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 나라와
이씨조선의 의약교류(醫藥交流)
청나라 초기부터 중기 까지
한중(韓中) 의약교류는 빈번했다.
이씨조선 제 20 대 왕
경종(景宗 :서기 1688 년 – 서기
1724 년)은 장희빈(張禧嬪)의 아들로써 어려서부터 신체가
허약하고 병이 많았다. 서기 1720 년 왕위를 계승하고 나서 경종의 병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청나라 강희(康熙) 61
년(서기 1722 년)
강희황제(康熙皇帝)는 친히 명망이 높고 의술이 고명한 훌륭한
태의(太醫)들을 선별하여 조선에 보내면서 경종을 성심 성의껏 치료를 잘 해주라고
당부하였다. 청 나라의 명의들이 경종을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종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2 년
후 서기 1724 년 36 세의 젊은 나이로 재위 4 년 만에 경종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서기 1722
년 10 월 역관(譯官)
황하성(黃夏成)은 공무차 청 나라에 가서 머물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청 나라
조정에서 혜증(惠贈)한 적수현주(赤水玄珠) 51
책(冊)과 의학정전(醫學正傳)과
만병회춘(萬病回春)과 의학입문(醫學入門) 등
명(明) 나라 때 저작을 갖고 귀국하였다.
이씨조선에서 의학정전은 서기 1484
년 복제 간행되었고 만병회춘과 의학입문은 서기1750 년과 서기 1820 년 두
차례에 걸쳐서 복제 간행되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17
세기에 이미 조선에서 입수했었고 서기 1724 년에 출판된 의종금감은 18 세기 말
까지 조선에서 입수하지 못했었다.
한편 이씨조선에서 출판된 의서(醫書)들이 청
나라로 전입되었다. 건륭(乾隆) 3
년(서기 1738 년) 청 나라의 사절단이 조선 방문을
끝마치고 청 나라로 귀국할 때 이씨조선의 조정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25
권(卷)을 증송(贈送)했으며 조선의
명의 이경화(李景華)의 저서 광제비급(廣濟秘笈)과
강명길(康命吉)의 저서 제중신편(濟衆新編)과
황도연(黃道淵)의 저서 의종손익(醫宗損益) 등
의서들이 계속 청 나라로 전입되었다.
이씨조선의
법의학가(法醫學家) 구실규(具實奎)는 중국의
법의서(法醫書) 무원록(無冤錄)과
세원록(洗冤錄)과 평원록(平冤錄)을 기초로하고
조선의 실정을 참작하여 저작한 증수무원록(增修無冤錄)
상권(上卷)과 하권(下卷)을
편찬하였다.
이씨조선에서는 서기 1792
년 10 월과 서기 1797 년 7 월 두 차례에 걸쳐서
증수무원록이 간행되었다.
서양 의학 책을 한문으로 번역한
전체신륜(全體新淪)과 서의약론(西醫略論)과
내과신론(內科新論)과 부영신설(婦婴新說)과
박물신편(博物新編) 등은 19 세기 중엽 조선의 유물주의 철학가
최한기(崔漢綺 : 서기 1803년 –
서기 1877년)가 청 나라를 방문하고 귀국할 때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로 인하여 조선에도 서양 의학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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