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1일 일요일

당(唐) 나라 때 정치가(政治家) 위징(魏征)이 발명한 “이고당(梨膏糖)”

당(唐) 나라 때 정치가(政治家) 위징(魏征)이 발명한 “이고당(梨膏糖)” 당(唐) 나라 초기의 정치가(政治家) 위징(魏征)은 효심(孝心)이 극진하였다. 위징의 모친(母亲)은 다년간(多年間) 해수기천병(咳嗽气喘病)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위징(魏征)은 사방팔방으로 부터 명의들을 초청하여 치료해 봤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위징(魏征)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이 사실을 알게되었다. 당태종은 즉시 어의(御医)를 파견하여 위징(魏征)의 모친을 진병(诊病)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어의(御医)는 망진(望診)과 문진(闻診)과 문진(问診)과 절진(切診) 후 书천패(川贝)와 행인(杏仁)과 진피(陈皮)와 법하(法夏) 등 한약을 사용한 처방(处方)을 조제하여 달여서 위징의 모친에게 복용시켰다. ​위징(魏征)의 모친의 성정(性情)은 괴팍하였다. 탕약을 몇 모금 마신 후 약이 너무 써서 마실 수 없다고 불평을 하였다. 위징(魏征)은 어머니를 잘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위징(魏征)의 어머니는 그 탕약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 위징(魏征)의 모친은 위징(魏征)을 불러 면전에 앉혀놓고 배(梨)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위징(魏征)은 즉시 하인을 불러 배(梨)를 사오라고 말했다. ​위징(魏征)은 손수 배를 잘게썰어 접시에 담아 어머니께 드렸다. 위징(魏征)의 어머니는 이빨이 모두 빠져서 작은 배조각도 씹어 삼킬 수 없었다. 위징(魏征)은 배(梨) 조각을 끓인 후 빙당(氷糖)을 가미하여 어머니께 드렸다. 위징(魏征)의 모친은 반 대접을 마시고 나서 맛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위징(魏征)은 이즙탕(梨汁汤)이 모친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배즙탕(梨汁汤)을 끓일 때 어의(御医)가 처방해 준 약을 한 대접 혼합하여 함께 끓이고 있었다. 3 경(三更)이 지나도록 약을 달이고 있었기에 위징(魏征)은 심신이 피로하였다. ​위징(魏征)은 잠간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눈을 뜨고 약탕기 안을 들여다 보니 약즙은 엿이 되어가고 있었다. 위징(魏征)은 엿을 한 조각 떼어 맛을 보았다. 당괴(糖块)는 달고 향기도 매우 좋았다. ​위징(魏征)은 당괴(糖块)를 어머니에게 드렸다. 위징(魏征)의 모친이 당괴(糖块)를 한 알 입속에 집어 넣으니 당괴(糖块)는 스스로 어머니의 입안에서 녹아 버렸다. 달고 향이 좋으니 위징(魏征)의 모친은 계속 당괴(糖块)를 즐겨 먹었다. 위징(魏征)은 모친이 당괴(糖块)를 먹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위징(魏征)의 모친은 한약즙과 배즙(梨汁)과 빙당(氷糖)을 혼합하여 만든 당괴(糖块)를 15 일 동안 복용하고 나서 입맛이 좋아져서 식사량도 과거에 비하여 증가(增加)되고 해수(咳嗽)와 기천병(气喘病)이 완치되었다. 위징(魏征)이 한약즙과 배즙(梨煮汁)을 혼합한 약으로 모친의 질병을 치유했다는 소문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백성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신효막측한 한약이 되었다. 한의사들도 즐겨 사용하는 묘방(妙方)이 되었다. ​후세인들은 위징이 발견한 해수기천병 치료약을 "이고당(梨膏糖)" 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위징(魏征: 서기 580년 - 서기 643년)은 중국 역사상 임금에게 가장 많이 직간(直諫)한 신하(臣下)였다. 위징(魏征)은 당태종(唐太宗 : 서기 626년 - 서기 649년)에게 200여 차례나 옳은 말로 간(諫)한 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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