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袁枚)과
황기(黃芪)
원목의
자(字)는 자재(子才)이고 호(號)는
간재(簡齋)이며 절강성 전당(浙江錢塘) 사람인데
청(清)
나라 건륭황제
(乾隆年間) 때 진사(進士)에 합격한 수재임과 동시에 시문에 능하여 시문관강남(詩文冠江南)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리하여
원목과 기효람(紀曉嵐)을 남원북기(南袁北紀)이라고 칭했다. 원목(袁枚)은 일류
요리 전문가였고 수원식단《隨園食單》이란 요리책도 저술하였다. 중국의
음식사(飲食史)에
있어서 보귀적(寶貴的)인 사료(史料)로 인정받고 있다. 어느
해 여름 고희(古稀)가 지난 원목(袁枚)은 음식탐을 내어 복통(腹痛)과 설사(腹瀉)가 생겨 물 처럼 생긴 대변(大便) 속에
피가 섞여 나왔다. 의사들을 불러 치료해 봤으나 병정(病情)이 전혀 호전(好轉)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어떤 의사가 원목(袁枚)이 연고(年高)하고 신체가 허약함으로 황기(黃芪)와
인삼(人參) 등 보익약(補益藥)으로 치료하였다. 폐문유구(閉門留寇)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원목의 병정은 더욱
가중되었다.한의학에서
하리(下痢)는 습(濕)과 열(熱) 등 독사(毒邪)가 장중(腸中)에 머물러 장도(腸道)의 공능(功能)이 실조(失調)되어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리를 치료할 때 병세를 진단하여 사기(邪氣)가 성할 경우 먼저 사기를 내보낼 길을 만들어서 사기를
체외로 내보내야한다. 인삼과 황기를 사용하여 온보(溫補)해 줄 경우 기(氣)가 옹색(壅塞)되어 사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사기(邪氣)를 사출(瀉出)시킨 후에는 온보법(溫補法)으로 장위(腸胃)를 보해주면 된다.
불합당한
보기약(補氣藥)을
사용하여 사기를
구출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컬어 폐문유구(閉門留寇)라고
칭한다.후에 원목의 친구 장지후(張止厚)는 대황(大黃)을 원목에게 복용시켜 원목의 병을 완치시켰다.
한의사들은 대황(大黃)의
약성(藥性)이 맹열(猛烈)하므로 환자들에게 조심하여 복용시킨다. 원목(袁枚)은
황기가 불속에 기름을 끼얹는 것(火上澆油)과 같으며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는 것을 몸소
터득하였다. 후에
원목은 청열해독(清熱解毒)해
주고 사하통부(瀉下通腑)해
주는 대황(大黃)을
복용하고 병정이
호전 되었다. 원목은 약(藥)은 증상을 진단하여 잘 사용할 때 유효(有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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