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일 금요일

송 나라 때 한중 의학교류

송 나라 때 한중 의학교류


북송(서기 960서기 1127)과 남송(서기 1127서기 1279) 때 한중 의학교류는 대단히 활발하였다.


북송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9 (서기 1016 )과 천희(天喜) 5 (서기 1021 )에 고려 사절 곽원(郭元)과 한조(韓祚)는 각각 고려로 귀국할 때 송 나라 진종은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1000 ()을 하사하였다.


또 송 휘종(徽宗)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서기 1101)에 고려의 사절 임의(任懿)와 백가신(白可信)은 귀국시 휘종이 태평성혜방 1000 ()과 신의보구방(神醫普救方) 1100 ()을 하사하였다.


그해 고려 사절 왕하()와 오연총(吳延寵)이 귀국할 때 휘종은 태평어람(太平御覽) 1000 ()을 하사하였다.


송 나라와 고려의 사절들과 의학가들의 왕래가 매우 빈번하였다.


사서(史書)에 의하면 송 나라에서 8 ()에 걸쳐서 116 명의 한의사와 한의학자들을 고려에 보내어 한의학 이론을 가르침은 물론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중 대다수는 송조정(宋朝庭)에서 파견한 의관(醫官)들이었다.


송 인종(仁宗) 가우(嘉祐) 4 (서기 1059 ) 송 정부에서는 강낭동(江郎東) 명의를 천주(泉州) 상인(商人) 황문경(黃文景)과 소종명(蕭宗明과 함께 보내어 고려의 환자들을 치료해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또 송 영종(英宗) 치호(治乎) 5 (서기 1068 )에 개봉(開封) 명의 신수(愼修)와 진잠고(陳潛古)와 저원빈(儲元賓) 등을 고려에 보냈는데 신수는 박학다식하며 의학에 정통한 명의였다. 신수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도 명의였는데 고려에서 한의학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파견되었다.


신종(神宗) 희녕(熙寧) 5 (서기 1072 ) 송 나라에서 의관(醫官) 왕유(王愉)와 서광(徐光)을 고려로 보냈다.


희녕 7 (서기 1074 )에 송 나라에서는 양주(揚州)에 살고있는 명의 마세안(馬世安)을 비롯하여 8 명의 의사들을 고려에 보냈다. 마세안은 서기 1078 년에 신종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고려에 가서 머무는 동안 공적을 많이 쌓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원풍(元豊) 3 7 (서기 1080 ) 마세안은 두번 째 고려를 방문했다.


고려 문종(文宗)이 풍비(風痺)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종은 송 나라 신종에게 의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송 나라 신종은 한림의관(翰林醫官) 형조()와 주도능(朱道能)과 심신(沈紳)과 소륜(邵倫) 등 모두 88 명을 고려 문종에게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신종은 문종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한약을 100여 가지나 보냈다.


양국 의학가들 교류를 통하여 고려와 송 나라의 의학은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의 의사제도는 당제(唐制)를 모방하였으나 송제(宋制)를 모방하게 되었다. 송 나라의 의사제도를 모방하여 의학교육과 의업과거 제도를 실시하고 태의감과 상약국(尙藥局) 등 기구를 설치했으며 태의감(太醫監), (), 소감(小監), (), 박사(博士), 의정(醫正), 어의(御醫), 직장(直長) 등 직함을 사용하였다.


의학박사는 의학을 가르쳤고 의업과거(醫業科擧)의 고시 과목은 소문, 갑을경, 명당경, 맥경, 침경, 유연자방(劉涓子方), 옹저론(癰疽論), 본초경 등 중국의 의서들이었고 후에 화제국방 등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혜민국(惠民局)을 설치하였다.


송 나라 때 중국에서 고려로 수 많은 종류의 약재를 보냈다. 종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수량도 엄청났다. 중국 남방 열대산 약재 예를 들면 찬축황(天竺黃)과 안식향(安息香)과 같은 열대산 약재들은 송 나라 상인들에 의하여 수입된 약재들이었는데 아낌없이 고려로 보내 주었다.


한편 고려의 명귀 약재도 10여 종 이상 송 나라로 보냈다.


고려는 송 나라의 의서 출판 사업에 힘입어 더욱 의학이 발전되었다. 서기 1058 년 인종 가우 3 년 고려 충주목(忠州牧) 황제팔십일난(黃帝八十一難)이 복제되었다. 서기 1059 년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 서역 지방 군정기구)에서 주후방(肘后方) 3 ()의 의서가 새로 조각되어 출판되었다. 이와 같은 의서의 간행도 고려 의학이 촉진 발전된 이유 중 하나였다.


고려 고종 13 (서기 1226 ) 고려 의학가 최종준(崔宗峻)이 본초경과 천금방과 소문과 태평성혜방과 성제총록(聖濟總錄)을 기초로 하여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을 편찬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려의 의학 이론 체계가 형성되었다.


그 당시 고려에는 중국 고대 의서들을 다량 수장하고 있었다.


송 나라 철종(哲宗) 원우(元祐) 8 (서기 1093 )에 고려 선종(宣宗)은 황종의(黃宗懿)를 송()에 파견하여 황제침경(黃帝針經) 9 ()을 증정하였다. 그 당시 송 나라에서는 황제침경이 분실되어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송 나라에서는 다행으로 고려에서 보낸 황제침경의 원본을 복사하여 사용 할 수 있었다. 이는 고려가 송 나라 의학에 크게 공헌한 또 한가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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