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4일 수요일

무(萝卜)의 전기고사(传奇故事):

무(萝卜)의 전기고사(传奇故事): 무(萝卜)는 채소이지만 약용(药用)도 하고 특히 무의 씨(莱菔子)는 질병 치료에 흔히 사용된다. 무(萝卜)는 가격이 저렴하고 치병 효과가 크다. ​당(唐) 나라 때 소경(苏敬) 등이 편저(编著)한 《신수본초(新修本草)》에 최초로 무의 씨(莱菔子)를 입약(入药)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또 송(宋) 나라 때 저서 《일화자제가본초(日华子诸家本草)》에 래복자(莱菔子)가 수록되어 있고 원(元) 나라 때 주진형(朱震亨)의 저서 《본초연의보유(本草衍义补遗)》에도 래복자가 수록되어 있다. ​고인들은 무(萝卜)에 관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여 무의 종자(种子)인 래복자(莱菔子)의 약용공효(药用功效)를 터득하게 되었다. 한약에 대한 허다(许多)한 지식(知识)들은 장기간 생활경험(生活经验)에서 얻은 지식이 누적(累积)된 결과(结果)이다. 무(萝卜)를 사용한 치병의안(治病医案) 기술(记述) 중 두 개의 전기고사(传奇故事)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편두통방(偏头痛) 치료방(治療方): "裕陵(注:代指宋神宗)传王荆公(注:王安石)偏头痛方,云是禁中秘方:用生莱菔汁一蚬壳仰卧注鼻中,左痛注右,右痛注左,或两鼻皆注亦可。数十年患,皆一注而愈。荆公与仆言, 已愈数人。" ​다시 말하면 "유능(송 나라 신종왕)은 왕형공(왕안석)에게 금중비방인 편두통방을 전수해 주었다. 생래복즙 일현각(一蚬壳 : 가막조개의 껍데기로 하나)을 준비하여 환자를 천정을 쳐다 보고 드러 눕힌 후 머리의 좌측에 편두통이 있을 경우엔 오른쪽 콧구멍에 생래복즙을 주입해 주고 머리의 우측에 편두통이 있을 경우엔 왼쪽 콧구멍에 주입시켜 준다. 또는 양쪽 콧구멍 속에 함께 주입시켜도 무방하다. 수 십년 동안 편두통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편두통이 단 한 번의 치료를 받고 치유되었다. 생래복즙을 사용하여 형공과 그의 하인 등 여러명의 편두통을 치료했다.” 는 뜻이다. ​이상의 고사는 송(宋) 나라 때·소식(苏轼:소동파)과 심괄(沈括)의 공동저서《소심내한양방(苏沈内翰良方)》 제 7 권(卷)에 수록되어 있는 라복(무)의 전기고사이다. 송(宋) 나라 제 6 대왕 신종(神宗)은 백성들을 친 형제자매 처럼 아낀 왕이었다. 그리하여 신종은 금중비방(禁中秘方)을 아낌없이 자기(自己) 대신(大臣) 왕안석(王安石)에게 전수해 주었다. 소동파(苏轼)가 이 사실을 기록(记录)하여 후세에 유전(流传)되었다. (2) 다음은 청(清) 나라 때 양희령(杨熙龄)의 저서《저원의약합간(著园医药合刊)》에 수록되어 있는 또 하나의 무(래복(莱菔))에 관한 고사이다. ”高星阶言,有人患小便癃闭,腹胀欲死,卧于道上,不能行走,观者如堵墙。顷有李某从此经过,众呼李先生来,现有病人,即祈医治。李某讯一过,曰是不难,快找大莱菔一枚,入火内烧热,将最上一层削去,以免过热,于中挖一槽,乘热合阳其上即愈。如法治之,少顷将莱菔一揭,溺如泉涌,腹胀遂消。此法较用药直捷多矣,故志之。(清·杨熙龄《著园医药合刊》) ​다시 말하면 "​ 고성계는'어떤 사람이 소변불통에 걸려 배가 창만해져서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고 말했다. 구경꾼들로 인하여 길이 가로막혀 있었다. 이 무렵 이씨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구경군들은 이씨에게 병자를 치료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씨는 환자에게 병정에 관하여 질문한 후 치료는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나서 급하게 큰 무(大莱菔) 한 개를 구해 왔다. 부엌의 아궁이 속에 집어넣어 잘 익힌 다음 무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약간 열을 식히기 위해서 무를 두 쪽으로 쪼개어 환자의 하복부에 열부해 주었다. 얼마후에 오줌이 샘물 솟아 오르듯 흘러나오고 배는 푹꺼졌다. 구경꾼들은 이 치료방법이 어떤 한약 보다 효과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는 뜻이다. 무는“온통(温通)”작용과 “강기(降气)”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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