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4일 금요일

고대古代의 약医药 광고广告 (1)

고대古代의 약医药 광고广告는 일찌기 시작되었으나 송宋 나라 때 가장 뚜렸하게 발전하였다.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에 보면 조태승赵太丞 일가家에서는 치병治病 은 물론 한약재도 팔았는데 처마 끝에 천으로 만든 커다란 광고 싸인을 걸어 놓았다. ”신기神奇한 치료 작용作用이 있는 각종 한약과 환丸과 산散과 고膏와 단丹을 만들어 팝니다.” 고 쓰여진 광고였는데 광고 효과가 매우 좋았다. 또 남송南宋 어의御医 왕계선王继先 의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영험단방灵验丹方의 이름을 “흑호黑虎”라고 칭했는데 왕씨王氏의 한약방은 “흑호왕가黑虎王家” 란 이름으로 사방팔방에 널리 알려졌다. 변경汴京 성중城中에 산기疝气 치료 특효약을 파는 이가약방李家药房이 있었는데 한약이 잘 팔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명장名匠을 초청하여 나무로 소를 조각하여 약방의 실물 간판으로 사용했더니 구약자求药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송宋 나라 때 요주饶州에 고약방高藥房은 풍약风药 을 전문으로 파는 약방이었는데 대력사大力士가 한 손에 쇠스랑을 쥐고 다른 한 손엔 검정색 돼지를 끌고가는 상표商标를 풍약에 붙여서 팔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씨 약방을 “고도高屠” 라고 칭했다. 고도란? 고씨 백정(白丁)이란 뜻이다. 이와 같은 상표 때문에 풍약风药을 사러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문자文字 광고도 효력을 발생했다. 북경北京의 애덕당爱德堂 약방药房에서는 “爱德堂沈家祖传七代小儿珍丹只此一家别无二处” 라고 쓴 21 자(字) 간판을 문전에 걸어 놓았다. 다시 말하면 ”애덕당의 심씨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소아과 질병 치료약은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는 뜻이다. 남송南宋 때 임안临安의 엄모씨严某氏는 행의行医를 겸하여 작은 약포药铺를 경영하였는데 이질痢疾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한의사였다. 그러나 환자가 별로 없었다. 그때 마침 송宋 나라 효종孝宗이 이질痢疾로 오랫 동안 고생하고 있는데 이질 전문 치료 의사를 구한다는 방을 우연히 보았다. 엄모씨는 즉시 입궁入宫하여 황제皇帝의 이질병 痢疾病을 치유하였다. 황제皇帝는 매우 기뻐하며 엄씨에게 방어防御 벼슬과 금저구(金杵臼: 황금으로 만든 절구와 공이)를 하사하였다. 엄씨严氏는 약방 문전에 “금저구엄방어金杵臼严防御” 라고 쓴 싸인을 붙여 놓았다. 그후 엄씨 약방의 이름은 사방팔방으로 퍼져 치부하였다. 또 부인과妇人科 전문의사 진여陈沂는 강왕康王 조구赵构의 왕비王妃의 병을 치유하여 강왕(康王)으로 부터 어전라선(御前罗扇: 견직에 수를 놓아 만든 부채)를 하사하였다. 진씨陈氏가 죽고나서 진씨의 자손子孙들이 절강浙江 각지各地로 퍼져 한약방을 경영하게 되었다. 왕이 하사한 보물宝物 어전라선御前罗扇을 나누어 가질 수 없으므로 후세后世들은 나무로 깎아서 만든 큰 부채를 각자의 약방의 문전에 걸어 놓았다. 그리하여 “대선진大扇陈” 간판을 걸고 약방을 수 백년(数百年) 동안 경영해 오고 있다. 또 황자皇子의 장양(肠疡: 장궤양)을 치유한 이씨에게 황제皇帝는 금종金钟을 하사하였다. 이씨는 약방 문전에 금종을 달아 놓고 약방을 경영하여 치부했는데 이씨가 죽고나서 이씨의 자손들도 금종을 매달아 놓고 한약방을 경영했으므로 “금종이씨金钟李氏” 약방의 명성은 수백년(数百年) 동안 인근 각처에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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