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사람의 사후(死後) 육신(肉身)이 천년불후(千年不朽)한 역사(历史) 전설(传说)이 있다.
사람의 사후(死後) 육신(肉身)이 천년불후(千年不朽)한 역사(历史) 전설(传说)이 있다.
당(唐) 나라 때 고승(高僧)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육신(肉身)이 천년불후(千万不朽)하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日本) 동경(东京)의 일 개(一个) 연구소(研究所)에 당(唐) 나라 때 고승(高僧)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육신(肉)이 1224 년이 지난 오늘 날 까지 완전히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학술계(学术界)에서는 “세계(世界)에서 유일(惟一) 기적(奇迹)”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적(奇迹)을 창조(创造)한데는 신기(神奇)한 한약의 공이 크다.
당(唐) 나라 정원(贞元) 6 년(서기 790 년), 그 당시 91 세(岁)의 고승(高龄) 무제선사(无际禅师) 자신이 살 날이 멀지않은 것을 미리 알고나서 은밀히 자기의 고향인 호남성(湖南省) 형태(衡台)에 있는 남태사(南台寺)로 들어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제자들에게 자기가 평상시 수집(收集)해 둔 일 백 여가지 초약(草药)을 끓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10 대접 씩 계속 마셨다. 그 결과 소변(小便)이 빈번(频繁)해 지고 땀을 비오듯 쏟아냈다. 일 개월 동안 마시고 나니 몸은 수척해졌고 얼굴색(脸色)은 붉어졌으며 두 눈빛은 횃불과 같았다.
어느 날 그는 불경(佛经)을 외우면서 움직이지 않고 정좌한 채로 편안하게 원적(圆寂)하였다. 사후(死後) 몇 개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육신(肉身)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으며 방향(芳香)이 사방팔방에 넘쳐 흘렀다.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제자들과 당지(当地)의 신도(信徒)들은 대경실색하였으며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살아 생전의 공덕(功德)이 무량(无量)한 결과(结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으며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사묘(寺庙)를 건립해 주었다. 사묘 내의 향화(香火)는 매우 왕성(旺盛)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고 있다.
1930 년대(年代)에 군벌(军阀)들이 할거(割据)하고 전란(战乱)이 빈번(频繁)히 발생 할 때 호남성(湖南省) 일대9一带)에 잠복해 있던 치과의사(牙科医生)는 일본(日本)의 간첩(间谍) 도변사랑(渡边四郎)을 숨겨주었었는데 그는 사내(寺内)의 소화상(小和尚)을 독살시킨 후 무제선사(无际禅师)의 육신(肉身)을 사묘(寺庙) 밖으로 옮겨 숨겨두었다. 항일전쟁말기(抗日战爭末期)에 도변사랑(渡边四郎)은 무제선사(禅师)의 육신(肉身)을 화물(货物)인 양 위장하여 일본으로 가는 배(船)에 몰래 실었다. 도변사랑은 무제선사의 육신을 무사히 일본에 도착시켰다. 처음엔 향촌의 어느 집에 숨겨두었다가 후에 동경교외(东京郊外)의 지하 창고 속에 보관하였다. 1947 년(年) 도변사랑이 죽고나서 유족들이 그의 유물(遗物)을 정리하던 중 도변사랑의 일기장 속에서 증대(重大)한 비밀(秘密)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본(日本) 정부 당국(当局)에서는 즉시 사람을 파견하여 창고(仓库) 문을 때려부수고 지하 창고 속에 들어가 무제선사(禅师)가 살아있는 사람 처럼 반퇴(盘腿)하고 앉아있는 육신을 발견하였다. 과학자들에 의하여 미이라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것은 순전히 한약재 때문이다고 증명되었다. 공기(空气) 속에 노출된 사람의 육체(肉体)가 1224 년 동안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이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의 검사(检查) 결과 무제선사(禅师)의 뱃속에 오물(污物)이 전혀 없으며 육체 속으로 방부약물(防腐药物)이 삼투되어 있고 입과 항문(肛门)이 모두 꽉 닫혀있었기 때문에 육신이 1224 년 동안 부패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된 기본원인(基本原因)이다고 증명되었다.
무제대사(大师)가 그 당시 복용(服用)했던 한약에 관하여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추후 과학자들의 고증(考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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