥,眼見病情一天比一天加重,眾醫束手無策,新蔡王更是心急如焚。而精通醫藥的許胤宗不但不著急,反而提出用熱湯氣熏蒸法為太後治病。於是用黃芪、防風兩味藥煮湯數十斛,放到柳太後的床下,藥汁彌漫,煙霧繚繞,柳太後當天晚上就能說話。以後經過一段時間調理,太後便康復同以前一樣了。 柳太後猝患中風,是因年老體弱、氣血失調的結果。而黃芪性溫,善補氣升陽、固表行滯;防風性微溫,善散風勝濕止痛。李杲說:黃芪得防風其功愈大。二者相伍,既能補氣固表而健體,又能散風行滯而調氣血,恰中病理。再加上熱蒸氣既能溫通經絡,促進氣血運行,又能潤肌膚、開毛竅,促進藥物成分的吸收,故能在較短時間內收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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