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청(淸) 나라와 이씨조선의 의약교류(醫藥交流)

() 나라와 이씨조선의 의약교류(醫藥交流)


청나라 초기부터 중기 까지 한중(韓中) 의약교류는 빈번했다.


이씨조선 제 20 대 왕 경종(景宗 :서기 1688 서기 1724 )은 장희빈(張禧嬪)의 아들로써 어려서부터 신체가 허약하고 병이 많았다. 서기 1720 년 왕위를 계승하고 나서 경종의 병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청나라 강희(康熙) 61 (서기 1722 ) 강희황제(康熙皇帝)는 친히 명망이 높고 의술이 고명한 훌륭한 태의(太醫)들을 선별하여 조선에 보내면서 경종을 성심 성의껏 치료를 잘 해주라고 당부하였다. 청 나라의 명의들이 경종을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종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2 년 후 서기 1724 36 세의 젊은 나이로 재위 4 년 만에 경종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서기 1722 10 월 역관(譯官) 황하성(黃夏成)은 공무차 청 나라에 가서 머물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청 나라 조정에서 혜증(惠贈)한 적수현주(赤水玄珠) 51 ()과 의학정전(醫學正傳)과 만병회춘(萬病回春)과 의학입문(醫學入門) 등 명() 나라 때 저작을 갖고 귀국하였다.


이씨조선에서 의학정전은 서기 1484 년 복제 간행되었고 만병회춘과 의학입문은 서기1750 년과 서기 1820 년 두 차례에 걸쳐서 복제 간행되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17 세기에 이미 조선에서 입수했었고 서기 1724 년에 출판된 의종금감은 18 세기 말 까지 조선에서 입수하지 못했었다.


한편 이씨조선에서 출판된 의서(醫書)들이 청 나라로 전입되었다. 건륭(乾隆) 3 (서기 1738 ) 청 나라의 사절단이 조선 방문을 끝마치고 청 나라로 귀국할 때 이씨조선의 조정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25 ()을 증송(贈送)했으며 조선의 명의 이경화(李景華)의 저서 광제비급(廣濟秘笈)과 강명길(康命吉)의 저서 제중신편(濟衆新編)과 황도연(黃道淵)의 저서 의종손익(醫宗損益) 등 의서들이 계속 청 나라로 전입되었다.


이씨조선의 법의학가(法醫學家) 구실규(具實奎)는 중국의 법의서(法醫書) 무원록(無冤錄)과 세원록(洗冤錄)과 평원록(平冤錄)을 기초로하고 조선의 실정을 참작하여 저작한 증수무원록(增修無冤錄) 상권(上卷)과 하권(下卷)을 편찬하였다.


이씨조선에서는 서기 1792 10 월과 서기 1797 7 월 두 차례에 걸쳐서 증수무원록이 간행되었다.


서양 의학 책을 한문으로 번역한 전체신륜(全體新淪)과 서의약론(西醫略論)과 내과신론(內科新論)과 부영신설(新說)과 박물신편(博物新編) 등은 19 세기 중엽 조선의 유물주의 철학가 최한기(崔漢綺 : 서기 1803서기 1877)가 청 나라를 방문하고 귀국할 때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로 인하여 조선에도 서양 의학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