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7일 월요일

신의(神医) 유가언(喻嘉言)과 “일침구이명(一针救二命)”

신의(神医) 유가언(喻嘉言)과 “일침구이명(一针救二命)” ​유가언(喻嘉言)은 명말청초(明末清初)의 저명(著名)한 의학가(医学家)였다. 소년시절 부터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사도(仕途)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여의치 못하였으므로 삭발(削发)하고 중(僧)이 되었다. 그후 의학(医学)과 불학(佛学)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중에 하산(下山)하여 의생(医生)이 되었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고사 중에 유가언과 관계된 “일침구이명(一针救二命)” 이라고 부르는 고사가 하나있다. 강서성(江西省) 신건(新建 : 현재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의 북성(北城) 밖에 부숴져 가는 집이 한채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이 집 안에 관(棺)을 놓아둔다. ​어느 날 유가언(喻嘉言) 선생(先生)이 이 집앞을 지나가다가 금방 가져다 놓아 둔 듯한 새 널(棺)의 밑바닥에서 붉은 선혈(鲜血)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유희언은 놀래어 이 집 근처의 사람에게 물었다. ​이웃집 사람은 :“刚才某某的妻子死了,把棺材放在这里。” 라고 유가언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조금 전에 어느 부인이 사망하여 널을 빈집에 가져다 두고 갔습니다.” 는 뜻이다. 유가언(喻嘉言)은 급히 서둘러서 사자(死者)의 남편(丈夫)을 찾아갔다. 유가언은 사자의 남편에게 “你的妻子没有死。凡是人死血色黑暗,活人血色鲜红。我看见你妻的棺底流出的血是鲜红色的,快快开棺救治!”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부인은 죽지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피는 흑암 색깔이고 산 사람의 피는 선홍색입니다. 나는 조금 전에 당신의 부인의 널 밑바닥에서 선홍색 피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빨리 널을 열고 당신의 부인을 살려봅시다.” 는 뜻이다. ​원래(原来) 이 부인(妇人)은 만삭이 된 잉부(孕婦)인데 실혈과다(失血过多)로 인하여 하루 밤 하루 낮을 혼미(昏迷) 상태에 있었다. 남편은 부인이 죽었다고 판단 한 후 부인의 시체를 널 속에 집어넣어 북성 밖에있는 빈집에 버렸다. ​유가언(喻嘉言)은 죽은 부인의 남편과 함께 빈집에 들어가 관을 열고 부인(妇人)의 맥(脉)을 짚어 보았다. 과연(果然) 맥(脉)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유가언(喻嘉言)은 부인의 가슴(心胸之间)에 침을 한 대 꽂았다. 발침(拔針)하기도 전에 고고(呱呱)의 곡성(哭声)이 이 집안에 울려 퍼지면서 아기가 분만(分娩)되었고 부인(妇人)의 생명도 구해냈다. ​부인의 남편은 부활한 부인과 아기를 등에 업고 희기양양(喜气洋洋)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유가언(喻嘉言)의 본명(本名)은 유창(喻昌) 이고 가언(嘉言)은 자(字)이며 호(号)는 서창노인(西昌老人)이다. 강서성(江西省) 신건(新建 : 현재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사람이다. ​명(明) 나라 만력(万历) 13 년(서기 1585 년)에 태어나서 청(清) 나라 강희(康熙) 3 년(서기 1664 년)에 79 세(岁)의 나이로 종년(终年)했다. ​유창(喻昌)은 소년(少年) 시절 부터 과거시험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독서(读书)하였다. 숭정연간(崇祯年间:서기 1628년 - 서기 1643년)에 성(省)에서 치루는 제 1 차 시험에 합격한 공생(贡生) 자격으로 진경(进京)하여 전시(殿試)를 치루었으나 애석하게도 불합격했다. ​그후 유가언(喻嘉言)은 군대에 입대하여 근무하다가 출가(出家)하여 절로 들어가 중이 되었으며 불학과 의학에 심취하여 연구한 후 의사(医師)가 되어 남창(南昌) 일대와 정안(靖安) 등지에서 행의(行醫)하였다. 청대초기(清代初期 : 서기 1644년 ~ 서기 1661년)에 유가언(喻嘉言)은 명말청초(明末清初)의 삼대명의(三大名医)였다. "명말청초(明末清初)의 삼대명의(三大名医)" 는 장노옥(张路玉)、오겸(吴谦), 유가언(喻嘉言)이다. 유가언(喻嘉言)의 저서(著書)에 《우의초(寓意草)》、《상론편(尚论篇)》、《상론후편(尚论后篇)》、《의문법률医门法律)》 등이 있다.

댓글 1개:

  1. 재밌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이 글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유창의 저서인가요? 출처가 궁금하여 댓글 남깁니다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