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자희태후(慈禧太后)와 무씨(萊菔子)


자희태후(慈禧太后)와 무씨(萊菔子)

자희태후(慈禧太后 : 서기 1835 서기 1908 )는 청() 나라 제 9대왕 문종함풍황제(文宗咸豊皇帝)의 첩이었고 제 10 대왕 목종(穆宗)의 생모(生母)였다. 서기 1861 년부터 서기 1908 년 까지 청 나라의 실제적 통치자였다.

다음은 자희태후와 무씨에 관한 고사(故事)이다.

慈禧太后垂簾聽政,因外患內憂,政務繁忙,勞累過度,以至臥床不起。御醫們可慌了手,急忙會診究,按照北則補的原則,在膳食中倍加營養滋補之品,反而覺得眩暈眼花,不思食,怒火一來就流鼻血。御醫們嚇得惶恐不安,苦無良方,有的雖已看出富貴的病因,但又不敢冒然越出皇宮太平方的範圍,去冒風險,最後一致同意出皇榜
有個江湖
中見到告示後, 便揭榜進宮。在給西太后診脈後,他不慌不忙地從藥袋裏取出三錢萊菔子,成細末,再加入一點麵粉,用茶水調和均勻,然後揉成三個丸子,讓太后一日三次,每次1丸服下。
西太后一丸下去,鼻血就止住了;二丸下去,眩暈也除了;三丸末了,太后諸恙已平,食欲頓開,西太后加倍賞賜了中。中高興地出了宮門,感慨之餘,遂立傳作詩曰:萊菔雖小有奇功,一朝出馬顯神威,代參消滯通腸胃,太后御醫讚美名。
다시 말하면 자희태후는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돌보느라 안팎으로 일이 많았고 근심 걱정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인하여 침상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못했다.

어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의들은 합동으로 자희태후를 진찰했으며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고 치료 방법을 연구하였다.

어의들은 또 배직보(北則補)” 란 치료 원칙에 따라 보양(補養)해 주는 영양 식품을 추가하여 치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희태후에게 현훈(眩暈)과 안화(眼花)와 식욕부진과 노기 충천으로 인한 비출혈 증상이 나타났다.

어의들은 자희태후의 병은 부귀병(富貴病)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경솔하게 황궁에서 사용하는 태평방(太平方)의 범주를 벗어난 치료는 할수 없었다.

어의들은 최후로 전국에 방()을 부치기로 합의하였다.

강호낭중(江湖中) 한 사람이 방을 보고 나서 궁궐로 찾아와 처방을 제출하였다.

낭중은 서태후(西太后)를 진맥한 후 당황하거나 조급한 기색이 전혀 없이 약 주머니 속에서 3 ()의 래복자를 꺼내어 가루를 내고 약간의 밀가루를 혼합하고 찻()물을 섞어 골고루 잘 반죽하여 손가락으로 비비고 문질러 3 개의 환()을 만들었다.

낭중은 서태후에게 매차 한 알씩 하루에 세 차례 복용시켰다.

서태후(西太后)가 한 알을 복용하고 났더니 당장 코피가 멈추었고 두 알을 복용하고 났더니 현훈(眩暈) 증상이 사라졌으며 세 알을 복용하고 났더니 서태후(西太后)의 모든 병이 치유되었고 식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태후(西太后)는 매우 기뻐하며 낭중에게 두 배로 보수를 더해 주라고 어명을 내렸다.

낭중은 궁문(宮門)을 나서며 감개무량하여 즉시 생각나는대로 다음과 같은 시()를읊었다.

비록 래복자의 공효(功效)는 미약하지만 하루 아침에 신통한 위력을 나타내는구나! 정체된 인삼을 해소시켜 장()과 위()를 소통케 해주니 태후와 어의들은 래복자란 명예스러운 이름을 높이 찬양하는구료!” 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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