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나라 때 한중 의학교류
북송(서기
960년 – 서기 1127년)과
남송(서기 1127년 – 서기
1279년) 때 한중 의학교류는 대단히 활발하였다.
북송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9
년(서기 1016 년)과
천희(天喜) 5 년(서기 1021
년)에 고려 사절 곽원(郭元)과
한조(韓祚)는 각각 고려로 귀국할 때 송 나라 진종은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1000 권(卷)을
하사하였다.
또
송 휘종(徽宗)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서기 1101년)에 고려의 사절
임의(任懿)와 백가신(白可信)은 귀국시 휘종이
태평성혜방 1000 권(卷)과
신의보구방(神醫普救方) 1100 권(卷)을
하사하였다.
그해
고려 사절 왕하(王嘏)와
오연총(吳延寵)이 귀국할 때 휘종은 태평어람(太平御覽) 1000
권(卷)을 하사하였다.
송
나라와 고려의 사절들과 의학가들의 왕래가 매우 빈번하였다.
사서(史書)에
의하면 송 나라에서 8 차(次)에 걸쳐서 116
명의 한의사와 한의학자들을 고려에 보내어 한의학 이론을 가르침은 물론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중 대다수는
송조정(宋朝庭)에서 파견한
의관(醫官)들이었다.
송
인종(仁宗) 가우(嘉祐) 4 년(서기 1059
년) 송 정부에서는 강낭동(江郎東) 명의를
천주(泉州) 상인(商人)
황문경(黃文景)과 소종명(蕭宗明과 함께 보내어 고려의 환자들을
치료해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또
송 영종(英宗) 치호(治乎) 5
년(서기 1068 년)에
개봉(開封) 명의 신수(愼修)와
진잠고(陳潛古)와 저원빈(儲元賓) 등을 고려에
보냈는데 신수는 박학다식하며 의학에 정통한 명의였다. 신수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도 명의였는데 고려에서 한의학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파견되었다.
신종(神宗)
희녕(熙寧) 5 년(서기 1072
년) 송 나라에서 의관(醫官) 왕유(王愉)와
서광(徐光)을 고려로 보냈다.
희녕
7 년(서기 1074 년)에 송 나라에서는
양주(揚州)에 살고있는 명의 마세안(馬世安)을
비롯하여 8 명의 의사들을 고려에 보냈다. 마세안은 서기 1078 년에
신종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고려에 가서 머무는 동안 공적을 많이 쌓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원풍(元豊)
3 년 7 월(서기 1080 년)
마세안은 두번 째 고려를 방문했다.
고려
문종(文宗)이 풍비(風痺)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종은 송 나라 신종에게 의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송
나라 신종은 한림의관(翰林醫官) 형조(邢慥)와
주도능(朱道能)과 심신(沈紳)과
소륜(邵倫) 등 모두 88 명을 고려 문종에게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신종은 문종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한약을 100여 가지나 보냈다.
양국
의학가들 교류를 통하여 고려와 송 나라의 의학은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의 의사제도는
당제(唐制)를 모방하였으나 송제(宋制)를 모방하게
되었다. 송 나라의 의사제도를 모방하여 의학교육과 의업과거 제도를 실시하고 태의감과
상약국(尙藥局) 등 기구를 설치했으며 태의감(太醫監),
감(監), 소감(小監),
승(丞), 박사(博士),
의정(醫正), 어의(御醫),
직장(直長) 등 직함을 사용하였다.
의학박사는
의학을 가르쳤고 의업과거(醫業科擧)의 고시 과목은 소문, 갑을경, 명당경,
맥경, 침경, 유연자방(劉涓子方),
옹저론(癰疽論), 본초경 등 중국의 의서들이었고 후에 화제국방 등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혜민국(惠民局)을
설치하였다.
송
나라 때 중국에서 고려로 수 많은 종류의 약재를 보냈다. 종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수량도 엄청났다.
중국 남방 열대산 약재 예를 들면 찬축황(天竺黃)과
안식향(安息香)과 같은 열대산 약재들은 송 나라 상인들에 의하여 수입된 약재들이었는데 아낌없이
고려로 보내 주었다.
한편
고려의 명귀 약재도 10여 종 이상 송 나라로 보냈다.
고려는
송 나라의 의서 출판 사업에 힘입어 더욱 의학이 발전되었다. 서기 1058 년 인종 가우
3 년 고려 충주목(忠州牧)
황제팔십일난(黃帝八十一難)이 복제되었다. 서기
1059 년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 서역 지방
군정기구)에서 주후방(肘后方) 등 3
종(種)의 의서가 새로 조각되어 출판되었다. 이와 같은 의서의
간행도 고려 의학이 촉진 발전된 이유 중 하나였다.
고려
고종 13 년(서기 1226 년) 고려 의학가
최종준(崔宗峻)이 본초경과 천금방과 소문과 태평성혜방과
성제총록(聖濟總錄)을 기초로 하여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을 편찬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려의 의학 이론 체계가
형성되었다.
그
당시 고려에는 중국 고대 의서들을 다량 수장하고 있었다.
송
나라 철종(哲宗) 원우(元祐) 8
년(서기 1093 년)에 고려
선종(宣宗)은 황종의(黃宗懿)를
송(宋)에 파견하여 황제침경(黃帝針經) 9
권(卷)을 증정하였다. 그 당시 송 나라에서는 황제침경이
분실되어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송 나라에서는 다행으로 고려에서 보낸 황제침경의 원본을 복사하여 사용 할 수
있었다. 이는 고려가 송 나라 의학에 크게 공헌한 또 한가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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